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생물과 숙주의 상호작용은 어디까지일까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은 무엇일까? 적혈구는 30조 개에 이르는 인간 세포의 84%를 차지하지만,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다.
이스라엘 바이츠만과학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인간의 몸은 39조 개의 박테리아와 30조 개의 인간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 박테리아의 대부분은 대장과 소장에서 공생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 몸은 우리의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들만의 것이 아니기도 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래서일까, 질환을 겪는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 박테리아에 주목하는 면역학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캐나다의 토론토 대학교 연구팀은 장 점막 박테리아와 질병 치료 사이의 연결고리에 얽힌 비밀을 풀어냈다.
가머만(Jennifer L.Gommerman) 교수 연구팀은 셀(Cell) 저널에 발표한 연구에서, "장내 미생물과 면역체계의 상호작용을 통해 발달된 면역글로불린 A 분비성 B 세포들이, 중추신경 조직으로 이동해 다발성 경화증 증상을 완화시킨다"라고 밝혔다.
다발성 경화증은 뇌와 척수 등의 중추신경계 세포에 발생하는 만성 질환으로, 환자의 면역 체계가 건강한 신경세포와 조직을 공격하는 자가면역 질환이다. 20대에서 40대에 이르기까지 높은 발병률이 나타나며 여자에게서 더 흔하게 발견된다.
다발성 경화증의 완치 치료법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으며, 질환의 심한 정도를 줄이고 장애의 진행을 늦추기 위해 면역 반응을 조절하는 약물치료가 최선이었다.
가머만 교수 연구팀은 다발성 경화증의 원인이 면역체계의 오작동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면역체계를 보완함으로써 다발성 경화증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했다.
장내 미생물이 숙주의 면역, 대사, 신경계에 관여하며, 장내 생태계의 변화가 숙주의 질병과도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은 잇따라 보고되어 왔다.
워싱턴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제프리 고든(Jeffrey Gordon)은 2006년 연구에서 장내 미생물과 숙주의 건강이 연관되어 있음을 입증해 주목을 받았다. 장내 무균 상태인 쥐에다 비만 쥐의 똥을 이식한 결과, 무균 쥐가 비만해진 것이다.
면역글로불린 A 분비성 B 세포는 전체 글로불린 분비성 B세포 가운데 80퍼센트를 차지하며, 장내 미생물에 의해 발달되는 면역세포들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그룹으로 그간 활발하게 연구되어 왔다.
올해 초 시카고 대학교의 벤더락(Albert Bendelac) 교수 연구팀은 이뮤니티(Immunity) 저널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서, '장에 있는 특정 박테리아들이 면역글로불린 A 분비성 면역 세포들의 발달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벤더락 교수는 "비만이나 당뇨와 같이, 미생물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진 질환의 진행 과정에 과학자들이 효과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라고 설명했다. 해당 면역 세포들은 장 미세환경에만 머물러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장에서 멀리 떨어진 장기에서 발생하는 질병에는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어 왔다.
가머만 교수 연구팀은 뇌염을 재현한 생쥐의 장에 T.musculis 박테리아를 이식했다. T.musculis 박테리아는 장에서 면역글로불린 A 분비성 B세포 성숙을 촉진하는 박테리아로 잘 알려져 있었다. 그 결과, 중추신경조직에서의 염증반응이 완화되는 것을 확인했다.
뒤이어 신경조직과 소장, 대장 등의 여러 조직을 분석한 결과, 장 미세환경에만 머물러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던 면역글로불린 A 분비성 면역 세포들이 멀리 염증이 발생한 조직까지 이동하는 것을 밝혔다.
한편으로 다발성 경화증을 유발하는 고장 난 면역체계 내에서, 박테리아의 도움을 받아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면역 세포들이 만들어진다는 것.
이 여행에는 부작용이 따른다. 면역 세포들이 다른 장기의 치료에 투입되면, 장 미세환경의 면역력은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 실제로 신경 염증 조직에서 장 유래 면역세포의 수가 급증하는 기간에 뇌염 증상은 완화되었지만, 장에서는 외래 항원에 대한 통제력이 떨어져 손상을 입기도 했다.
가머만 교수는 "중추 신경계에서의 염증 반응이, 면역 세포에 작용하는 원칙을 수정함으로써 세포들의 먼 여행을 이례적으로 허락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장내 미생물을 활용한 질병 치료로의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할 수 있다.
이러한 발견이 의료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면역글로불린 A 분비성 B세포들이 따르는 일련의 신호들을 규명하는 등 보다 깊은 이해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