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붙박이별 May 09. 2024

나는 쿨하지 않다

진정한 센 언니는 쿨한 것이 아니라 찌질한 내 모습을 인정하는 것이다.

# 나는 쿨한 사람이었다.


 나는 쿨한 사람이었다. 기념일을 챙기는 일 따위는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상대가 뭔가를 해 주었을 때 리액션을 하는 것이 큰 부담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5월은 우리 집 기념일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남편생일, 아버님생신, 어머님 생신에 엄마 생일까지 탈탈 털어도 몇 안 되는 가족 기념일의 절반이 5월인 셈이다. 이 사람, 저 사람 챙기다 보면 어느새 5월이 훌쩍 지나간다. 그중에 내 지분을 챙길 수 있는 날은 오직 어버이날뿐이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저녁을 먹고 소화가 다 되도록 아이들은 소식이 없다. 혹시나 고개를 들어보지만 역시나 평상시와 다를 바가 없다. 기대는 점점 실망으로 변해갔다.

 그래도 아이들이 초등학생 때까지는 학교에서 만들어오는 카네이션과 편지가 있어서 어버이날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중학교에 입학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진짜 아무것도 없다. 쿨한 사랍답게 서운한 마음을 애써 감춰보지만 결국 덩치를 불린 서운함은 내 입을 비집고 나왔다.                               

" 얘들아. 너희 너무한 거 아니니? 어버이날인데 어떻게 아무것도 안 할 수가 있어?"


# 나는 쿨한 척했던 질한 사람이다.


 나는 쿨한 척했던 질한 사람이다. 기념일을 챙기지 않으면 뒤끝이 길다. 상대가 뭔가를 해 주었을 때 리액션을 하는 것을 즐긴다.


 밖에 나갔다 돌아온 아들의 손에 과자봉지가 잔뜩 들려있다. 약속이나 한 듯 2개씩. 프링글스, 빼빼로, 젤리, 초콜릿... 모두 나와 남편이 좋아하는 것들이다. 엄마, 아빠의 간식 취향을 꿰뚫고 있는 아들을 보니 서운한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엎드려 절 받기면 어떠랴. 내가 받고 싶었던 것은 값비싼 선물이 아니라 엄마를 생각해 주는 아이들의 마음이었다.



 진정한 센 언니는 쿨한 것이 아니라 질한 내 모습을 인정하고 솔직해 지는 것이다.




이전 19화 출근을 하고 싶은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