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세월은 얼굴에 남는다는데, 26만2천8백 시간을 산 내 모습은 어떤지 궁금했다. 매일 거울을 보지만, 익숙해진 나머지 괜찮음을 넘어서 예뻐보이는 지경에 이르렀기에 객관화가 필요했다. 물론 화장, 조명, 스타일, 렌즈, 구도 등에 따라 달라보이기 마련이지만 타인에게 기록된 모습이어야 내가 보지 못하는 구석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디서, 어떻게 기록해야 하지 고민하던 찰나 도란의 본새나는 ‘안티 캔서’ 사진을 봤다. 무조건 여기서 찍어야겠다고 다짐한 뒤 일정을 잡았다.
“어떤 사진이 필요하십니까?”. 어색한 공기를 가르고 박힌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흠 난 어떤 사진이 필요한 거지. 원래 이런 걸 물어보는 건가. 빠르게 머리를 굴려봤지만 적절한 답이 생각이 안났다. 그래서 대뜸 ‘여권 사진이요’라고 대답했다. 사진관도 아니고 이런 작업실에서 ‘여권 사진’이란 네 글자를 내뱉은 내 입이 망측했다. 하지만 진짜 필요하긴 했고, 결과적으로 여권 갱신도 했다.
여튼 ‘필요’한 사진은 없었다. 참고한 포즈도 이미지도 없었다. 요구되는 형태도 없었고, 최대한 보정도 삼가면서, 그저 어떤 모습이든지 30주년 사진을 남기고 싶었을 뿐. 나름 착장은 세 개나 준비했다. “일단 한번 찍어볼까요”라는 말에 카메라 앞에 섰고, 무려 스튜디오를 나오기까진 세 시간이나 걸렸다.
찍는 일에 익숙한 나로서는 찍히는 게 이렇게나 어려운 일인줄 몰랐다. 가만히 있으면서 표정과 포즈에 어떤 감정과 생각을 담아내야 하는 건 쉬운일이 아니었다. 머릿속에는 ‘이게 맞아?’라고 떠올리더라도 얼굴은 사연있어 보여야 했다. 어색한 팔을 잘라버리고 싶다가도 우아한 자태를 보여야 했다. 차라리 영상에 찍히는 게 더 쉬웠다. 수많은 스타트업 대표들은 왜 항상 팔짱만 끼는지를 이제 알았다. 인터뷰이에게 ‘카메라 보고 포즈 한번만 취해주세요’라고 쉽게 말했던 지난 나날을 반성하는 촬영이었다.
30년 하고 대략 13시간 30분 정도 더 산 내 모습은 다양했다. 최종본에는 지워진 다크서클과 주름들은 차치하고, 무표정일때 드리운 그림자에는 지난 근심과 슬픔이, 웃을때 지는 주름에는 지난 즐거운 추억들이 새겨져 있었다. 표정 변화에 따라 슬픔과 기쁨들이 자주 교차했다. ‘너도 이제 얼굴에서 근수가 나간다’던 엄마 친구의 말을 되새기며 원본 사진들을 둘러봤는데, 슬픔과 기쁨 중에서 어떤 무게가 더 나가는 건지 정확히 발라내기는 어려웠다. 그만큼 다사다난한 시간들이었다. 그것이 어떤 추억이었는지 때로는 기억하지만 자주는 잊어버리는 게 흠이다. 웃는 모습이 더 익숙한 걸 보면, 웃을 날이 조금 더 많았던 것 같다.
앞으로의 10년은, 20년은, 30년은 어떤 것들을 담게 될까. 궁금하지 않았던 앞으로들이 궁금해진 시점이다. 자주 버겁고 때로 표류하는 삶 속에서 종종 주어지는 보람을 아로 새기고 살아가야지. 새로운 시작에 용기를 보듬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