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라는 숨결, 감탄이라는 연습
나는 미술관 가는 걸 좋아한다. 예술에 대한 깊은 조예가 있어서가 아니다. 다만 예술가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낯선 각도, 그 시선이 나를 사로잡는다. 평범한 일상을 특별한 순간으로 바꾸고, 덧없는 찰나를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그들의 눈. 나는 그 시선에 매료되었고, 조금이라도 닮고 싶었다.
휴일에 찾은 전시관, 작품 앞에 오래 머물 수 있는 그 순간이 좋았다. 특별한 통찰이 떠오르지 않아도 괜찮았다. 단지, 다만 한 점의 그림 앞에 느긋이 머물 수 있는 여유, 그 자체가 이미 선물 같았다.
삶에서 여유는 사치가 아니다. 그것은 무게를 견디게 하는 틈, 파도에 휩쓸리지 않게 해주는 숨결 같은 것이다. 불교에서 이를 '바르게 봄' 정견(正見)이라 한다. 사로잡히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힘. 여유는 그 관찰의 출발점이다.
최근 읽은 시와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아름다움과 충만함은 이미 네 안에 있다.'
처음엔 그 말이 멀게만 들렸다. 하지만 창밖 작은 정원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꽃잎을 보고, 부러진 가진 끝에서 다시 돋아나는 새순을 마주하며 그 뜻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이는 '가지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의 문제였다.
우리 주변엔 이미 감탄할 것들이 널려 있다. 단지, 그것을 알아챌 수 있는 눈과 느낄 수 있는 마음을 단련해야 한다. 그건 발견의 여정이다.
그건 발견하는 것이다.
진정한 풍요란는
걱정 없이 깊이 잠들고, 맑은 마음으로 웃으며 밥을 먹고, 세상의 경이를 가슴으로 느낄 줄 아는 것이다.
"나심탈레브 안티프래질 글에서 영감을 받아"
그 문장을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문득, 나는 지금 부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미술관의 고요한 공간, 계절이 건네는 봄의 따스함, 그리고 나만의 여유로운 순간.
그 모든 것이 나를 축복된 하루로 이끌었다.
삶은 때로 날카롭고, 마음이 갈기갈기 찢기는 순간도 있다.
그럼에도 삶은 여전히 작은 여백을 남겨준다.
그 여백 속에서 우리는 배운다.
멈추어 서는 법을, 감탄하는 법을, 다시 감사하는 법을.
삶은 결국, 경이로움을 발견해 가는 여정이다.
오늘도 여유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 머물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