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따뜻한 불꽃 소예 Jun 04. 2024

내 가치는 내 질문이 결정한다.

크게 크게 넓게 넓게 시선을 제발 높이자.

이 쪼그만 회사에서도 나름의 정치질이란 게 아직도 남아 있다. 나를 미치도록 괴롭히던 파콰드는 결국엔 회사를 떠났다. 하지만 그의 잔당은 아직도 그들만의 삼계에 빠져 아직도 불타는 그 집에서 벗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법화경에서 부처께서 중생이 불타는 삼계에서 (불교의 세계관에서 중생이 생사유전한다는 3단계 세계 -욕계, 색계, 무색계) 끝없이 윤회하며 고통받고 있다며, 제발 벗어나라고 말씀하셨지만, 우리 회사 중생들은 아직도 그들만의 판타지로 My Dear 수령님이 회사를 비참하게 떠나게 된 이유도 모른 채 그 원인이 나라고 생각해서 아직도 나를 피곤하게 하고 있다. 몇일 전 아침에는 누군가 내가 회사 출근시간을 어긴다는 투고를 인사팀에 넣었다. 나는 그날 미국에 있는 내 보스와 미팅이 있어 집에서 회의를 끝내고 조금 늦게 출근했었다. '그냥 재밌네'라는 반응밖에 안 나왔다. 얘네 수준이 딱 여기까지다. 이전에 파콰드가 있을 때 이런 투고를 많이 넣었다고 한다. 물론 대상은 그 당시 파콰드가 가장 싫어하는 직원이라는 점을 빼고는 차이가 크진 않다. 심지어, 전설에 따르면 이 아이들은 어떤 직원의 책상을 몰래 사진 찍어 투고를 넣었다고 한다. '정리를 못한다는 이유로' 이 미친 ㅅㅂ ㅅㄲ들... 불링을 하는 가해자 집단은 그들 시각이 얼마나 편협하고 미친 것인지 인지하지 못한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불타는 삼계에 빠져있기 때문에 바깥세상을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란다.


나는 이번 소동을 지켜보며 얘네들이 또다시 지네 무덤을 파네 싶었다. 나는 그저 그 불타는 집이 폭삭 내려앉는 것을 지켜봐야 할 뿐이다. 나는 파콰드가 미친 짓을 할 때도 같은 마음이었다. 심지어 본사의 한 임원은 이들의 이런 기행을 지칭하여, 얼마나 회사에서 할 일이 없으면 저런 투고를 하냐라는 말까지 했었다. 집단안에 있으면 시야가 좁아진다. 시야가 딱 무리 거기, 그 수준밖에 보이질 않게 된다. 고만 고만한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그 수준이 높지 않을 경우에는 더 무모하고, 더 위험한 행동을 하게 될 뿐이다. ex. 밀양집단성폭행사건등...  그래서, 1대 1로는 절대 그런 행동을 하지 못할 사람들이 단체로 움직일 때 마치 머라도 된냥, 완장질을 하는 것이다.


내 가치는 내가 제기하는 질문이 결정한다.

내가 사소하고 별 거 아닌 문제들을 자꾸만 이슈화시킬수록 내 가치 또한 같이 추락한다고 생각한다. 그 질문은 내 평소 철학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뭣이 중헌디! 


시선을 높이 높이, 그리고 반드시 내 머리로 생각해야 한다. 집단에서 나와 개별로 존재하게 될 때, 내가 똑같은 짓을 할 수 있나를 수없이 자문해 봐야 한다. 왜냐하면 내가 한 모든 행동들은 흔적을 남기게 된다. 불교에서는 전생, 업 이런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예전에, 조용헌 작가가 이 개념을 현대식으로 풀이한 적이 있는데, 그는 우리가 죽을 때 파노라마처럼 지난 인생이 업경에 비쳐 지나가게 되는데, 그게 실은 자기 무의식이란다. 설령 공식적으로 잘못되었다는 판정을 받지 않았다고다고 해도 자기 양심, 무의식은 카메라처럼 모든 것들을 찍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내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을 조심히 해야 한다. 결국엔 내 무의식이 나를 가두게 된다. 염라대왕이나, 하나님이나 어떤 절대적 심판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엔 자기 무의식이 자신의 지난 삶을 판결하게 된다.


시선을 높여야 한다. 그래야, 크게 보고, 크게 행동할 수 있다. 무리속에 숨어서 작게 볼수록 행동이 작아진다. 크게 크게 높게 높게 독립적으로 생각하자. 인생도 같이 커질 수 있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회사일이 그냥 그럴 때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