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로맑음 스튜디오 Sep 11. 2022

겨우 내가, 감히 후배들에게 - 1

내가 좋아하는 일 찾아보기

  졸업한 대학의 학과 후배들에게 선배로서 강연을 하게 될 기회가 생겼다.

  "상준 씨가, 디자인과 개발 두 분야를 겪으니 후배들에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더 많을 것 같아요." 교수님께서 내게 연락하며 말씀하셨다. 필요한 절차를 추가로 알려주셨고, 통화를 마쳤다.


  무슨 이야기를 해주는 게 좋을까? SNS 계정에 질문글까지 올려보며 어떤 이야기를 해주면 좋을지 주변인들과 주고받았다. 40분 남짓의 짧은 강연과 20분의 Q&A이지만 나의 공식적인 첫 강연이라는 마음에 들떴다. 현장, 실무에 대한 이야기. 취업 이야기. 포트폴리오. 셀프 브랜딩 등 다양한 소재들이 떠올랐고 강연 대상인 대학 3학년의 시각광고디자인과 학생들에게 해줄 내용을 정리했다.


  내용은 작년 여름에 작성했던 글 디자인과 출신인 내가 코딩을 시작한 이유와 골조는 비슷하다. 디자인과 후배들에게 '여러분 디자인하지 마세요, 코딩하세요!' 할 수 없는 노릇이며 나는 누구에게도 '꼭 이걸 해라'식의 단정 짓기를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그런 내용이 대학교 2~3학년에게 적절한 내용이라고 스스로 동의할 수 없었다.

  강연 대상에게 더 적절한 내용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나는 앞서 교수님의 말씀대로 광고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시각광고디자인과에 진학했지만 웹 개발자의 길을 선택하고 해당 분야를 공부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어떻게 결정한 것이며, 그걸 어떻게 공부했는지 그 과정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이 내용을 어떤 순서로 이야기하고, 예상되는 Q&A 질문과 답변을 정리했다.


  일주일 후, 교수님께 연락이 왔다.



졸업생 특강은 졸업생 중 학번 높은 순으로 하는데

다른 교수님께서 학번 높은 졸업생을 추천해 주셔서

상준님은 다음에 해야 할 것 같아요



  "아." 정말 열심히 준비해보려고 했는데, 괜히 탄식했다. 이번 학기에는 더 멋진 선배님의 강연을 후배들이 만났길 기원한다. 그럼 내가 준비한 내용은 어떻게 해야 하나. 그 내용이 바로, 여기 글로 써보기로 한 것이다.

먼저, 내가 졸업한 대학교의 시각디자인과 3학년 학생들을 위한 강연 내용이었다는 것을 염두 해두길 바란다. 겨우 내가, 감히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게 없다. 뭘 하고 싶은 지 모르겠다.

내가 광고디자인을 하고 싶어서 시각광고디자인과에 진학을 하고 3년을 꼬박 다녔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재미가 없다. 그렇다고 하고 싶은 게 따로 있던 게 아니고, 뭘 하고 싶은 지 모르겠다. 광고 공모전과 인턴십에 왕왕 도전했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래서 광고디자인을 그만두고 다른 걸 도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뭘 잘하는지 어떻게 찾는가?

다양한 경험을 했어야  경험을 토대로 결정을  것이다. 아주 다행히도 내가 나온 학과는 광고디자인뿐만 아니라 브랜딩, 편집, UI/UX 디자인  여러 가지 들을  있었고 졸업을 위해 필요했다. '거기서 마음에 들었던 수업이 뭔지 고르고 그걸 해라'라고 말하려는  아니다.  수업에서 내가 ' 주차' 즐거웠는지를 생각해보라고 권한다. 모든 16주나 걸리는 결과물을 처음부터 내놓느라고 하지 않는다. 이론을 배우고, 자료를 조사하고, 주제를 정하고, 그거에 대해 서로 회의하고, 교수님에게 피드백을 받고, 수정하고, 발전시키고, 수정하고, 수정하고, 갈아엎고, 수정하고, 수정하고, 수정하고, 수정하고,... 만든다!


  16주를 달리는 모든 과정이 행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소위 '교수님께 깨지는' 주가 있었을 텐데 그 주에 무엇을 하는 주였는지 한 번 확인해보자. 예를 들면 나는 '첫 기획'에는 많이 서툴렀다. 그 주엔 교수님이 가르마를 쓸어 넘기며 '하아' 하고 내쉰 한숨에 '이거를 어떡하지?'가 섞여 들려왔다. 하지만 '문제가 있는 것을 고치고, 발전시키는 주'에는 칭찬을 많이 받았다. 나도 '상준 씨는 천재예요'라고 칭찬을 들었던 게 아니라 '상준 씨는 초반엔 잘 못하는데 계속 붙어서 생각하고, 발전시키는 걸 잘해요.'라는 평을 받았었다. 나도 스스로 그걸 좋아한다. 동일한 일을 반복적으로 하는 것은 싫어한다. 다 만든 걸 발표하고 소개하는 걸 좋아한다.


  아! 나는 직접 '서비스를 기획'할게 아니라 어떤 문제 상황에 '솔루션을 도출'하는 과정을 잘하는구나! 한 서비스를 계속 고치는 것보다 새로운 걸 계속 만드는 에이전시의 성향이 맞겠구나! 그리고 그걸 꾸준히 포트폴리오로 정리하는 걸 좋아하는구나! 이런 식으로 내가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찾아냈다.


  내가 좋아하는 '무엇을 디자인하는 게 좋은지'를 먼저 정할 것이 아니라, 디자인의 전 과정에서 내가 어느 위치에 가장 특출 난지를 찾아보기를 권한다. 그런 다음에 '뭘 디자인하는 게' 좋은지를 정하기를. 즉, 직업보다 직무를. 그것도 매우 촘촘하게 생각해보길 권하고 싶다.




  글이 매우 길어져 다음 글로 '내가 하고 싶은 직업'을 결정하는 것을 겨우 내가, 감히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다. 어떤 직무를 내가 좋아할지 이번 글로 정했기 때문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