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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맑음 스튜디오 Sep 14. 2022

겨우 내가, 감히 후배들에게 - 2

직업은 내 적성과 능력을 표현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모두가 낯설게 보는 것을 미덕처럼 여겼다. 무언가 아이디어를 내놓아야 할 때, 불필요한 살을 발라내어 회를 뜨는 것. 바로 '낯설게 보기'. 이 단어가 정말 많이 쓰였다. 회의를 하다가 뭔가 잘 안 떠오르고, 펜 끝으로 머리도 긁어도 부스럼조차 없다. 그런 침묵이 올 때에도 '낯설게 보기'를 꺼내며 나누던 의제를 한 발짝 멀리서 바라본다. 어디 낯설게 봐라. 뒤집어도 보고. 펼쳐도 보고. 다른 단어로 표현도 해보고...



  앞선 내용의 요약을 하자면, 나는 졸업한 시각광고디자인과 2~3학년들에게 할 강연을 제안받았으나 부득이하게 취소가 되었다. 대상에 맞춰 준비한 강연을 글로 작성하고 있다. 그리고 저번 핵심은 수강한 과목으로 자신의 적성을 찾기보다, 수강한 수업에서 16주의 수업 중에, 몇 주차의 수업이, 과제가, 그 주의 자신이 좋았는지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것이 자신의 적성을 '직업'으로 찾는 게 아니라 '직무'로 찾는 게 가능해진다.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직업'을 검색한 결과



  왜 직무를 먼저 찾아야 할까? 나는 여기서 '직업'이라는 단어를 낯설게 볼 것을 권한다. 애초에 직업은 단어부터 '자신의 적성과 능력'이 수반되어야 하는 업(業)이다. 적성과 능력으로 이루는 목표라기보다, 휘두를 때 쥐고 있어야 할 도구에 가깝다. 나의 적성을 표현하는 도구. 나는 직업을 그렇게 생각해보자고 권한다. 내 앞에선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하며 순수하게 정제하는 작업에 즐거움 있다면, 극사실주의 화가와 복어회 기능장이 다를 바 없다.



  나도 안다. 지금 이런 태도가 수많은 직업의 프로들에게 실례라는 것을. 그럴 의도는 죽어도 없다. 나는 이 내용을 필요로 하는 후배들에게. 직업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자신이 즐거워지는 순간에 몰입하는 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수단. 그런 직업을 끝끝내 고르길 바란다. 직업을 나의 적성 표현을 위한 수단으로 바라볼 때, 직업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무턱대는 태도가 두려움을 허문다.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았어서 전편에서 그만뒀다고 말한 광고디자이너 이후에 바로 개발자의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글쓰기가 좋아져서 글을 쓰는데 심한 악필인 게 부끄러워 캘리그래피를 5년을 넘게 하질 않나. 중간중간에 사진작가가 되고 싶어서 사진도 열심히 올려봤었다. 골똘히 앞을 바라보며 더 나은 것을 선택할 순 없는지 의심하는 걸 좋아한 나는 코딩을 선택했다.




  디자인을 하다가 코딩도 공부하고.. 정말 대단해요.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나라고 해본 적이 없던 코딩 공부가 어디 순탄했겠는가. 컴퓨터공학과 수업을 냅다 수강신청을 했다.

  "디자인과 학생이 듣기엔 어려울 텐데, 괜찮겠어요?"라고 교수님이 되물으셨지만 나는 무조건 듣겠다고 했다. 8주 후, 중간고사 점수 결과의 범위를 공개하셨다. 80~100점 사이의 무수히 많은 점. 마치 별자리를 보는 것 같다. 그 가운데 40점 남짓하는 단 하나의 점. 학번을 공개하진 않았지만 그게 나라는 것은 알았다. 


