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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쏠리 May 08. 2023

기타와 테니스의 상관관계

직장인 밴드 공연 후기

기타 연주는 손가락 스포츠다. 왼손으로는 정확한 운지를, 오른손으로는 리듬감있는 스트로크를 해야 ‘곡’이라 불리는 게임을 한 판을 제대로 완수할 수 있다. 특히나 밴드를 하는 내내 테니스 복식이랑 비슷하다고 느꼈다. 각자의 악기와 장기를 살려 무대라 불리는 코트에 올라 경기하는 팀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실전에서 최고의 플레이를 위한 8주간 8번의 합주는 그런 점에서 예선전이었다.


예선전도 허투루 할 수 없기에, 나름 시간을 쪼개 쫌쫌따리로 연습했다. 테니스에서 그나마 잘 되는 게 포핸드 스트록인데, 기타도 마찬가지었다. 될 땐 부드럽게 잘 되는데 안 될 땐 안되는 리듬 스트로크,,ㅎ 백핸드가 약점이듯 왼손 운지는 버벅대기 마련이었다. 뭐든 꾸준한 연습만이 살길이라고 하니, 어떤 날은 스트로크만 파고  어떤 날은 운지만 파면서 심기일전 했다.


공이 안 맞으면 스트링을 갈아주듯, 공연을 2주 앞두고 우리 슈퍼쏠릭이를 병원에 데려갔다. 사실 사 놓고 장식으로 전락해 있었으니 건강검진에서 빨간불이 뜰 수 밖에. 줄을 싹 갈고 조율을 마친 슈퍼쏠릭이에선 그동안 듣지 못했던 말끔하고 건강한 소리가 났다. 공이 점점 잘 맞아 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튜닝에 있었다. 이건 테니스에선 서브와 다름 없었다. 단 두 번의 기회에서 제대로 들어가지 않으면 포인트를 잃어버리는, 튜닝이 제대로 돼 있지 않으면 곡 진행이 어려워져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브연습만 하듯 카포를 꼈다 뺐다 하며 빠른 튜닝만 연습하기도 했으나 마지막 합주까지도 어긋나버린 튠으로 끝마쳤다. 튜닝지옥은 지독했다.


하지만 본 게임에서 안 들어가던 서브가 유난히 잘 들어갈 때가 있듯, 본선에서는 튜닝 성공! 튜너를 다이아반지마냥 끼고 자고 품고를 반복한 덕인 것 같았다. 포핸드 실수는 한 번 뿐이었고 백핸드도 나름 괜찮았다. 보컬과 단 둘이 들어가는 첫 곡 첫 8마디의 벽도 무탈하게 넘었고, 삐끗하던 운지도 나름 정확하게 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악보를 까먹지 않았다는 게 컸다.


복식 플레이는 환상이었다. 못하는 거 하지 말고, 무리하지 말고, 다치지 말고 재미있게. 각자 할 수 있는 최선과 최고의 연주를 했고, 심지어 라켓이 터져버리듯 1번줄이 나가버리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우리 밴드의 멋쟁이 운전기사는 재빠르게 대처했고, 5개 줄로 아지랑이 극락 솔로를 만들어내며 화려하게 공연을 마무리 했다.


고딩때 이후로 무대에 설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으나, 무료한 인생에 따른 충동적인 선택은 이루 말할 수 없고 평생 잊을 수 없는 보람과 벅찬 마음을 남겼다. ‘다시 태어나면 락스타가 되겠다’는 꿈을 죽기도 전에 이뤘다. 물론 일일 체험이지만. 이제 다시 태어나면 뭐가 된담. 여튼 우리 슈퍼쏠릭이는 또 장식품이 되었지만 이제는 볼 때마다 그날의 감동을 떠올려주는 살아있는 장식품이 되었다. 따봉 슈퍼쏠릭아 고마워!


‘치다’라는 동사는 ‘사람을’이란 목적어가 붙으면 부정어가 된다. 하지만 그 앞에 ’테니스‘, ’기타‘, ’드럼‘, ’피아노‘, ’베이스‘ 등이 붙으면 달라진다. ‘심장이 치이다‘처럼 타동사로 쓰여도 마찬가지. 삶에 있어 ‘치다’라는 동사가 주는 행복이 이렇게나 클 줄이야. 이제 다음엔 뭘 쳐볼까. 치여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대신 이건 심장만 치이기. 이상 손가락 스포츠일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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