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돈이냐 워라밸이냐
주변 사람들의 커리어에 결정적 순간들을 리뷰하면서 어떤 결정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 함께 살펴봅니다. 물론 같은 상황이라고 해도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고 여기서 말하는 평가는 개인적인 견해이므로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제게 메일 등으로 커리어에 대해 질문해 주시는 것에 대한 작은 대답이 되었으면 하는 차원에서 이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커리어 성공의 평가는 철저히 자기만족입니다. 여기 나오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발견한 만족과 불만족을 공유드리며 여러분의 커리어에도 만족스러운 부분이 앞으로 더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연봉 추이 (추정)
- 1년 차 3,800만 원
- 4년 차 4,500만 원
- 5년 차 6,000만 원
포인트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고 다음 경로를 생각해 보자
돈 모으기가 쉽지 않습니다. 커피 마시러 모이면 깔때기처럼 집 이야기, 주식 이야기로 빠지고는 합니다. 일을 잘하고 의미 있게 하는 것과 별개로 경제적 자유를 멀지만 꿈이라도 꾸게 됩니다. 하지만 일하면서 버는 돈보다 자산 가격은 빠르게 올라가고 자산의 끝자락을 잡는 것은 이제 너무 힘겹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임장을 주말에 갔다 왔지만 예산에 안 맞아서 부모님 찬스를 알아보거나 영끌 조건을 따진다는 이야기도 커피 자리에서 듣곤 합니다. 커리어는 여기서 환경과 조건에 반응합니다.
오늘 소개할 이 분 역시 궁극적인 경제적 자유를 꿈꾸고 있습니다. 지금 하는 일에서는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태로 가고 있었죠. 회사의 문화 탓에 일의 특정 부분만 반복적으로 맡는다든지, 막상 부서의 이름을 보고 온 회사지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별로 배울 게 없는 일만 하는 것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지만 탁월한 워라밸 탓에 월급 받으면서 다니고 있었습니다. 해외여행도 적당히 다니고 얼마 모으기에는 나쁘지 않은 월급을 받았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일을 계속할 수는 없을 거란 위기감을 시간이 지날수록 느꼈고 커리어 개발을 위해 이직할 곳을 여러 군데 알아봅니다.
다행히도 혹할 수밖에 없는 부서 이름과 프로젝트 이름 등으로 여러 곳에 최종 합격을 받아두고 또 고민에 빠집니다. 여러 군데 합격한 곳들이 너무 밸런스 게임이었기 때문이죠.
회사 1 : 컨설팅 회사, 많은 야근이 기다린다는 소문과 높은 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이 혼재됨
회사 2 : 대기업 계열사, 지금보다 나은 연봉과 나름 나쁘지 않다는 워라밸 소문
회사 3 : 지금 다니는 회사, 회사 1과 2와 비교할 때 더 나은 워라밸
합격의 기쁨은 잠깐이었고 고민의 괴로움이 며칠간 찾아왔습니다. 사실 이 분은 취미 부자였습니다. SNS 관리, 필라테스, 요가, 쿠킹 클래스, 해외여행, 맛집 순례 등등 시간이 필요한 취미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아파트를 작게라도 세끼고 구매하고 싶어 했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연봉도 높으면서 워라밸도 좋은 직장이 선택지에 있었다면 고민이 줄어들었겠지만 그런 곳이 선택지에는 없었습니다.
회사 1에 가면 커리어도 더 나아질 것 같았습니다. 아직까지 컨설팅 출신이나 대학원 출신 등이 더 나은 커리어를 만들어 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고생은 조금 하겠지만 연봉도 올라가니까 그 돈으로 재테크를 할 여력도 늘어날 수 있겠죠.
회사 2에 가면 회사 1과 3의 중간 정도 되는 연봉과 워라밸을 갖게 될 것 같았습니다. 커리어만 보면 지금 회사와 큰 차이는 없었죠. 기업의 이름값이 아직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래도 지금 회사보다는 조금 더 낫지 않겠냐는 생각도 들었을 조건이었습니다.
회사 3은 워라밸은 최고지만 정체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고 연봉 테이블 내에서 더 나은 조건으로 가기 쉽지 않은 당분간의 상황이었습니다. 이미 시작한 고민이라면 이번이 아니더라도 다시 고민의 기회가 찾아올 테니 성과급이나 승진 등으로 직전 연도의 원천징수 연봉이 높을 때 이직하면 상대적으로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죠.
