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오스크로 카드 분실을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띠롱.
문자가 왔다. 잠이 덜 깨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들었다. 오른팔을 접영 하듯이 허우적대며 충전기를 연결해놓은 스마트폰을 찾았다. 스마트폰이 빛을 덜 열린 눈꺼풀 사이로 홍채에 내리꽂았다. 남은 팔로 화면을 대충 가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오전 4시 37분. 문자가 온 소리였다.
“00 아이스크림, 400원 결제”
응?
내 카드가 집 근처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결제가 되었다. 당장 일어나 거실장의 지갑을 확인했다. 결제되었다는 카드가 없다. 전날 밤에 아이스크림을 사고 두고 온 게 확실했다. 급하게 외투를 걸치고 다듬을 옷매무새를 찾아 뛰어나갔다. 가게의 도착하기까지 거리는 내 마음만 요동칠 뿐, 그저 고요했다.
문을 열자 키오스크에 내가 찾던 카드가 결제 모듈에 그대로 꽂혀있었다. 그제야 호흡이 돌아왔다. 누가 내 카드로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고 간 듯했다.
'카드가 여기에 있다고 알려줬다고 생각하자...'라고 한숨 같은 생각을 하며 카드를 뽑고 나서 옆을 보니, 키오스크 옆에 무수히 많은 카드가 묶여있었다. 카드들은 자기들이 분실된 것조차 알지 못한다는 듯이 고무줄로 묶여 서로 연대하고 있었다. '문제다. 문제야. 우리가 이렇게 모이게 된 거라면 분명 문제가 있다고!'
나는 왜 이 카드들처럼 나의 카드를 끼워둔 채로 두고 갔을까? 결제자의 개인적인 부주의함은 잠시 제쳐두고, 분실한 카드가 이 정도로 쌓여 있다면 달리 생각해볼 만하다. 나는 해도 떠오르지 않은 새벽에, 이 키오스크가 결제를 어떤 순서로 하는지 다시 확인해보기로 했다.
1. 구매할 상품의 바코드를 찍는다.
2. 모두 찍었다면, 결제 방식을 '현금'과 '카드' 중에 선택한다.
3. 카드를 넣으면 결제 중이라는 안내가 뜬다. 곧 결제될 것이다.
4. 그게 기다리는 게 좀 길어서, 어차피 곧 결제될 제품들을 주머니 혹은 봉투에 담는다.
5. 결제가 다 됐다고 떴고, 영수증을 가져갈 거냐고 한다.
6. 제품은 다 담았으니 떠난다.
아! 나는 이 순서 중에 4번의 과정에 집중했다. 몇 초 안 되는 "결제 중입니다" 메시지에 '어차피 결제 곧 되겠지' 하면서 아이스크림을 주머니에 담았던 게 생각난다. 그리고 나는 떠났다. 결제됐다는 사실도 알았고, 제품도 무사히 내 주머니에 있기 때문이다. 결제한 카드는 두고 떠났는데도 말이다.
카드 분실이 잦은 곳은 어떤 순서로 결제가 진행될까? 아래 카페는 전국에 1000개 정도의 가맹점을 보유한 프랜차이즈 카페이다. 회사 근처에 이 카페가 생겨 방문했는데 키오스크 옆에 손님들이 두고 간 카드들이 쌓여있었다. 이 키오스크는 어떤 결제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기에 사람들이 카드를 두고 갔을까?
1. 야외의 키오스크에서 상품을 고르기 위해 손님이 화면을 누른다.
2. 상품을 고르기 시작한다. 120초간 고르지 않으면 고르던 게 초기화된다고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3. 결제 방식을 고르고, 적립은 불가하다. 카드를 꽂는다.
4. 영수증을 출력할 것인지 모달(Modal) 120초간 창을 띄워 물어본다.
5. 4번을 답하기 전까지 주문이 내부에 전송되지 않는다. 답을 안 하면 120초간 모달 창을 봐야 한다.
6. 영수증 출력 여부를 고른 뒤, 내부에 주문이 들어간다.
7. 주문이 그제야 들어간 갔지만 영수증 모달 창 때문에 손님은 더 길게 대기한다고 느껴 스마트폰을 보거나 일행과 대화한다.
