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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쏠리 Oct 31. 2023

가을, 서울 창포원 나들이



지난해 가을, 우연히 이 동네를 지나가다 웅장한 바위를 두른 커다란 단풍치맛자락을 맞닥뜨렸다. 알록달록한 산자락이 양 옆에 촤르륵 펼쳐진 도로는 설렘의 새로운 풍경이었고, 내년에는 테니스가 아닌 단풍 구경을 오겠다 마음먹었더랬다.



그러나 역시 테니스 때문에 하루 먼저 이곳을 스쳤고, 뿌연 날씨 때문에 제대로 단풍의 자태를 살피진 못했으나, 한없이 앉아 가을빛 바위를 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행복하겠다 싶어서 바로 다음날 엄마의 손을 끌었다.



색온도 3000K 정도의 도봉산 위로 우뚝솟은 자운봉은 다락원 일대를 지키는 수호신 같았다. 자나깨나 유럽여행 이야기를 하는 엄마는 돌로미티의 거대한 알프스 바위산들과 비교했다. 압도하진 않지만 인자하고 따뜻한 느낌이라고 했다. 동의했다. ‘니가 감히?’와 ‘어서오렴’의 차이랄까.



그래서인지 창포원을 걷다 자운봉을 쳐다보면, ’거기 계셔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넙죽 절을 해야할 것만 같았다. 정적이지만 동적인 모습으로 마음속의 무언가를 자꾸 솟구치게 했다. 그것은 분명 긍정적인 무언가였고, 저 산이 있으니 이 삶이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그런 위로이자 응원이기도 했다.



삶을 행복하게 사는 방법 중 하나는 자연을 잘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계절은 가을인 것 같다. 봄여름 생동했던 자연이 얼어붙기 전, 따뜻한 햇살과 선선한 바람 아래 가장 다채로운 색을 만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올 가을 목표는 이 풍경을 보는 것이었으니 황량한 겨울을 이겨낼 준비는 된 것 같다. 더 추워지기전에 열심히 나돌아다녀야지. 그리고 내년 봄이 되면 다시 이곳에 와서 붓꽃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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