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신체의 반사, 감정=신체의 흡수
이제 '지각'과 '감정'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살펴봅시다. 어떤 대상을 파악한다는 것(지각)과 어떤 대상을 느낀다는 것(감정)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지각이 신체의 반사력pouvoir réflecteur의 크기를 나타낸다면 정념은 신체의 흡수력pouvouir absorbant의 크기를 나타낸다고 비유적으로 말할 수 있다. 『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베르그손에 따르면, '지각'은 신체가 반사적으로 행동하는 능력의 크기를 나타내고, '감정'은 신체가 흡수하는 크기를 나타내는 거예요. A, B, C 세 사람이 있다고 해봅시다. A는 가장 약하게 지각되는(관심 없는) 사람이고, B는 그보다 강하게 지각되는(눈길이 가는) 사람이고, C는 아주 강하게 지각되는(매혹적인) 사람이에요. 이 셋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A를 그냥 스쳐 지나가 버리게 될 거예요. 즉, A에 대해서 우리의 신체는 거의 반응(반사)하지 않는 것이죠. 반면 B가 지나갈 때는 고개를 돌려 그를 한 번 쳐다보게 되겠죠. 즉, 우리의 신체가 조금 더 크게 반응(반사)하겠죠. C는 어떨까요? 가던 길을 멈추고 그를 따라가게 될 거예요. 즉, C에 대해서는 우리의 신체가 아주 크게 반응(반사)하겠죠. 이처럼, '지각'은 우리의 신체가 표현하거나 반응하는 반사력의 크기를 나타내는 거예요. 신체가 작게 반응하면 '지각'은 약한 것이고, 신체가 크게 반응하면 '지각'이 강한 것이죠.
그렇다면 '감정(정념)'은 어떤 것일까요? '감정'은 신체의 흡수력 크기를 나타내는 거예요. A는 우리에게 별다른 감정(무관심)을 주지 않죠. 그건 A를 통해 우리의 신체에 흡수된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에요. B는 조금 더 큰 감정(호감)을 주잖아요. 이는 B를 통해 우리의 신체에 흡수된 것이 조금 더 크기 때문이에요. C는 아주 큰 감정(매혹)을 주잖아요. 이는 C를 통해 신체에 흡수되는 것이 매우 크기 때문이에요. 이처럼 '감정'이라는 것은 우리의 신체가 어떤 대상을 흡수하는 크기를 나타내는 거예요. 신체가 대상을 작게 흡수하면 '감정'은 약한 것이고, 많이 흡수하면 '감정'이 강한 것이죠.
지각=잠재적 행동, 감정=실재 행동
흔히 '지각'과 '감정'은 별개의 영역에서 작동한다고 생각하죠. 이성적인(잘 지각하는) 사람과 감정적인(잘 느끼는) 사람을 구분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잖아요.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죠. 지각과 감정은 긴밀한 상호작용 관계에 있어요. 더 정확히 말해, '지각'은 '감정'이 됩니다.
우리 기분과 우리 지각의 관계는 우리 몸의 실재 행동과 가능적 혹은 잠재적 행동의 관계와 같다. 몸의 잠재적 행동은 다른 대상에 관계된 것이며 그 대상에 그려진다. 몸의 실재 행동은 몸 자신에 관계된 것이며 따라서 몸에 그려진다. 『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베르그손은 '감정(기분)'은 “실재 행동”이고, '지각'은 “잠재적(가능적) 행동”이라고 말해요. 난해한 이야기일 수 있으니 예를 들어 봅시다. 우리가 한 사람을 '지각'한다고 해봐요. 그때(동시에) 우리는 몇 가지 가능한 행동들을 떠올릴 거예요. 그 사람이 안전해 보이면 그저 옆으로 지나가거나 혹은 말을 걸 준비를 할 수도 있죠. 반대로 그 사람이 위험해 보인다면 도망가거나 싸울 준비를 하게 될 수도 있죠. 이처럼 어떤 상황 혹은 어떤 대상을 '지각'한다는 것은 가능한 여러 행동들을 마련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에요.
이때 '감정'은 무엇을 하는 걸까요? '지각'을 통해 마련된 여러 “잠재적(가능적) 행동”들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거예요. 즉 “실재 행동”을 하는 거죠. 한 사람을 '지각'하고 그로 인해 특정한 감정(위험·불안)을 느끼게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여러 잠재적 행동(도망·싸움·지나감·대화) 중에서 특정한 행동(도망)을 선택해서 “실재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죠. 즉 우리의 '감정(기분)'이라는 것은 여러 “잠재적(가능한) 행동”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서 “실재 행동”하는 거예요. 쉽게 말해, 무엇인가를 안다(지각)은 것은 무엇인가를 느낄(감정) 준비인 거죠.
'지각'은 대상에 그려지고, '감정'은 자신에게 그려진다.
“몸의 잠재적 행동(지각)은 다른 대상에 관계된 것이며 대상에 그려진다.” 이 난해한 말도 이제 이해할 수 있죠. “몸의 잠재적 행동”은 ‘지각’이잖아요. '지각'은 외부 대상 즉, 다른 대상과 관련되어 있잖아요. 외부 대상을 '지각'한다는 것은 우리가 그 대상을 파악(그린다!) 걸 의미하잖아요. '지각'의 강도에 따라 대상을 섬세하게 파악할(그릴) 수도 있고, 조악하게 파악할(그릴) 수도 있잖아요. 관심 없는 이의 얼굴보다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더 세밀하게 그릴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몸의 실재 행동은 몸 자신에 관계된 것이며 따라서 몸에 그려진다.” 이 역시 이해할 수 있죠. “몸의 실재 행동”은 ‘감정’이잖아요. '감정'은 나의 내부(몸)와 관계된 것이잖아요. 그러니 '감정'은 몸 자신과 관계된 것일 수밖에 없죠. '감정'은 자신의 몸에 관계하기 때문에 자신의 몸에 그려질 수밖에 없어요. 이는 한 사람의 얼굴과 체형을 통해 알 수 있잖아요. 한 사람이 평소 자주 느끼는 감정은 곧 그가 하는 “실재 행동”이고, 이런 행동들이 반복되면 그것이 몸(얼굴·체형)에 고스란히 묻어나게 되잖아요. 환희를 자주 느끼는 이와 짜증을 자주 느끼는 이의 얼굴과 표정은 전혀 다르게 그려질 수밖에 없잖아요. 이에 대해 베르그손은 이렇게 말해요.
나의 지각은 내 몸의 밖에 있으며 반대로 나의 정념(감정)은 내 몸속에 있다. 『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