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쏠리 Jul 20. 2023

폭행당한 초등교사, 진짜 문제는

 ‘작은 사회’라던 교실이 이렇게 망가지고 있다

SBS 보도화면 캡처

이건 친구네 학교 이야기다. 초등 교사가 학생에게 폭행을 당해 전치 3주라는 사건. 학생은 자신이 특수학급 상담을 가야할 시간에 재미있는 체육 배구 수업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선 상담을 가지 않겠다고 했다. 선생님은 타일렀으나 아이는 말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선 선생님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했다. 초등학교 6학년 남자아이는 여자 선생님을 들어 바닥이 메다꽂을만큼 크고, 힘이 셌다. 아이를 때릴 수 없는 선생님은 속수무책으로 맞으며 바닥을 기어 전화를 간신히 집어들고는 도움을 요청했다. 그 모든 걸 반에 있던 모든 아이들이 지켜봤다.


학생은 평소에도 분노조절이 되지 않았다. 선생님에게 반말과 욕짓거리는 물론이고 같은 반 아이들과도 싸움이 잦았다. 하지만 선생님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말로 주의를 주는 일과 부모에게 당부하는 일 뿐이었다. 그러나 매번 부모는 이를 가볍게 여긴 채 매번 다른 탓을 했다. 이번에도 이 부모는 “신경써달라 요청했는데 B군만 차별하고 혼내서 벌어진 일“이라며 마치 교사가 맞을 짓을 했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심지어 피해 교사를 고소하겠다고 나섰다.


또 한 초등학교에선 초임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진상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렸다고 한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학부모’다. 가정교육을 제대로 시켰다면 아이의 폭력성은 선생의 지도하에 제어가 됐을 것이고, 부모교육을 제대로 받은 성인이었다면 교사를 벼랑끝으로 밀어넣는 막말과 언어 폭력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교실에서 벌어난 일들의 대부분은 학생과 선생 사이의 미시적 문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학부모와 교육집단 사이의 거시적 문제다.


친구는 물론 동료 교사들은 무력감에 빠져 업무가 손에 안잡힌다고 했다.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회의가 크다. 아이에게 욕을 듣고 맞아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학부모에게 온갖 막말을 들어도 참아야 한다. 그저 큰 피해를 입고 나서야, 죽고 나서야, 사건이 공론화 돼야 주목을 받을 수 있다. 지금도 교실에는 수많은 ’맞는 교사‘가 있고, 이미 교권은 바닥이며, 교사는 교단을 떠난다. 친구는 지금이라도 대학을 다시 가야 하나 고민중이다.


폭력을 가한 학생은 큰 처벌을 받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악성 민원인 학부모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피해 선생님들은 다시는 교단에 설 수 없다. 소송 비용 지원이나 위로금 따위로는 회복될 수 없는 상처다. 스러지는 선생님들 뒤에 남은 건 충격받은 또다른 교사와 아이들이다. ‘작은 사회’라던 교실이 이렇게 망가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망가지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상처입지 않을 수 있는 교실을 만들 수는 없을까. 친구가 아프지 않고 오래 교단에 설 수 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윔블던에 새 별이 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