교수님이 공개 발표한 중간고사 결과지


  이 사진이 공개되고 나서 이전부터 점수 공개에 대한 불만이 많았던 컴퓨터공학과 학생들이 학교 커뮤니티에 불만 글을 올렸고(내가 불만을 가지지 않았고, 내가 올리지 않았다), 컴퓨터공학과의 점수 범위 공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 경험을 통해 공부의 어려움을 알고, 무지의 부끄러움도 터득했지만 값진 경험이 수반되었다. '공부할 것을 잘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당시 웹 개발자가 되고 싶었고 '자바스크립트(Javascript)'라는 걸 배워야 했다. 그런데 앞에 '자바(JAVA)'라는 글자를 보고 수강한 것이다. 이 차이를 모르고 공부한 것은 사슴벌레를 공부하려고 했는데 사슴 공부를 한 것과 같다. 이게 제일 한탄스러웠다. 내가 뭐가 필요한지도 모르고, 알아보지도 않고 16주의 수업을 듣다니!




  직무, 직업도 골랐는데 뭘 공부해야 하는지 어떻게 알죠?

  내가 아직 사회의 맛을 알기 전에 계획표를 짠 것이 있다. 바로 연도의 계획이다. 현재 연도를 적고 한 해씩 더해가며 졸업하는 연도, 그리고 그 연도로부터 3년까지 종이를 가르는 수평선 안에 적는다. 그리고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적는다.



  예를 들면, 나는 2016년에 이걸 작성했고, 군 복무 때문에 2020년에 졸업하며, 2024년까지. 2016~2024년의 점을 수평선에 찍은 것이다. 그리고 당시에 내가 읽은 책이 인구학에 관련된 조영태, <정해진 미래>라는 책을 읽었기 때문에 인구와 관련된 이슈를 적었다. 저출산(혹은 저출생)으로 인해 기업보다 개개인의 삶을 보장해야만 하는 고용시장, 현재 대한민국이 중~고등학생들에게 시행 중인 교육과정 중에 중요도 높게 가르치는 것이 무엇이며 이전과 무엇이 다른지, 어떤 것이 트렌드라고 사람들이 믿는지 등을 작성했다.



  그런 다음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을 기업'을 찾아본다. 내가 취업을 하는 시점에도 건강하고, 시장을 유지 혹은 확장하며 스스로 건강하다고 믿는 기업문화를 가진 회사는 어디인가. 그리고 퍼스널 브랜딩의 중요성.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이 아니라 내가 십수 년간 겪으며 쌓고야 말았던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그렇게 찾은 기업의 웹사이트, 운영 중인 SNS, 블로그, 유튜브 채널 모두 구독하고 채용 중인 시스템을 본다. 내가 찾는 직무, 직업을 그 회사가 채용 중이라면, 신입과 경력 상관없이 채용조건과 우대조건을 확인한다. 그 회사가 적은 현재 채용조건이 최신 트렌드의 기술일 것이 분명하며, 우대조건이 미래를 위한 지식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가 공부해야 할 것들을 정했다.



  이렇게 거시적인 계획을 표시해두면 중간의 점은 한 곳을 향해 나아가는 소실점 같다. 어딜 찍어도 하나의 과정일 뿐, 중요한 것은 끝까지 나아가는 나일뿐이다. 그게 가능해서였을까. 졸업작품의 주제도 내가 앞서 정한 회사에게 보여줄 만한 주제로 설정했었다. 교수님과의 상의를 통해 끝내 채택되진 않은 주제도 있지만, 이런 한 발짝 멀리서 보는 것. 그래, 낯설게 보기가 도움은 되었다.



  마지막으로, 여기에 설명하진 않았지만 나는 앞서 설정한 계획에 내가 사회에 나가자마자 받을 첫 연봉과 3년 뒤에 받을 연봉도 정해두었다. 이 이유 때문에 처음 사회에 나가는 시점으로부터 3년 뒤까지 적은 것이다. 현재 글에는 주제와 멀어져 어떻게 첫 연봉을 설정하였는지는 더 쓰지 않겠다.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계획을 한 번이라도 한다면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게 된다. 내가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눈물샘이 앓아온다면, 자신과 비교해보라.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를 현재의 나와. 나는 이때 계획한 나와 종종 나를 비교한다. 예상한 미래는 왔는지, 약속한 연봉은 받고 있는지. 적성과 능력을 발휘하는 미래를 살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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