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우울증과 모성애는 별개다_3
수술 자국은 마음에도 생긴다.
난 수술이 끝난 뒤 3시간이 지나 깨어났다. 눈을 뜨자마자 수술대에서 잠들던 마지막 순간이 연결되며 나는 울기 시작했다. 깨어나서도 여전히 무서웠고 서러웠다. 내 의지와는 별개로 절대 하고 싶지 않았던 수술을 해야 했고, 아기를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했다는 그 모든 것이 서러웠다.
그럼에도 눈을 뜬 나의 첫마디는 엄마스러웠다.
'아기는 괜찮아? 정말 괜찮은 거야?'
아기는 다행히 아주 건강하게 태어났다. 예후를 살피기 위해 2시간가량 산소를 마신 뒤 안정되었음을 확인했다고 했다. 3.84kg의 우량아였다. 사진으로 아기를 확인하고는 이게 내 아기가 맞나 싶었다. 내 눈으로 보지 못한 갓 태어난 아기의 모습은 너무 크고, 낯설었다. 내가 아기를 만나는 순간은 미리 찾아봤던 수많은 출산 vlog들처럼 아름답지 못했다. 무서웠고, 서러웠고, 당혹스러웠다. 아름다운 만남의 순간이 아닌 극 현실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그 속에서 나는 정신 못 차리며 울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이 돼서야 아기를 실제로 만날 수 있었다. 아기를 품에 안을 수도 없이 누워서 아기를 보는데 여전히 내가 정말 출산을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어쩌면 아기를 어딘가에서 빌려온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이런 생각은 꽤나 오랜 시간 지속되었다. 아마도 아기가 나와 남편을 적절하게 닮지 않았더라면 그 의문은 더 증폭되었을지도 모른다.
한 번도 머릿속으로 그려본 적 없던 수술의 회복과정은 정말 끔찍했다. 옆으로 몸을 뉘이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다. 일어날 땐 창자가 쏟아지는 것처럼 아프다더니 그 말이 꽤나 설득력 있었다. 이렇게나 아픈데 움직일수록 회복이 빠르다니 너무 잔인했다. 오후가 돼서야 몸을 일으켜 볼 수 있었고, 아기를 낳은 지 거의 24시간이 되어서야 아기를 품에 안아볼 수 있었다. 이틀이 지난 뒤에 소변줄을 제거했고 처음으로 화장실에 갈 수 있었는데 소변을 본다는 게 얼마나 복근을 많이 사용하는 행위인지를 절실하게 깨달았다. 정말이지 힘이 들어가지도 않았다. 아랫배를 쥐어짜며 심호흡을 거듭하고 거듭해야 했다. 소변보는 일이 이렇게 아프다니, 너무 끔찍해서 물도 마시기 싫었다. (소변이 마렵기 시작할 때도 배가 아프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깨달았다.)
병원에 있는 날들은 졸음이 쏟아졌고, 계속해서 아팠다. 식은땀이 끊임없이 났고, 오한이 들어 덜덜 떨기를 반복했다. 배가 아파 눈뜨는 새벽마다 천장을 바라보며 공허히 눈물을 흘렸다. 내 몸은 내 맘대로 되지 않았고, 나는 남편의 도움이 없이는 화장실도 갈 수 없는 처지였다. 나는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멋진 여성이었는데 한순간에 무너져 내려 가만히 누워 천장만 바라보는 신세가 되었다.
수술 후 5일이 지나도록 나는 수술 자국을 확인 조차 할 수 없었다. 내 눈으로 마주하고 싶지 않았고, 무서워서 계속 미루고만 싶었다. 최대한 늦게 확인했던 나의 아랫배는 수술하며 생긴 새빨간 튼살과 선명하게 그어진 칼자국, 실밥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내 몸의 상처들이 무섭고 징그러워 오래 보지도 못하고 거울을 등지고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아주 오랫동안 외면하고 싶었다.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 선명한 빨간 선들이 내 마음에도 죽죽 그어졌다.
내 몸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순간에서 만나는 무기력함은 산후우울증의 시작이었고 나는 그 시작도 눈치채지 못한 채 표정을 잃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