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그데이즈》
김덕민 감독의 영화 《도그데이즈》(2024)는 반려견을 통해 관객을 ‘울리는’ 영화이다. 반려견을 잃어버리는 장면, 안락사를 고민하는 사연, 죽은 애인의 반려견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등 눈물 나는 서사가 반복된다. 아이에 관한 내용도 있다. ‘정아’(김윤진)와 ‘선용’(정성화)의 딸이 된(입양된) ‘지유’(윤채나)는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밥도 많이 먹지 않고, 큰소리도 내지 않는다. 영화 후반부에서 이유가 밝혀진다. 지유는 ‘밥을 많이 먹고 시끄럽게 굴면 보육원으로 돌아가야 한다’라고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따뜻하고 무해한 이 영화는 이런 식으로 사람을 울린다. 마음 아프게, 울지 않고는 못 견디게.
화면 속에서 우는 아이를 보며 사위가 흐려진 건 나뿐만이 아닌 듯했다. 상영관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 장면에서만 그랬던 게 아니었다. 등장인물들의 내밀한 사정이 나올 때마다 우는 사람들이 많았다. 혹 관객을 울리기 위해 만든 영화인가. 제작사를 보니 그런 듯하다. 《도그데이즈》는 《해운대》(2009), 《국제시장》(2014), 《영웅》(2022)등을 만들어 온 제작사의 신작이다. ‘가족’ 또는 ‘국가’에서 ‘반려견’으로 매개가 변했을 뿐 제작사가 추구하는 정서와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솜씨 좋게 관객을 울린다. 이 영화를 ‘신파극’으로 분류해도 어색하지 않은 이유이리라.
어떤 영화를 신파적이라고 말한다면 호평보다는 비판의 의미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특정 작품을 평가할 때 신파적인 장면은 장점보다는 단점의 근거로 쓰인다. 그만큼 관객들은 눈물을 자아내는 데 목적을 둔 영화를 비판적으로 인식한다. 영화를 보다가 울 수는 있지만, 관객을 울리기 위해 만든 영화는 꺼리는 셈이다. 왜? 인생에는 울 일이 많고, 일상적인 우울감도 충분하니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써가면서까지 영화를 보며 울 필요는 없다고 여기는 듯하다. 나 역시 같은 재화를 들인다면 완성도 높거나 사유가 담긴 영화를 보고 싶다. 다만 신파극에 아무런 장점이 없다면 이토록 꾸준히 제작되지는 않을 것이다.
신파극의 장점은 무엇인가. 나는 마음의 온도를 높여주는 점을 꼽겠다. 울기만 한다고 온도가 올라가지는 않을 것이다. 중요한 건 그다음의 일. 다시 지유의 이야기를 해보자. 결말에서 지유는 정아와 선용을 ‘엄마’, ‘아빠’로 호명한다. 헤어지지 않기로 약속하면서. 다른 에피소드의 주인공들 역시 비슷한 결말을 맞는다. 따뜻하게, 그들을 화면 뒤로 두고 갈 관객들이 안도할 수 있게. 그러니 정정한다. 《도그데이즈》(2024)는 관객을 ‘울린 뒤 안아주는’ 영화이다. 안아준다는 건 어떻게든 따뜻하게 결론짓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영화로라도 그런 결말을 만날 수 있게 해준다는 것. 이것이 신파극의 장점이리라.
살다 보면 타인의 사연에서든 공동의 사정에서든 누군가와 함께 우는 순간이 온다. 다만 삶은 영화와 같지 않고, 마음의 일에는 정해진 끝이 없어서 울음이 다음 울음으로 이어지는 때가 많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도 서로 안아줄 수는 있겠다. 물리적인 포옹이 아니더라도. 마음으로 연대하기. 함께, 슬픔을 돌파할 때까지. 이렇게 말하면서도 막상 함께 울고 나면 당황한다. 어색하고 멋쩍어서 ‘다음 할 일’을 미처 하지 못한다. 그래서 ‘울리고 안아주는 영화’가 필요한 게 아닐까 한다. 함께 울고 난 뒤 안아주는 장면을 봐둘 수 있으니까. 그 순간에 필요한 마음의 온도를 가질 수 있으니까.
(2024. 0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