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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l Sep 24. 2020

비행기야 태워줘서 고마워 사랑해 다음에 또 태워줘~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여행객 이야기

목적지인 김해공항에 착륙하자,

옆에 앉아있던 승객이 말했다.


비행기야 태워줘서 고마워 사랑해 다음에 또 태워줘


비행기를 사랑하는 승객

비행기한테 고맙다니.. 사랑한다니..

비행기를 조종한 기장님이나, 하늘길 안내를 도와준 관제소의 요원분들이나, 편안한 비행을 도와준 승무원분들도 아니고

에어버스에서 만들고 에어서울이 소유하고 있는 비행기한테 고맙다니.. 사랑한다니..


다음에 또 타려면, 비행기에게 부탁할 게 아니라

스카이스캐너에 들어가 스케줄에 맞는 항공편을 골라 요금을 지불해야지..


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내 옆에 앉은 승객은, 많아봐야 5살 정도 나이를 먹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승객은 내가 옆자리에 앉았다는 이유로 비행기에서 내리며

나에게 손을 흔들어 빠빠이 인사를 해주었다.


누나와 엄마 생각이 났다

사실 그 승객은 타면서부터 나를 괴롭혔다.

뚜껑이 열린 뻥튀기를 들고 타서는 흘리면서 먹고

신발을 신은 짧은 다리로 내 다리를 계속 찼다.


그 승객 옆에는 태어난 지 1년이 채 안되어 보이는 남동생과

그 남동생을 앞으로 안고 있는 엄마가 앉았다.


남동생은 무엇이 마음에 드는지 갑자기 웃었다가

무엇이 마음에 안 드는지 갑자기 울기도 했다.


평소 같았으면 반사적으로 짜증을 부렸을 텐데,

나보다 4살 많은 누나와 엄마 생각이 났다. (아빠도)


옆좌석 승객은 누나였다

엄마한테 안겨있는 동생이

짜증을 부리거나 울려고 하면

옆좌석 승객은 뻥튀기를 한 손에 쥔 채, 동생을 달랬다.


괜찮아~


라고 말하면서. (ㅋㅋ)


누나같았다.

아니, 누나였다.


나는 어른 행세를 했다

5년 정도 산 사람이 누나처럼 행동하자,

26년 정도 산 나는 어른처럼 행동했다.


옆좌석 승객이 뻥튀기를 흘려도

발로 내 다리를 계속 차도

맥락 없는 아무말을 계속해도

그냥 아무말 없이 미소지었다.


의자에 등을 바짝 기대서

창밖 하늘을 볼 수 있게 양보했다.


옆좌석 승객의 남동생이 울면

보통 사람들이 아이를 달랠 때 쓰는

괴상한 표정을 지으면서 달랬다.


어른 행세를 했다.

어른같았으려나?



26살,

아이라고 하기에는 아이만큼 순수하지는 않고

어른이라고 하기에는 어른만큼 알지는 못한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사람이 되었다.




-사족 1

LCC 항공사인데도 에어서울은 좌석이 넓네요.


-사족 2

저도 귀여웠던 아이 시절이 있답니다.

엄청 순해서 어른들이 좋아했다고 하네요.(엄마피셜)


-사족 3

비행기를 타면 저는 죽음을 생각합니다.

저만 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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