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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밤

(1)

by Hazelle

“매운탕 맛있게 해 주시려고 대가리를 더 넣으셨는데… 둥둥 뜨니까 하도 괴기스러워서 일단 몇 개는 건져 냈어.

간 보느라 맛봤는데… 한 마디로… 죽! 임!”


강원도 소주는 이 남자도 좀 맛이 가게 했는지 평소의 그 답지 않게 실실거리면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매운탕을 냄비째 들고 들어온다.


“이렇게 뜨끈한 국물에 더운 술이 최고지 말야. 치즈에 와인. 이해할 수 없잖아. 안 그래 들?”


분명히 이 인간은 좀 취했다. 안 하던 너스레를 떨고… 방금까지 우리가 그를 두고 어렵니 뭐니 얘기한 것은 까마득히 모르는 채…


“맞아예. 뭔 와인. 그거 처 마시면 입술이 시꺼매지는 것이 저승사자맨키로 해가지고… 안 그렇나?”


“과일로 술 담근 거 안 좋아한다.”


“오… 그렇구나 … 오케이. 내가 또 담근 주가 많은데 과실주는 권하지 않겠어.”


공부 잘해서 된 의사가 취미로 술도 담근다니. 알수록 희한하다.


“우리… 사실 뭐 공통 화제도 없잖아? 김 대리 빼고는? 각자 무서운 이야기 하는 거 어때? 그래서 별로 시시하면 벌주로 원샷! 좋지?”


“장 선생님예… 좀 취하신 거 같은데예…”


아직 어색한 남자 친구가 그래도 맛이 가는 것은 싫다.


“아냐. 나 괜찮아. 그리고 이 집에서 잘라면 좀 취하는 게 나아.”


응? 건 또 뭔 소리…


“하자, 무서운 이야기. 단, 자기가 겪은 걸로… 어때?”


“겪은 게 없는 사람은?”


“뭐 어디서 주워들은 거라도…

무조건 무서운 거. 안 무서우면 벌주야.”


뭔 의사가 이리 미신을 좋아한대…

그리고 나… 사실 겁 많다. 별로 내키지 않는 게임을 자꾸만 하자는 안 친한 남자 친구가 원망스러운 참인데 눈치 더럽게 없는 내 선배는 좋다고 벌써 시작했다.


“그러니까, 내 후임이 무당 집안 장손이거든? 그것도 이북 줄기. 무병이라고 하잖아 왜… 어릴 때부터 혼자 계속 이상한 거 보고, 남들한테 뭘 조심하라는 둥 지는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는 말들을 막 던지고, 한 여름에 춥다고 오돌오돌 떨고 뭐 그런 순탄치 않은 인생을 살아온 거야. 휴가 나가는 선임한테 차 조심하라고 말하고 뒤지게 맞았다가, 그 상병이 진짜로 휴가 나가서 차 사고 나는 바람에 그 이후로는 완전 열외, 무조건 열외. 아무도 뭘 시키지도 않아요. 뭘 잘 못해도 안 맞아. 저주받을까 봐. 어쨌거나… 뭐 그런 놈이 있었는데, 점점 온 국군 장병 인생 상담을 하고 그래쌋더만 점점 간이 커져서는 보초 서야 하는 시간에도 제까닥 안 나오고 이러더라고. 그날 밤은 그놈 아랑 내랑 둘이 철책 보초 서는 당번이었는데 또 혼자 한참 서있겠구만… 아님 누구 공짜로 점 본 놈이 순번 바꿔주겠거니… 이러고 있었는데 나 보다 먼저 와서 근무 서고 있더라고. 오히려 정각에 온 내가 그전 담당한테 눈치 받았잖아. 좀 이상하더라고. 딱 정면만 보고 서서는 말도 없고… 원래 말이 겁나게 많은 놈이거든. 말을 몇 번 걸었는데 대답은 없고 뭐라고 자꾸만 중얼거리는 거야. 뭐라는지 몰라서 그냥 무시했는데 자꾸만 중얼거려서 뭐라고? 들어보니까… 오늘 밤에 분명히 일어난다…라고 했나… 자꾸 이상한 소리만 되풀이했어. 이 새끼 오늘 이상하네 싶어서 그냥 냅뒀는데… 사실 신기 있어서 이상한 소리를 원래 자주 하는 놈이기도 했고… 그러고 얼마나 있었나… 갑자기 누가 뒤에서 ‘이제 나 왔으니까 꺼져!’ 하고 소리를 지르는 거야. 놀래서 돌아보니까 그 신기 있는 후임이 내 옆에 있는 놈을 있는 대로 노려보고 섰더라고. 기겁하게 놀래서 바로 옆을 돌아봤는데 아무것도 없어… 방금 전까지 나랑 한참을 같이 서 있던 그놈이 몇 년 전에 북한군 도발했을 때 총 맞고 죽은 원귀라잖아. 좀 더 같이 오래 있었음 큰일 날 뻔했다고 하더라고. 어때… 무섭지?”


“무섭기는… 뭐 흔해빠진 플롯이구만.”


사실은 별로 안 무서워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려던 참이었다. 원래 공포도 내가 겪어본 상황 혹은 겪을 가능성 있는 상황일 때 오금이 저린 법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군대 가서 새벽에 보초 설 일은 없어 보인다. 그러니 내가 그 원귀를 만날 일도 없다.


“에… 안 무섭긴… 눈동자가 흔들리는구만. 이거 자꾸 생각해보면 진짜 무섭다니까?”


“그걸 왜 자꾸 생각해야 하는데? 진짜 희한한 주입식 하고 있네.”


“뭐 아주 오싹하진 않았지만… 당사자에 빙의해보면 무서웠을 것 같다고 인정! 이제 내 차례!”


가만 보니 장 선생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근질거렸던 듯하다.


“일단은 한 잔씩 하시죠, 행님?”


본인 이야기에 가장 놀래 자빠진 강일이 오빠는 공포감에 체온이 급 하강했는지 연거푸 독한 강원도 소주를 들이켰다. 저러다가 하던 대로 할 것이다. 멀쩡하게 떠들다가 갑자기 도끼질에 지친 나무 모양 옆으로 쓰러지기…


“캬… 우리 복학생 오빠야 술 세네? … 강원도 소주는 느무 쓰다.”


“원래 소주에 설탕 안 들어가욧.”


선배 오빠가 짐짝처럼 붙어서 전혀 로맨틱하지 않은 여행을 만든 것도 짜증인데 남자 친구까지 이 상황을 너무도 좋아하는 것 같아 부아가 치미니까 저절로 가시가 온몸에서 돋아났다.


“오매… 화났는가벼? 무서운 얘기 열전까지만 하고 이 오래비 꺼져줄게. 화 풀어 아그야.”


더 밉상이다.


“나 시작할게? 해도 되지?”


사람 그리 안 봤는데 시덥한 구석도 있다. 지금 여자 친구 살짝 삐진 게 전혀 감지가 안 되는 모양 본인 괴담 털 생각에만 혼자 매우 개봉박두 상태인 것이다.


“뜸 들이지 말고, 지금 막 이야기 속으로 지어내지도 말고 어서 하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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