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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의식은 바이러스다 I

바이러스의 특징, 전염과 변이


 바이러스는 무엇인가? 아주 작은 크기의 감염성 입자이다. 에이즈(후천성 면역 결핍증)와 감기를 예로 들어보자. 둘은 모두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이다. 에이즈는 ‘인체 면역 결핍 바이러스(HIV)’에 감염되어 면역력이 저하되는 질환이고, 감기는 특정한 감기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호흡기계에 문제를 일으키는 질환이다. 바이러스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이는 단순히 바이러스가 특정한 질환(에이즈‧감기)을 유발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바이러스가 두려운 이유는 전염과 변이 때문이다. 먼저 전염부터 말해보자. 에이즈 바이러스는 혈액이나 정액에 의해서 전염된다. 감기 역시 마찬가지다. 감기 바이러스는 소량의 비말(기침·재채기를 할 때 입에서 나오는 작은 물방울)로 전염될 수 있다. 이처럼 모든 바이러스는 특정한 감염 매개(혈액‧타액‧비말…)를 통해 타인에게 전염된다.       


 바이러스가 두려운 이유는 또 있다. 바로 변이다. 바이러스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자. 바이러스는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 형태인 미생물이라 할 수 있다. 생물은 자가 복제를 할 수 있고, 무생물은 자가 복제를 할 수 없다. 그런데 바이러스는 그 중간형태를 취한다. 즉, 스스로 자가 복제를 할 수 없지만(무생물적 특징) 기생할 생명체(숙주)가 있다면 자가 복제를 할 수 있다(생물적 특징).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이러스는 특정한 생명체에 기생해야지만 자신의 생존(자가복제)을 유지할 수 있는 존재다. 이러한 조건 때문에 바이러스는 끊임없이 자신이 기생할 생명체(숙주)를 옮겨 다닐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바이러스는 자신을 끊임없이 복제하고 증식하면서 셀 수 없는 변이를 일으킨다.


 우리는 종종 잊고 살지만 에이즈뿐만 아니라 감기 역시 불치병이다. 감기를 치료할 수 있는 치료제나 감기를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복용하고 있는 감기약은 모두 고통을 줄여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백신 역시 새로운 감기 바이러스가 나올 때마다 다시 만들어야 한다.) 이는 감기 바이러스의 변이 때문이다. 바이러스는 숙주를 끊임없이 옮겨 다니는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변이를 일으킨다. 이 때문에 적절한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하기가 매우 어렵다.

    


피해의식이라는 바이러스

     

 피해의식은 강력한 바이러스다. 흥미롭게도, 전염과 변이라는 바이러스의 특성은 피해의식을 매우 잘 설명해준다. 피해의식은 쉽게 전염되고, 수도 없는 변이를 일으킨다. 그뿐인가? 많은 이들이 감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 때문에 감기 바이러스는 급격하게 확산되어 변이를 일으킨다. 피해의식 역시 마찬가지다. 많은 이들은 피해의식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때문에 그것은 확산되며 변이를 일으키게 된다. 피해의식은 감기 바이러스처럼 작동한다.

      

 ‘도준’과 ‘원미’는 연인이다. ‘도준’은 관계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다. 어떤 관계에 있든 자신이 관심받지 못하고 소외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도준’은 종종 열등감과 분노, 억울함에 휩싸인다. ‘도준’은 그 부정적인 감정을 ‘원미’에게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쏟아내곤 했다.      


“어제 모임에서 사람들 왜 그러냐? 왜 나한테 관심 안 가져주고 자기들끼리만 웃고 떠들어?”
“어? 어제 사람들이 오빠 안부도 묻고 친절하게 대해주지 않았어?”
“너 지금 그 사람들 편드는 거야?
“아니 그런 말이 아니잖아.”     


 ‘원미’는 ‘도준’을 만나는 동안 그의 피해의식에 노출되었다. 그 사이 ‘원미’의 마음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원미’는 딱히 피해의식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도준’과 만나면서 기묘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왜 나만 항상 오빠 감정배설을 듣고 있어야 해?” ‘원미’는 점점 이런 생각에 잠식되었다. 그 후로 ‘원미’의 상태는 조금 더 심각해졌다. “왜 나만 항상 참고 살아야 돼?” 언젠가부터 ‘원미’는 ‘도준’뿐만 아니라 누구를 만나더라도 자신만 희생하고 있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원미’에게도 관계에 대한 피해의식이 생겼다. ‘원미’는 어떤 관계를 맺더라도 자신만 희생하고 있다는 마음에 잠식되었다. 그 때문에 ‘원미’는 조금씩 관계에 대한 두려움과 무기력, 우울함에 휩싸이게 되었다. 밝고 긍정적이며 사람들을 만날 때 늘 미소를 짓던 ‘원미’는 어느 사이엔가 어둡고 부정적이며 잿빛 표정을 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피해의식이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기 때문이다. 피해의식은 바이러스다. 이는 비유가 아니다. ‘도준’과 ‘원미’의 관계가 이를 잘 보여준다.


      

피해의식은 교감을 매개로 감염된다

     

 피해의식 전염되고 변이를 일으킨다. 먼저 피해의식의 전염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감기 바이러스가 ‘비말’로 전염된다면, 피해의식이라는 바이러스는 ‘교감’으로 전염된다. 연인 사이는 깊은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관계다. 이것이 ‘원미’가 ‘도준’의 피해의식에 감염된 이유다. ‘원미’는 ‘도준’과 정서적으로 교감하고 싶었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원미’는 ‘도준’의 피해의식에 감염되었다. ‘원미’와 ‘도준’은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사이였기에 ‘도준’의 피해의식은 ‘원미’에게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다.    

  

 이는 비단 ‘원미’만의 이야기이겠는가? “내가 맨날 무시당하는 건 집구석이 가난해서야!” “너는 날씬하잖아. 네가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아.” “결국은 학벌 좋은 애들끼리 다 해먹는 거야!” “남자들은 다 잠정적 성범죄자들이야!” “여자들이 자꾸 설쳐서 남자들이 취업이 안 되는 거야!” 이런 피해의식에 휩싸인 이들 곁에 있어본 적 있는가? 가족이건 친구이건 연인이건, 이들과 마음을 나누려고 했던 이들은 안다. 그들과 마음을 나누려고 하면 할수록 자신의 마음 역시 조금씩 음습해지고 뒤틀어진다는 사실을. 

    

 피해의식 때문에 두려움‧분노‧열등감‧무기력‧억울함‧우울함에 시달리는 이와 정서적으로 교감하면 자신 역시 그런 부정적 감정들에 잠식당하게 된다. 이처럼 피해의식은 교감을 매개로 감염된다. 이는 피해의식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다. 우리는 누구와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가? 둘도 없는 친구, 연인, 자녀, 부모 등등이다. 우리는 소중한 이들과 정서적 교감을 나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피해의식이라는 바이러스는 가장 소중한 이들부터 감염시킨다는 의미다. 만약 누군가 피해의식에 휩싸여 있다면, 그는 반드시 자신의 소중한 이들부터 감염시킨다. 물론 그는 이러한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피해의식은 자신을 보호하느라 타인을 신경 쓰지 못하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도준’은 자신의 피해의식 때문에 ‘원미’의 마음이 음습해지고 뒤틀어졌다는 사실을 꿈에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피해의식은 교감을 매개로 전염되기에 반드시 소중한 이들부터 감염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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