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함은 소심함이 아니다.
소박함은 소심함이 아니다. 이는 ‘소박함-화려함’, ‘소심함-당당함’이라는 각자의 짝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소심함은 타인의 시선에 갇힌 마음이다. 타인의 시선에 갇혀 자신의 삶을 살아내지 못하는 이들은 소심한 이들이다. 반면 당당함은 타인의 시선에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마음이다. 타인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나가는 이들은 당당한 이들이다.
뒤집힌 삶의 진실을 마주할 시간이다. 세상 사람들은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이들을 소심한 이들로, 화려한 삶을 추구하는 이들을 당당한 이들로 여긴다. 하지만 삶의 진실은 정반대다.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마음이 당당함이고, 화려한 삶을 추구하는 마음이 소심함이다. 이는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우리 사회(타인)의 시선은 어디를 향하는가? 화려함이다. 세상 사람들은 화려한 화장, 옷, 몸매, 돈, 명예에 온통 시선이 쏠려 있다. 그러니 화려한 삶을 추구하는 이들은 타인의 시선에 갇힌 사람들이다.
반면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이들은 타인의 시선 너머 자신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려하는 이들이다. 그러니 어찌 소박함이 소심함일 수 있을까.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마음은 당당함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이들도 다 안다. 세상 사람들이 화장 안한 맨얼굴, 유행지난 옷차림, 배 나온 몸매, 돈도 명예 없는 삶을 존중커녕 싫어하고 폄하한다는 걸. 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장하지 않고, 몸매 신경 쓰지 않고, 편하게 입고, 적게 벌며 살아가려고 한다. 이는 당당함이다. 타인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삶을 선택하고 살아가려는 당당함.
소심함과 더 짙은 소심함
화려함이 소심함이다. 왜 화려함을 추구하는가? 그것이 정말 좋아서인가? 아니다. 소심해서다. 타인들이 쫒는 화려함(화장‧옷‧몸매‧돈‧명예)을 거부할 용기가 없고, 그 화려함을 거부했을 때 타인들에게 비난받고 무시당할까봐 겁이 나서 그런 것이다. 이는 명백한 소심함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아주 익숙한 반론이 하나 있다.
“저는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니라 제가 원해서 화려한(화장‧옷차림‧돈‧관심‧명예) 삶을 추구하는 건데요?” 즉, 타인에 시선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시선으로 화려함을 추구할 수 있지 않느냐는 이견이다. 이는 타당한 반론일까? 만약 그 반론이 사실이라면 화려함을 추구하는 것도 당당함이라고 말할 수 있다. 타인이 아니라 자신의 시선으로 삶을 살아내는 것이니까. 하지만 이 반론은 타당하지 않다. 이는 더 깊은 자기오해일 뿐이다.
‘내가 좋아서(나의 시선으로) 화려함을 추구한다’는 마음은 더 짙은 소심함이다. 더 짙은 소심함은 무엇일까? 소심함은 타인의 시선에 갇힌 마음이다. 이 정의를 통해 더 짙은 소심함이 무엇인지 답할 수 있다. 타인의 시선을 완전히 내면화해서 그것인 나의 시선인지 타인의 시선인지 구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마음 상태. 그것이 더 짙은 소심함인 셈이다. 가장 지독한 감옥은 창살 없는 감옥이다. 그래서 자신이 갇혔는지도 모른 채로 갇혀 있는 감옥. 더 짙은 소심함은 바로 그 창살 없는 감옥인 셈이다.
소박한 삶은 당당한 삶이고, 화려한 삶은 소심한 삶이다. 이 불편한 삶의 진실을 직면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 삶의 진실에 직면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소심함과 당당함 사이에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혼란 매우 유해하다. 그 혼란은 우리에게 진정한 기쁨을 줄 소박함을 부정하게 만들고, 끝내는 슬픔으로 내몰 화려함을 긍정하게 만들게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