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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의식은 바이러스다 II

피해의식은 변이를 만든다 

    

 피해의식은 바이러스다. 이는 변이라는 바이러스의 특징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바이러스는 끊임없이 숙주를 옮겨 다니며 수없는 변이를 일으킨다. 피해의식 역시 정확히 그런 양상을 보인다. 다시 ‘도준’과 ‘원미’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도준’의 관계에 대한 피해의식은 ‘원미’에게로 옮겨갔다. 이제 ‘원미’ 역시 관계에 대한 피해의식이 생겼다. 하지만 둘의 피해의식은 다르다.     


 ‘도준’의 관계 피해의식의 중핵에는 ‘관심’이 있다. 즉, ‘도준’의 피해의식은 자신이 ‘관심’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피해의식이다. 하지만 ‘원미’의 관계 피해의식은 다르다. 그녀의 피해의식의 중핵에는 ‘희생’이 있다. 즉, ‘원미’의 피해의식은 자신만 유독 ‘희생’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피해의식이다. 둘의 피해의식은 중핵뿐만 아니라 드러나는 양상 또한 매우 다르다. 

     

 ‘도준’의 피해의식은 열등감과 분노, 억울함으로 드러났다. ‘도준’은 (어떤 관계에서) 자신이 관심받지 못한 것에 대해서 열등감을 느끼고 분노하고 억울해 했다. 하지만 ‘원미’는 전혀 다르다. 그녀의 피해의식은 두려움과 무기력, 우울함으로 드러났다. ‘원미’는 (어떤 관계에서) 자신만 희생하고 있다는 마음 때문에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졌고 그러는 사이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졌다. 이처럼 둘의 피해의식은 모두 관계에 대한 피해의식이지만 그 중핵과 양상은 다르다.



피해의식은 심각한 전염병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바로 변이 때문이다. 바이러스가 숙주를 옮길 때마다 변이를 일으키는 것처럼, 피해의식 역시 전염이 이루어질 때마다 변이를 일으키게 된다. 감기를 생각해보라. A(도준)의 감기 바이러스(피해의식)가 B(원미)에게 전염될 때를 생각해보자. A(도준)의 감기가 발열과 두통(열등감‧분노‧억울함)을 동반한 강력한 독감(피해의식)이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B(원미)에게 전염되면 기침과 콧물(두려움‧무기력‧우울함)이 오랜 시간 지속되는 만성 감기(피해의식)가 될 수 있다. 이는 바이러스가 숙주를 옮겨 다닐 때마다 그 숙주에 적합한 변이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피해의식은 비물질적인 바이러스다. 피해의식은 전염되고 변이를 일으킨다. 이것이 피해의식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인 이유다. 피해의식에 휩싸인 ‘너’가 있다면, 그 피해의식에 감염되어 ‘나’의 피해의식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렇게 ‘내’가 피해의식에 휩싸이면 다시 주변의 소중한 ‘너’들을 감염시키게 된다. 그 ‘너’들은 또 그 자신들에게 소중한 ‘너’들에게 피해의식을 전파하게 된다. 그렇게 피해의식은 ‘나’와 ‘너’, 그리고 ‘우리’ 모두를 감염시키게 된다.

       

 이 심각한 전염병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 전염병의 감염 경로를 다시 살펴보자. 피해의식은 정서적 교감을 매개로 감염된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정서적 교감이 없다면 피해의식은 전염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피해의식에 휩싸인 이들은 많다. 하지만 그들 곁에 아무리 오래 있더라도 정서적으로 일체 교감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피해의식에 감염되지 않는다. 매일 아침 같은 버스를 타는 사람들이나 매일 눈인사만 하는 직장 동료와는 아무리 많은 시간을 보내더라도 피해의식에 감염될 일이 없다. 

    


피해의식이라는 전염병을 막는 법

     

 여기서 하나의 해법을 도출할 수 있다. 정서적 ‘거리두기’다. 피해의식이 심각한 이들과는 가급적 접촉(정서적 교감)을 줄이는 것이다. (피해의식이 심한 이들이 주변 사람들과 접촉을 줄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으나 이는 대체로 효과가 없다. 피해의식이 심한 이들은 자신의 피해의식을 인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람이건 이미 알던 사람이건, 그 사람이 피해의식이 심하다면 정서적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그 ‘거리두기’가 없다면 자신 역시 피해의식에 노출되어 누군가에게 피해의식을 옮기는 숙주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임시적인 방법일 뿐이다. 이 임시적인 방법을 확대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즉, 피해의식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모든 정서적 교감을 차단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이보다 더 어리석은 일도 없다. 감기 바이러스를 모두 차단하기 위해 누구와도 키스하지 않는 삶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거리두기’는 임시적인 방법일 뿐 결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감기 바이러스에 대한 치료제나 백신이 없는 것처럼, 피해의식 역시 마찬가지다. 피해의식을 치유할 외부적 치료제나 백신은 없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해결책은 무엇인가? 감기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근본적인 해법은 무엇인가? 튼튼한 신체이다. 즉, 누구와 대화하고 키스하더라도 상대의 감기 바이러스 정도는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면역 체계를 갖추는 일이다. 피해의식 역시 마찬가지다. 피해의식이라는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근본적인 해법은 씩씩한 마음이다. 누구와 정서적 교감을 하더라도 상대의 피해의식 정도는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면역 체계를 갖는 일이다.      


 씩씩한 마음은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고 매일 운동하면 튼튼한 신체가 만들어지듯, 좋은 타자(사람‧음악‧철학‧영화‧그림…)들을 만나고 매일 성찰하면 씩씩한 마음을 만들 수 있다. 기쁨을 주는 타자를 만나 마음의 영양을 얻고, 그 영양분으로 스스로의 피해의식을 아프게 성찰해나갈 때 씩씩한 마음을 얻을 수 있다. 그렇게 씩씩한 마음을 얻게 되었을 때, 피해의식에 휩싸인 이들과 교감하더라도 피해의식에 감염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더욱 씩씩해지면, 상대의 피해의식마저 옅어지게 해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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