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제 순천시민이야?
“아빠, 우리 이제 순천시민이야?”
“아니, 아직은... 전입 신고가 남았어. 아직까진 제주도민이야.”
역시나 순천집에서도 제주도민을 졸업하지 못한 나. 이사 온 집을 청소하고 정리하며 나온 쓰레기들을 모아 하얀색의 종량제봉투에 담고 선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아파트 클린하우스로 향하고 있었다. 참고로 제주에서 사용하는 종량제봉투는 하얀색이다. 그러다 멈칫, 그제서야 이곳이 전라남도 순천임을 인지하고는 남편에게 말한다.
“여보, 종량제 봉투 사러 가야겠다.”
“거기 그 많은 종량제 봉투는 뭔데?”
“여기는 제주가 아니라고!”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하지 않았던가, 무슨 생각으로 이리 많은 종량제봉투들을 애써 챙겨왔는지 순천지역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당근마켓에서라도 팔고 올 걸 그랬다. 사실 좀 아깝긴 했다. 이사 오면서 냉장고며 쇼파, 오락기, 의자 등 짐이 되는 여러 물건들은 당근마켓을 이용해 싹 다 정리했다. 그런데 여기 이렇게 하나 더 정리 못한 품목이 남아 있을 줄이야.
다음날 우리는 전입신고를 하기 위해 동사무소를 찾기 시작했다. 인구가 많은 곳이라 당연히 동사무소를 생각했는데 아차, 우리가 이사 온 지역은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이다. 면사무소로 가야 하나 싶었으나 해룡면 상삼출장소가 있단다. 면 단위로 전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라더니 가까이에 자리한 상삼출장소에서 전입신고를 할 수 있었다. 전입신고를 마치고 드디어 순천시민이 된 그날. 나의 가방 안에는 보라색의 종량제쓰레기 봉투 80매가 들어있다. 타지역에서 전입해 온 경우 지원 혜택이 있다. 이사 용품비 10만원이 순천사랑상품권으로 지원되고 종량제봉투 또한 1인 당 20매를 준다고 한다. 전날 청소하며 종량제봉투를 몇 번 외쳤더니 어째 내 마음을 알기나 한 듯 종량제봉투를 챙겨주었다.
“여보, 그래도 우리 빈손은 아니다. 그치?”
당장은 빈손이지만 순천에서 다시 시작해 채워가자며 우리 부부는 굳은 다짐을 나눴고 그런 가운데 받은 뜻밖의 선물에 작지만 감사했다.
“우리 가족 순천시민 된 기념으로 고기파티 할까?”
순천사랑상품권을 이용해 지역 고기 맛집을 찾고 그곳에서 맛난 고기도 먹으며 우리 네 식구의 멋진 순천살이를 외치며 음료수 잔을 내밀고 건배했다.
남들은 순천으로 이사 온 우리를 보고 의아해한다. 도대체 왜 살기 좋은 제주를 떠나 왔냐고 묻는다.
예전에는 그랬다. 적어도 10년 전까지는 제주가 참 좋았다. 집값 걱정도 크게 없었고 생활 여건도 나쁘지 않았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제주살이’, ‘제주 이주’, ‘한달 제주살이’라는 단어가 자주 쓰이기 시작했고 제주 토박이들에게는 꽤나 낯설게 들려왔다.
“제주 토박이는 뭐고, 제주 이주민은 뭐야?”
하지만 이제는 제주도민에게도 제법 익숙해졌다. 사람들을 만나면 오히려 자연스럽게 이런 단어로 인사를 나눈다.
“제주 이주민이세요? 몇 년 차이신가요?”
TV, 유튜브 등 여러 매체들에서도 제주는 식지 않은 키워드 중 하나다. ‘제주살이 팁’, ‘제주살이의 장점과 단점’, ‘제주 거주 연예인들’. ‘제주도에 자리한 국제학교 비교’ 등 제주에 대한 관심은 보는 사람에 따라 참으로 다양하다. 그래서인지, 여전히 제주 이주를 계획하고 제주살이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제주가 아닌 타지역, 바로 이곳 순천에서도 제주에 대한 관심과 환상은 여전히 뜨거웠다.
“남들은 제주로 가려고 난린데 왜 이곳에 오신 거예요?”
거주할 집을 알아보는 부동산에서도, 아이들 전학 문제로 간 학교에서도 똑같이 묻는다. 아이들 또한 아이들 대로 전학 온 우리 아이들에게 제주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나 제주 한 달 살이 했었어. 제주 참 좋았어.”
“제주 바다 정말 예쁘지?”
그렇다면 우리 가족은 왜 제주를 떠나오게 되었던 걸까? 매일 같이 치솟는 집값. 감당하기에 너무 벅찼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집세가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때 우리 눈에 들어 온 도시가 순천이었다. 제주에 비해 집값이 안정적이었고, 병원과 편의시설이 가까워 도보로 오가기도 편했다. 이곳에서의 주거 생활은 생각보다 만족스러웠다. 자연경관 또한 제주 못지않았다. 도시 안에서도 푸른 빛을 자주 마주하며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지금 순천지역은 우리 가족에게뿐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도 관심과 사랑을 받는 도시다. ‘202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2023.04.01. ~ 2023.10.31.)’를 통해 전국은 물론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순천에 매료되었고, ‘순천하세요’라는 구호가 이 도시의 인사처럼 자리 잡았다. (‘순천하세요.’ : 순천시의 주요 슬로건. ‘순천처럼 하세요’란 뜻으로 각종 현안 문제 해결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
아직 새내기 순천시민이지만, 우리 가족도 함께 외쳐본다.
"순천하세요"
그리고 이곳 정원 도시 순천이 투기자들을 위한 도시가 아닌, 정말 행복한 삶을 꿈꾸는 순천시민들의 터전으로 영원히 자리해 나가길 바라본다.
-2023년 8월 23일에 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