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서 매트리스로, 매트리스에서 침대로 올라오다
“침대 주문하셨죠? 내일 배송 예정이라 연락드렸습니다.”
지방 배송 소요 기간은 2주일 정도라더니 1주일 만에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목소리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성실하고 친절할 것 같은 배송 기사는 내일 오후 2시 반쯤에 도착 예정이니 설치할 자리를 정리해달라고 부탁했다. 7살 때 ‘101마리 달마시안’ 커버로 덮인 싱글 침대와 17살 때 나무로 만든 기숙사 2층 침대 이후 세 번째 침대였다. 스무 살이 넘은 뒤로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산 탓에 ‘이동이 쉽고 보관이 편한’ 이불 위에서만 생활했다. 그러다 스물 다섯이 되던 해에 셰어 하우스에 들어가며 고심 끝에 매트리스를 마련했다. 짐이 더 많아지는 것을 감수하며 택한 선택이었다. 지금은 다시 부모님이 사는 집으로 돌아왔고 이 집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사 갈 일이 없으므로 침대 프레임을 사도 문제없다. 이 생각을 하기까지 1년이 걸린 건 그사이 ‘굳이’ ‘대충 살자’ ‘그래봤자 눕는 건 똑같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산 침대였다. 우선 수납을 할 수 있어야 하고 반드시 나무색이어야 하며 침대 헤드는 없어야 한다. 그리고 가격이 저렴할수록 더 좋다.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한 침대가 납작한 인터넷 쇼핑몰 상세페이지에서 나와 한 평 남짓한 내 방에 가득 찼다. 생각보다 바닥에서부터 매트리스 윗면까지가 높았고 작은 줄로만 알았던 수납 칸도 깊고 넓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평평한 면에 누워 잠들어야 하는 인간으로서 이만하면 탁월한 선택이었다. 새 침대를 산 김에 가구 배치를 바꿨다. 그러고 보니 이 작은 방 안에 모든 가구는 모두 내 힘으로 마련한 것들이었다. 새삼 ‘경제활동인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무 살 처음 독립했을 때만 하더라도 아직 내 취향이 무엇인지 잘 몰랐고 있다 하더라도 수입이 없었기 때문에 감히 방을 채울 생각을 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정착보다 이동이 잦았기에 짐을 늘리고 싶지 않았다. 매트리스에 커버를 씌우고 그 위로 이불을 펴서 세팅을 끝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사운드 클라우드 앱에서 ♥를 누른 곡을 틀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여기보다 해가 저물어가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어울릴 법한 곡이 흘러나왔다. 어느 장소를 빌려 곡의 분위기를 표현했으나 사실 나는 캘리포니아에 가본 적이 없다. 하릴없이 누워 있을 때 핀터레스트(이미지 공유 SNS) 앱에서 본 이미지 몇 장을 막연히 캘리포니아 같다고 생각했고 그 이미지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를 곡에 빗댄 것뿐이다.
바닥에서 매트리스로, 매트리스에서 침대로 올라왔지만, 그날 나의 밤은 똑같았다. 여전히 천장을 향해 누워 스마트폰 속 세상을 헤집고 캘리포니아 같은 미지의 장소를 나타내는 이미지에서 그곳의 분위기를 상상했다. 그래도 아늑함만은 바닥에 붙어 잘 때보다 나았다. 무엇보다 잠드는 공간만큼은 취향대로 꾸미고자 하는 다짐을 이뤄 뿌듯했다. 머리맡 스탠드 불을 끄고 기분 좋게 눈을 감았다. 별안간 본드에서나 날법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구매하기 버튼을 누르기 전에 읽은 ‘다 좋은데 가구 냄새가 지독하다’는 여러 후기가 떠올랐다. 가성비에 눈이 멀어 크게 개의치 않은 부분이었다. 결국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었다. 꽃샘추위가 낀 봄밤 속으로 냄새가 흩어졌다. 그 후로도 한동안 창문을 열고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