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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신곡 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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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lle Jul 23. 2024

04. 네가 내게 왔다…

(8)

“나만 범인을 아는게 아닐텐데... 저기 저 무당 딸한테 물어봐. 대번에 알테니까…”


‘설마 조미나는 아니지?’


한주는 빙글거리며 윤조를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알잖아. 쟤는 아닌거... 그런데 쟤가 지금 수색당하면 제일 피 볼꺼야. 좀 있다가 선생들이 들어와서 가방이랑 다 내놓으라고 할거거든…”


‘어떤게 들었길래...? 지금 치우지도 못할텐데 쟤 어떡해?’


“미쳤구만... 담배에 립스틱에 가발에... 쟤 지금 가방에 공부랑 상관있는거라곤 연습장 하나랑 연필 하나가 다야.”


윤조는 걱정스럽게 미나를 돌아보았다. 미나는 이미 포기한 듯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담임과 학생주임이 엄숙한 표정으로 들어와 섰다. 뒤 이어 선도부 부장 과 부부장 정현도 따랐다. 


“야, 최 성숙. 똑바로 앉아.”


선도부장 안 성택이 성숙을 지적하자 그제사 윤조는 성숙이 윤조쪽으로 아예 돌아 앉아 노려보고 있었던 것을 알았다.


‘쟤 왜저러니? 요즘 나한테.. 정말 나한테 관심도 없던 애거든? 너 때문에 저러지? 쟤는 너 보이는거지??’


윤조는 이젠 성숙이 거슬리고 짜증스럽기 시작했다.


“몰라. 쟤가 자꾸만 나하고 얘기를 하고 싶어하는데... 대체 나한테 바라는게 뭔지 모르겠어. 나도 쟤가 꽤 짜증스러워... 이번 도난 사건 쟤한테 뒤집어 씌울까?”


‘쟤가 한 짓도 아닌데 그러면 안되지. 그냥 조용히 있어라... 앗. 그런데 넌 그런 짓도 할 수 있는거야?’


“진짜 귀신에 대해 상식이 드럽게 없다니까. 죽었는데 그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하는거 아냐?”


‘죽으면 갑자기 초능력이라도 생기냐?’


“뭐 좀 그런면이 있긴 하지... 보통은 나쁜 짓을 벌이기가 더 쉽지만.”


‘오... 귀신이 꼭 나쁜건 아니네? ‘


“책상 안에 있는 소지품이랑 가방 다 올린다. 실시!”


도난사건이 일어나면 으레 그렇듯 소지품 검사가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어차피 눈을 감고 범인은 조용히 자수하란 식의 구닥다리 교화작전을 써 봤자 먹힐리 없으니 속전속결이  상책이란 것이 노련한 학생주임의 원칙이다.


가장자리 왼쪽 줄 첫 번째 자리에 앉은 현화의 소지품부터 검사를 맡기 시작했다. 생리중인 학생의 생리대 파우치 검사는 그 경우를 대비해 함께 따라 들어 온 선도부 부부장 정현이 맡았다. 뒤지는 자도 뒤짐을 당하는 자도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모두의 앞에 엉망인 가방을 쏟아 내야 하는 것부터 들키고 싶지 않은 몇 몇 소지품까지 발가벗겨 내 놓아야 한다는 것이 아이들은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이거봐라 이거? 누가 이런 가쉽 잡지를 학교에 가지고 오라 그랬나? 너 이리 나와 서!”


도둑을 잡는게 주 목적이라 하더라도 도랑치다 가재 잡는 격으로 속속 발각되는 크고 작은 금지 품목 소지자들이 칠판 앞으로 줄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생각지도 않았던 불시 검문에 재수없이 걸려서 징계를 받게 생긴 피해자들이 누가 되었건 도둑이 나타나기만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눈을 번뜩이고 있다.


벌써 세 줄째 검사가 끝나고 불려나와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여학생은 6명에 이르렀다. 연예인 브로마이드, 잡지, 머리 고데기, 메이크업 도구들... 종류도 다양했지만 사실 너그러운 마음으로 본다면 경을 칠만큼 끔찍한 물건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학생주임은 경미하게는 운동장 몇 바퀴부터 심하게는 근신까지 줄 것이 뻔하다.


“얘 이건 뭐니? 학생이니, 무당이니? 대체 이런 놋쇠 그릇이랑, 생쌀, 왕소금, 방울... 이런건 뭐냐? 야자때 공부는 안 하고 분신사바니 이런 미친 짓 하는거 아냐? 너도 이리 나와 서!”


그 와중에 몇 몇은 킥킥대고 있었지만 이내 수그러 들었다. 성숙이 고개를 외로 꼬고 흔들며 앞으로 나가자 한주가 박장대소하기 시작했다.

“쟤가 진짜 나를 쫓아내려고 저런 것들을 다 싸짊어지고 왔군. 쟤는 이미 진로가 정해졌는데도 저리 모자라서야... 공부를 좀 더 해야겠어. 안 그래?”


윤조는 갑자기 너무 크게 웃어제끼는 한주때문에 흠칫 놀랐다가 이내 웃음소리는 아무도 못 듣는다는 것을 깨닫고 앞에서 까불어대는 한주를 무시했다.


이제 윤조가 앉은 줄 차례까지 단 한 줄이 남아 있다.


윤조는 여전히 미나가 신경쓰여 다시 그녀를 돌아보았다. 이마를 감쌌던 손은 풀었지만 얼굴이 붉게 상기된 채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 미나는 위험해 보였다.


“너... 훔친 건 아니라도 가방 절대 보이면 안 되는 거지? 지금?”


윤조는 다급히 미나에게 속삭였다. 미나는 대답하지 않고 입을 앙다문채 시선을 떨구었다. 


‘큰일났군.. 너 쟤 가방에 있는건 어떻게 좀 못 숨기냐? 빨리 어떻게 좀 해봐!’


“진짜... 그러길 원하냐?”


한주는 그때까지도 성숙을 손가락질 하며 낄낄대고 있다가 갑자기 정색을 했다. 웬일인지 그런 한주의 얼굴빛이 잉크빛으로 파랗게 물드는가 싶더니 갑자기 오싹해지며 소름이 돋았다.


‘왜... 그러면.. 안돼?’


“가방에 있는 것들이 사라졌으면 좋겠냐고 한 번 물어봐…”


두 선도부가 말도 없이 기계처럼 아이들의 소지품을 하나 하나 꼼꼼히 검사하고 있다. 윤조는 일부러 펜을 떨어뜨리고 줍는척 하면서 미나에게 속삭였다.


“너... 할 수만 있다면 가방 지금 어디다가 치우고 싶어?”


“미친.. 장난하냐 지금? 저 가방만 없앨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겠어. “


미나는 입을 제대로 벌리지도 않은 채 응어리진 소리로 겨우 말을 뱉었다.


“오케이! 접수했다. 영혼이라도 팔겠다라... 하긴 쟤는 가진걸 뭐든 팔더라구…”

여전히 퍼렇게 질린 한주가 다리를 꼬고 앉아 한 쪽 입술을 이죽이며 비웃었다. 윤조는 왠지 기분이 석연치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미나의 가방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단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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