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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는 아들 둘이 이미 있는 꽤 사는 집 막내로 태어났지. 태어날 때부터 그녀의 인생에 별 고생 거리는 없었어. 기복이 심한 집안에 태어난 것도 아니었고, 가족들은 늦게 얻은 딸이라고 애지중지했거든. 왜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하는지 알아? 원래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소중한 감정, 그중에서도 애정이나 사랑이나 보살핌이나… 이런 것들은 기본적인 삶이 안정적일 때 더 잘 발현되는 법이거든. 넉넉한 곳간을 가진 부잣집에서 태어난 예쁘장한 여자 아이는 부족한 것 모르고, 충분히 사랑받으면서 컸어. 어렸을 땐 몰랐겠지.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으니까… 여자가 어른이 되어갈 즈음, 큰 오빠가 죽었어. 사인은 지병.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둘째 오빠도 세상을 떴어. 이유? 역시 지병. 참, 여자는 아버지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해. 여자가 태어나던 해 겨울에 그는 떠났으니까… 그가 세상을 떴던 이유도… 같은 병이었지… 둘째 오빠 장례식에서 여자의 엄마는 언젠가는 했어야 했던 이야기를 여자에게 들려주었어. 그것은 그 집안의 비밀이야.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에 얽힌 어떤 저주의 이야기였어. 둘째 오빠의 장례식에서 가장 충격을 받은 건 여자였지. 아마도 다른 이들은 다들 알고 있었던 모양이야. 울다 지친 여자에게 조용히 어깨를 내어주는 나이차 많이 나는 올케의 눈은 슬프기 짝이 없었지만 오래전부터 준비한 모양 색은 무뎌 있었거든. 장례식 끝나고 선산을 내려오던 길에 여자의 엄마가 말했어. ‘누군가를 많이 아프게 하기 싫으면 혼자 살아라.’ 둘째 오빠를 보내고 얼마 있지 않아서 여자는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어. 떠날 때 약속했던 시간보다 훨씬 전에 여자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지. 하지만 혼자가 아니었어.
배 속에 아기를 담고 돌아왔으니까… 그러니까, 누구도 사랑하지 않겠다라는 것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은 것만큼이나 때론 어려운 거야. 알고 보면 우리의 마음조차 신의 소관인 것이 대부분이니까. 여자는 분명 힘들었을 거야. 큰 오빠도, 작은 오빠도 아버지와 같은 병으로 요절했으니까. 그 저주받은 운명이 본인만 비껴갈 것 같지 않았으니까. 가뜩이나 몸이 약했던 여자는 아기를 가진 후 더 나빠졌어. 그때 즈음에 그녀는 아기를 어떻게 해야 하나를 한참 고민하고 있었어. 그 생각이 하도 깊어 자꾸만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잊어갔지. 어느 날 밤에 영양실조로 실려가 아이를 사산한 것도 어쩌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닐 거야…”
장 선생은 느릿느릿한 말투로 여기까지 조용히 들려주다가 목이 타는지 소주 몇 잔을 거푸 들이켰다. 나와 강일이 오빠 역시 말이 없다. 어쩌면 이 여인의 기구한 운명도 그러하지만 그 여인이 어렴풋이 누구인지 알 것도 같아 더욱 긴장이 되는 것이다. 소주잔을 상 위에 내려놓는 장 선생의 얼굴엔 언뜻 설명하기 힘든 표정이 잠시 감돌았다.
“… 그래… 그 여자는 우리 고모야. 병실에 들어섰을 때 그 텅 빈 얼굴… 잊을 수가 없어. 고모는 어쩌면 본인이 일부러 보냈을 그 아이에게 죄스러운지 베개를 아기처럼 안고는 내가 다시 병실 문을 열고 나설 때까지 아무 말이 없었어. 이 집이야. 고모가 지내던 집. 아이는 떠났는데 주인 없는 물건들을 자꾸만 들이기 시작했지. 강원도에 처박혀 꼼짝을 안 하는 막내딸을 할머니가 가끔 보러 오긴 했지만 그나마도 뜸해져 갔어. 고모가 점점 더 걸어 잠그기 시작했거든.
그래… 몇 년 후 건강이 갑작스레 악화되었어. 병원으로 데려가려고 온 식구가 내려왔을 때 그러더군. 지겹고 불안하게 지내다 가기 싫다고… 갈 때까지 하던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다 가겠다고. 그거 알아? 사람들은 현대의학을 너무 과신한다는 거? 의학의 발전은 수명을 좀 더 연장시키고 병과 조금 더 오래 싸우게 해 줄 뿐이야. 어차피 정해진 길은 가게 마련이거든. 결국 우리는 고모를 설득하지 못했고, 그녀는 여전히 여기에 남았었어. 어느 눈 엄청 오던 날, 여기 아저씨가 연락을 해 오기 전까지… “
“아… 마 너무 쓰린 이야깁니더… 아… 진짜 마 속상하네예… 근데 주인도 떠난 집인데 왜 안 팔고…”
무서운 이야기인 줄 방심했더니만 겁나게 슬픈 이야기였다니… 어쩌면 시리게 슬픈 이야기는 어떤 무서운 이야기보다 더 무섭다.
