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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일’하는가?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일한다.

우리는 왜 일을 하는가? 근본적으로 생계를 위해서다. 즉 돈을 벌기 위해서다. 하지만 돈이 일을 하는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명예, 권력, 자아실현 또한 일을 하는 이유이다. 경찰관, 소방관, 군인들은 명예를 위해 일하는 대표적인 부류이고, 정치인들은 권력을 위해, 예술가들은 자아실현을 위해 일하는 대표적인 부류이다. 이처럼, 돈, 명예, 권력, 자아실현은 우리가 일을 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이는 모두 피상적인 이유일 뿐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종종 의아한 장면을 목격하곤 한다. 돈을 위해 일한다고 믿었던 이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가 있다. ‘연봉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직장인이 있었다.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이직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직장을 옮기지 않았다. 왜 그랬던 걸까? 팀장 자리를 내려놓고 새 직장에서는 팀원으로 일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돈보다 ‘팀장’이라는 직위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돈보다 명예가 더 중요했던 사람이었을까? 이 역시 석연치 않은 답이다. 그가 정말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일개 회사의 ‘팀장’이 아니라 경찰이나 소방관 같은 더 큰 명예가 있는 직업을 선택했을 테니까. 그렇다면, 그는 왜 직장을 옮기지 않았던 것일까? 여기에 우리가 일을 하는 진짜 이유가 있다.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일한다. 여기서 ‘사랑’은 관심과 인정으로 바꿔 불러도 좋다.


명예를 얻기 위해 일하는 것은 사실 누군가로부터 ‘사랑(관심·인정)’받기 위해서다. 그는 왜 이직하지 않았는가? ‘팀장’이라는 직위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에게 ‘팀장’이라는 명패는 자신이 동료들에게 ‘사랑(관심·인정)’ 받을 만한 사람이란 것을 증명해 주는 표식이다. 그 명패가 없다면, 더 이상 동료들의 관심과 인정 어린 눈빛이 담긴 인사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것이 그가 더 많은 돈을 직장으로 이직을 할 수 없는 이유였다. 명예는 본질적으로 ‘사랑’받고 싶은 욕망의 변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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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사랑’을 받을 권력이다.

권력 역시 마찬가지다.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권력에 강하게 집착하는 이들의 내면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애정결핍’이다. 권력이란 게 뭔가? 세상 사람들이 자신 앞에서는 따뜻한 미소를 띠고, 자신의 좋은 점만 칭찬해 주고, 자신을 한없이 배려해 주게 만드는 힘 아닌가? 연인과 부모가 자신을 대해주듯, 불특정 다수가 자신을 그렇게 대해주기를 원하는 것, 이것이 바로 권력욕의 본질이다.


‘사랑(관심·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한 사람에게 권력만큼 확실하고 매혹적인 수단도 없다. 세상 사람들은 언제나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갖은 애를 쓰니까 말이다. 속으로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겉으로는 권력을 가진 이를 ‘사랑’해 주는 척이라도 할 테니까 말이다. 기업의 임원이든, 사장이든, 국회의원이든, 권력을 갖고 싶어서 일하는 이들의 속내에는 ‘사랑(관심·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도사리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세상 사람들이 왜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싶어 하는지도 읽어낼 수 있다. 이미 어느 정도 먹고 살 정도의 돈이 있거나 혹은 그 정도의 돈을 벌고 있는 사람들조차 언제나 돈, 돈, 돈거리며 돈을 더 벌려고 안달인 세상이다. 이는 생각해 보면 의아한 일 아닌가? 어떤 일이건,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건 고된 일이다. 그러니 먹고 살 만큼의 돈이 있다면, 굳이 더 많은 일을 해서 더 많은 돈을 벌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왜 세상 사람들은 항상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일까?


우리가 돈을 벌고 싶은 이유는 돈이 주는 편리함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돈이라는 하나의 권력을 얻어서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은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권력의 상징이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곧 관심이자 인정이다. 세상 사람들을 보라. 명품 옷을 입고 외제 차를 탄 이들을 선망(사랑!)의 눈빛으로 바라보지 않던가? 세상 사람들이 일을 해서 돈을 벌려는 본질적인 이유는 세상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사랑(관심·인정)’받고 싶어서다. 즉, 우리가 일을 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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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는 또 하나의 이유, 자아실현


이제 일을 하는 또 하나의 이유인 자아실현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자아실현이 무엇인가? 쉽게 말해, ‘나’답게 사는 것이다. 즉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긍정하며 표현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이 자아실현을 위해 일한다. 이들은 돈, 명예, 권력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돈도 안 되는 시를 쓰는 시인,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생각해 보라. 그들은 그저 자신답게 살기 위해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초월해서 일하는 걸까? 그렇지 않다.


자아실현을 위해 일을 하더라도, ‘사랑(관심·인정)’ 받고 싶은 마음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예술가들의 절절한 고뇌가 있다. 그 고뇌는 누군가 자신의 작품을 알아봐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시작된다. 그들이 좌절할 때는, 누구도 자신의 작품에 인정과 관심을 보내주지 않는 현실을 자각하게 될 때다. 예술가들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해내고 있지만, 누구에게도 ‘사랑’받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 때 고통받는다. 아무도 듣지 않는 음악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작품을 만드는 조각가의 고뇌는 누군가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서글픔이다.


우리가 일을 하는 것도, 반대로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것도 모두 누군가에게 ‘사랑’받기 위해서다. 인간은 누군가로부터 ‘사랑’(인정·관심)받고 싶은 욕망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다. 이를 절절히 경험한 적이 있다. 서른넷에 철학을 공부하고 글을 쓰는 삶을 살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었다. 말하자면, 자아실현을 위해 하던 일(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철학·글)을 시작했던 셈이다.


회사를 그만둘 무렵, 앞으로 나의 삶에 명예나 권력은 언감생심이고, 생계를 유지할 돈조차 벌지 못하리라 직감했다. 그런 직감은 견딜만했다. 철학을 하고 글을 쓰며 살 수 있다면,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하며 또 표현(자아실현)하며 살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확신에도 불구하고 나를 마지막까지 괴롭혔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돈도, 명예도, 권력도, 자아실현도 아니었다. 바로 ‘사랑’이었다.


친구, 부모, 아내, 두 아이까지 대기업 직원인 ‘황진규’는 ‘사랑’해 주지만, 반백수 글쟁이 ‘황진규’는 아무도 ‘사랑’해 주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매일 같이 시달렸다. 그 때문에 몇 년간 사표 문턱에서 수도 없이 돌아서야만 했다. 세상 사람들은 일이 돈, 명예, 권력, 자아실현에 결부된 것이라 믿고 있지만, 이는 오해다. 일은 본질적으로 ‘사랑’과 깊이 연루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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