마음은 회사 1이었지만 겁이 났습니다. 돈이 중요하고 지금 돈을 모으지 않으면 미래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더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희망의 증거들을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름 워라밸 괜찮던데', '주말에 그렇게 일 안 하더라고요' 이런 이야기들을 블라인드 등에서 찾아보기 시작했죠. 확증편향, 이미 결정한 것만 보려고 하는 것으로 회사 1을 선택했습니다.
몇 달이 지나서 저녁 약속에서 그분을 다시 만날 수 있었는데요. 예상보다 혹독한 업무 강도와 주니어 레벨에서는 탁월하지는 않은 연봉으로 다소 지쳐 있던 상태였습니다. 사실 일이 많아서 저녁 약속 자체를 잡기가 어려웠죠. 컨설팅 특유의 을의 입장에서 갑인 고객사를 상대하는 것도 스트레스였고 적은 인원으로 많은 일을 단기에 마쳐야 하는 것도 이직 고민할 때 고려하지 않았던 힘든 점이었습니다.
하지만 돈을 더 많이 모을 수 있다는 기대감은 여전히 있었습니다. 취미들은 대부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지만 돈은 조금 더 모을 수 있었죠. 하지만 커리어는 다시 고민에 빠진 상태였습니다.
"못 버티겠어요. 이렇게 1년을 다닌 분은 대단해 보여요. 이직하고 싶어도 면접 볼 시간도 없는데..."
하지만 이 때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도 이 분은 회사 1을 잘 다니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더 중요한 것에 맞게 회사를 다니는 것이죠.
때로는 커리어의 명성보다 당장 돈이 더 중요하고 당장 돌봐야 하는 가족으로 시간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커리어는 만 명이명 만 방향으로 달리는 마라톤이니까 정답은 없죠. 그때에 맞는 가장 중요한 것을 보면서 걸어가는 것이죠. 다만 이 연재의 다른 아티클에서 공통적으로 말씀드리는 것처럼 의도된 결과가 지금 이뤄지고 있는가를 보는 것은 중요합니다. 돈을 보고 왔는데 생각보다 돈이 안되고, 워라밸만 보고 왔는데 갑자기 급변해서 휴식 시간이 없고, 커리어 개발을 보고 왔는데 생각 외로 배울 게 하나도 없다면 피드백을 해서 제대로 바꿔야 하겠죠.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어떤 것을 포기하면서라도 1번으로 생각하는 조건은 무엇인가요? 이것에 대한 정리가 먼저 필요합니다. 딱 순위에 맞아떨어지는 선택이 아니더라도 암묵지로 갖고 있는 나름의 순서는 다음 포지션을 고를 때 무의식적인 선택의 기준이 됩니다.
[TIP] 이직할 회사의 조건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
정보 비대칭이 심한 곳 중 하나가 이직 시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원자가 회사에서 실제 일하는 것에 대해 알기가 쉽지 않은 구조입니다. 실제 무슨 일을 하고, 무슨 툴을 다루어야 하고, 퇴근 시간은 어떤지 등은 현직자와 깊이 있게 대화할 자리가 없다면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간접적으로 찾는 방식은 회사의 퇴사율을 보는 것입니다. 일단 퇴사자가 많고 꾸준히 증가 중이라면 신중하게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입사자에 비해 퇴사자가 너무 많거나, 절대적인 퇴사율 숫자가 일정 수준 이상이면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이나 재무 여건을 떠나서 일하기가 쉽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연봉은 최근 연차별 연봉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가 많습니다. 잡브레인이나 원티드 인사이트나 여러 서비스를 함께 비교하면서 현재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 정보대비 얼마나 정확한지 보고 그 회사의 실제적인 연봉을 추측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경력직은 전 직장 대비 연봉이지만 일부 회사는 엄격한 내부 연봉 테이블로 강제하는 경우도 많으니 이런 부분은 블라인드 등을 검색해서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다니는 회사와 비슷한 업계라면 아무래도 지인을 통해 알아보는 게 가장 낫습니다. 지인의 소개로 알아볼 수도 있습니다. 지금 나온 이 포지션은 왜 나왔고 실제 조직 상황이 어떤지 익명으로 확인하는 방법이 낫습니다. 물론 환경은 늘 바뀌고 변화의 방향은 회사의 재무 상태와 시장 환경, 투자 주체의 변화 등이 만들죠. 이 부분도 몇 년간 회사를 다닐 거라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다음 연재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