“장례 끝나고 할머니가 이곳을 팔려고 했었지. 아무래도 동네 사람들보다는 서울이나 외지에 사는 사람들이 별장용으로 사기 좋으니까 서울에서 관심 있어하는 이들에게 소개했어. 그런데 말야… 정작 집을 보러 온 사람들에겐 거의 모두 이상한 일이 벌어진 거야. 대부분의 그들은 내비게이션을 찍고도 이 집을 못 찾았고, 문지방을 넘었던 사람들에겐 크고 작은 사고가 생겼지. 결국 이 집을 사려고 도장을 준비했던 할머니의 지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할머니는 더 이상 이 집을 팔 수 없다는 것을 알았어. 우리는 어쩌면 고모가 아직도 여기에 고모의 아기와 같이 살고 있다고 생각해. 그러니… 오늘 밤에 자다가 혹 이상한 소리를 들어도, 이상한 것을 보아도, 이 세상 것이 아닌 것을 느껴도 너무 무서워 말고 불쌍한 우리 고모의 영혼이라고 생각해 줘.”
이 이야기는 진심으로 무섭다. 슬퍼서 더 무섭다. 그리고 오늘 밤 곧 겪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당장 걸어서라도 서울로 출발하고 싶은 심정이다. 아마 이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서 뜬금없이 무서운 이야기 경연을 제안했던 것인지 이야기를 마치자 장 선생은 피곤하다며 이제 그만 자리를 정리하자고 했다. 다들 꽤나 소주를 들이켰는데도 누구 하나 만취한 인간이 없었다.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그 운명이나 숙명 같은 것에 대해 다들 생각 중인 모양 서로에게 말을 건네는 것도 잊은 채 묵묵히 식어버린 술자리를 치우기 시작했다.
“그 방이 제일 좋긴 한데… 내가 한 이야기 때문에 신경 쓰이면 방을 바꿔도 돼.”
지나고 보니 자기 이야기 잘 안 털어놓던 장 선생이 그날 밤, 뜬금없이 왜 불행했던 고모 이야기를 했는지를 알 것도 같다. 후에 그 이야기를 했던 이유는 알게 되었지만 대체 왜 그날 쉽게 서울로 직행했어도 되는 것을 굳이 우리를 그 집에 데려가,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한 것일까…
그는 어쩌면 그때 이미 이별을 시작했었는지도 모른다.
“… 아냐, 어차피 몇 시간 안 남았는걸…
좀만 눈 붙일 거니까 괜찮아.”
사실 너무 피곤해서 급사할 수도 있나를 고민할 만큼 몸은 힘든데 눈꺼풀은 사라진양 눈이 감기질 않는다. 나는 가진 게 많은 사람이다. 겁도 많고, 눈물도 많고, 동정심도 한가득이다. 이젠 사라진 어떤 여인을 생각하느라 그 여인의 침대에 누워 한참을 뒤척이고 있었다. 생각을 할수록 생각이 더 꼬리를 물고, 한 번 만나보지도 못한 얼마 안 된 남자 친구의 돌아가신 고모를 상상하다 보니 그 고모 귀신이 갑자기 내 눈앞에 나타나도 일단 놀래지 않을 것 같다는 각오 아닌 각오를 하게 된다. 동이 트려면 아직도 멀었다. 이젠 하다 하다 강일이 오빠의 신들린 군대 후임마저 자꾸 생각나는가 싶다가… 컴컴하고 적막한 방에 갑자기 나 아닌 다른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코 끝에 비릿한… 그래, 가을비가 낙엽에 젖을 때 나는 그 비린내 같은 것이 감돌았다. 누군가의 나지막한 휘파람 소리도 저 멀리서 들리는 것 같고
“… 인연은 천천히 만날 수록 좋고, 헤어짐은 빠를수록 좋은 거야.”
누군가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아까부터 대비했던 그분인가… 나타나도 놀래지 않을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 헸는데 막상 입에서 소리를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쩌면 귀신을 만나게 되면 성대가 얼어붙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데에만 너무 집중해서 그렇게 만난 인연들 중 대부분이 허상이란 것을 모르지. 어떻게 만났던 무조건 그것이 참된 인연이라 생각해서 부화하지도 않을 썩은 달걀을 품는 암탉 같이 굴게 되는 거거든. 후후후…”
내용은 어쩜 고개가 끄덕여지는 진리인데 오싹한 느낌은 더욱 강해진다. 그 와중에 우리가 귀신을 무서워하게 되는 것은 저 영혼 없고 싸한 웃음소리 때문일 거라고 쓸데없는 분석을 해 본다.
“들어봐. 어차피 인간은 다 이기적이야. 사랑을 왜 하고 싶어, 사랑받고 싶어 그런 거지. 또한 누군가를 사랑해야만 내가 가치 있게 느껴지기 때문이지. 아냐?
저 아이와의 사랑을 기대하지 마. 넌 오래 받는 사랑은 구할 수 없을 테니… 잠깐의 찬란함이 독이 되어 남은 평생을 옭아맬 거야. 오늘 들은 무서운 이야기가 왜 무서운 이야기인지를 아직은 모르나 본데…
제기랄… 그놈의 사랑. 똑똑한 놈도 결국 그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달콤함이 궁금했었나 보군.”
알려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말을 끝으로 그 누군가는 사라졌다는 것을… 가까스로 힘을 모아 눈을 떠본다. 벌써 방안이 훤해져 있었다. 낮은 목소리가 사라진 방안은 그 목소리가 남기고 떠난 처연함만이 남아 알 수 없는 싸늘함이 감싸고 있었다. 꿈이라고 아주 오싹하고 무서운 악몽이라고 생각해 버리기엔 그 한 마디가 자꾸만 선명하게 떠오른다. ‘오늘 들은 무서운 이야기가 왜 무서운 이야기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