8. 야외 키오스크랑 내부 주문과 주문번호가 차이가 없어서 직원은 내부 픽업대에 커피를 놓으며 '00번 손님, 커피 나왔습니다'를 외친다.
9. 손님은 음료가 나왔는지도 모르다가 안에 있다는 걸 알고 어이없어하며 안에 들어가서 커피를 가져온다.
이런 프로세스를 거치는 A사는 손님들이 두고 간 카드를 많이 모아 두고 있다. 특히 7번에서 손님들이 카드를 많이 잃어버렸는데 회사 동료도 저 시점에서 카드를 두고 온 적이 있다. 영수증 출력을 물어보기 전에 내부에 주문을 넣어줄 수는 없는 걸까? 어떤 커피숍은 포인트 적립 여부와 포인트를 적립할 연락처도 입력을 마쳐야 주문이 들어갔다. 어떤 주문이 오는지 알 수 없는 직원은 주문이 올 때까지 대기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주문이 완료되어야 대기를 시작하는 손님은 대기시간이 더 길어진다.
대기가 길어진 손님은 자신의 커피가 늦게 나온다고 느끼고, 기다리는 동안 다른 걸 하다가 카드를 꽂아뒀다는 걸 잊게 된다. 그리고 주문량이 많으면 주문번호가 구분이 없어 어디서 결제된 건지 알 수가 없어 외부 키오스크로 주문한 게 내부 픽업대에 놓이기도 한다. 그걸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의도치 않게 더 기다리게 되는 손님도 있다.
A사뿐만 아니라 다른 카페들의 키오스크도 마찬가지였다. 주문할 상품을 담고, 주문방식을 선택하고, 적립할지 선택하고, 결제방식 선택하고, 영수증 여부를 선택한 뒤에야 결제가 이루어지며 주문에 다다른다. 손님 입장에서도 거쳐야 할 과정이 많고, 직원도 주문을 받기 위해 대기해야 할 시간이 길어진다.
순서를 조금 바꿔주면 어떨까? 주문할 상품을 담고 결제방식을 선택해 결제를 한다. 그리고 주문이 직원에게 전송되고, 그동안 적립 여부와 영수증 여부를 물어보는 것이다. 그러면 이걸 손님이 답변하는 동안 주문이 진행되기 때문에 대기시간이 짧아진다. 그동안 카드를 가져가라고 당부도 할 수 있다.
순서를 바꾸고, 당부를 해주는 것도 좋지만 카드 분실을 막기 위해 더 좋은 프로세스를 가진 사례가 있다. 생활용품 판매점인 D사는 현금, 카드 결제 방식에 따라 아예 결제 장소가 달라 결제방식을 물어보는 과정을 생략한다. 그리고 카드결제대의 프로세스는 아래처럼 이루어진다.
1. 상품을 결제대 앞에 가져온다.
2. 결제할 카드를 먼저 모듈에 꽂아야만 상품의 바코드를 찍을 수 있다.
3. 상품들의 바코드를 찍고, 그 상품을 옮겨 둔다.
4. 적립 여부를 물어본다.
5. 화면에는 '결제 중입니다'라는 표시하고, 결제정보를 수집한다.
6. 카드를 모듈에서 꺼내라고 안내하며, 카드를 뽑아야 결제가 완료된다.
7. 그 뒤에 영수증 출력 여부를 물어본다.
2번에서 카드결제 대라는 걸 안내하여 결제방식을 물어보는 절차를 따로 갖지 않는다. 손님은 상품의 바코드들을 다 찍고 나서 "어? 현금 결제는 어떻게 하지?" 하며 당황해하다가 "현금결제는 여기선 불가능해요"하는 안내를 받지 않을 수 있다. 게다가 6번의 과정이 카드 분실을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카드를 가져가야만 다음 절차를 진행하게 한다니! 이 프로세스만으로도 카드를 두고 갈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키오스크의 사용자 경험은 대체로 끔찍하다. 주문이 간편하고, 결제가 쉬웠다는 등의 긍정적인 매장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심지어 이번 글로 생각해본 것처럼, 결제 프로세스가 카드 분실이라는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반대로 잘 다듬어진 UX는 이런 문제들을 미리 예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많은 키오스크들이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