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지로움 Oct 18. 2021

엄마가 된 뒤에 다시보는 어바웃타임

사랑영화가 아니라 진짜 인생영화네

어바웃타임을 인생영화라고 뽑는 사람들이 많다. 나에게도  영화는 마음 속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인생영화  한편이다. 사람들에게 어바웃타임이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극 중 주인공 팀은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 능력을 이용해서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기위해 수차례 과거로 돌아간다. 마치 사랑이 그의 인생의 전부 인것 처럼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게 쟁취한 사랑 메리와 결혼까지 하게 된다. 사람들은 이 과정에서 느껴지는 그의 열렬한 사랑을 보며 대리만족을 했던 것 같다. 나 또한 그랬다. 그래서 어바웃타임은 나에게 사랑영화로 남았다. 아기를 낳기 전까지.


팀이 아빠가 된 뒤 시간여행에 한 가지 주의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 과거로 돌아가 미래를 바꿀경우 태어나는 아기가 바뀌게 된다. 미래를 바꾸고 싶다면 처음 만났던 아기를 포기해야만 한다. 얻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도, 아기와의 추억, 기억, 모든걸 잃어야 한다. 그 일이 과연 가능할까? 어떤 부모에게 그 일이 가능할까?


팀의 두번째 아기가 태어난 뒤, 아버지가 돌아가신다.(아버지도 자식 때문에 과거를 바꿀 수 없었기에 지병을 고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팀에게는 시간여행이라는 행운이 있었기에 돌아가시기 전의 아버지에게 찾아가 둘만의 시간을 보내곤 한다. 탁구를 치고 함께 책을 읽는다. 둘은 미래를 바꾸지 않을 잔잔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다. 함께 나이들어가는 아버지는 아닐지라도 그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충분하게 달랠 수 있었기에 아버지의 부재를 크게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메리는 팀에게 셋째아기를 제안한다. 그는 새로운 아기와 아버지와의 이별을 선택해야했다. 그렇게 셋째아기가 태어나기 직전 팀은 아버지에게 찾아가 마지막 만남임을 알리고 더 진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아버지와 진짜 이별을 한다.


영화가 아닌 현실에선 당연한 이야기이다. 부모는 떠나가고, 새로운 생명은 태어난다. 하지만 우린 부모와 자식 중 곁에 둘 존재를 선택 해야하는 일은 없다. 당신에게 그런 선택의 순간이 오면 어떻게 하겠는가?


아기가 뱃속에 자리잡은지 4개월이 지난 어느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지병이 있으셨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 아기를 낳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와 이별 할 준비를 하나도 못했다. 아버지와 나 사이의 마음의 숙제도 풀고 웃으며 마주할 수 있을거라는 희망을 품었다. 언젠가는 아주 사이가 좋고 애틋했던 기억 속 아빠에 대한 그리움도 채울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무방비 상태로 아버지와 이별했다. 임산부였던 나는 아버지의 임종부터 그 끝까지 한번도 참여할 수 없었다. 일년 전 마지막으로 택시에 태워드리던 모습만이 여전히 내가 아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뱃속의 아기를 핑계로 나는 아버지와의 이별을 유보했다. 마음껏 슬퍼할 수 없었다. 목놓아 울 수도 없었다. 배가 아파오며 아기가 힘들다고 경고를 보냈으므로 나는 부모 잃은 슬픔을 목석처럼 흘려보내야했다. 팀 처럼 아버지와 자식 중 누구를 고른건 아니지만, 내 경우에도 부모와 자식 중 먼저 챙기게 되는건 역시 자식인가보다.


부모가 된다는 건 참 어려운 것 같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종종 했다. 언제로 돌아가서 어떤일을 할지 때때로 생각에 잠겨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했다. 잠이 들지 않는 밤을 보내기엔 너무나 흥미로운 상상이었다. 출산을 한 뒤에도 종종 생각에 잠겼다. 내가 아기를 낳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아기를 좀 더 늦게 낳았더라면? 정말 간절할때 아기를 만났더라면? 하면서 생각했다. 출산을 겪은 직후 피폐했던 마음이 고스란히 젖어 들었던 물음표의 끝은 자괴감이었다. 못난 생각을 하는 자격이 없는 엄마라는 자책감 같은것이 마음을 뒤덥었다. 그래서 참 많이 힘들었다. 아기로 인해 힘이 들면 과거로 돌아가는 상상을 하고 다시 자책을 하며 스스로의 마음을 정화하는 과정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럼 나는 지금 어떤 마음일까? 과거로 돌아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어느날 아기를 보는데 문득 든 생각이 마음에 퍼져 심장이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내 자식을 만나 사랑을 느끼며 매일 매일이 새로운 이 경험을 기억하는 이상 나는 이 아기를 포기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내 아기가 네가 아니라면 나는 아기를 낳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불가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다른 어떤 것을 준다고 해도 포기할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아기였다.


아기와 사랑에 빠졌다는 표현을 한다. 그 표현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 기른정일까 낳은정일까? 그것도 모르겠다. 단 한가지 확실한 건, 지금 이 아이를 만난 그 순간부터 나의 인생에서 이 아이를 대체할 수 있는 그 무엇도 없다는 것.


아기는 존재만으로 감격스럽다. 나에게 이렇게 예쁘고 반짝이는 존재가 오다니, 내가 이런 행복을 누려도 된다니..


출산후 산후 우울을 겪으며 나는 아기가 내 인생의 빛을 빼앗아버린 지글거리는 태양이라고 생각했다. 모든것을 불태워 버리는 것 같았다. 나라는 사람을 휘발시켜버리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아기는 나라는 사람을 환하게 비추어 가능성을 보여주고 더 반짝이는 것을 찾게 해주는 존재였다.


 인생이 이렇게 찬란하게 빛나고 있음을 알려주는 존재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명령어 : 뒤집기를 하시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