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철물점TV X 공구로운생활의 월간 콘텐츠
넓은 부지에 옛 주공아파트와 같은 건물이 틈틈히 세워지고 그 사이로 현장 작업자들의 발길을 채워지는 곳이었다. 그라인더에 잘리는 쇠 냄새와 쉴 새 없이 오가는 화물 트럭의 부지런함이 돋보이는 곳이었다. 나도 사실 공구상가에 입주하는 게 유리한 점이 많았다. 화물 택배도 있고, 기술자들도 많이 방문하고, 공급처에서 영업이 오는 등 공구를 취급하기 위한 최적화된 조건이 갖춰져 있었다. 하지만 이 악물고 공구상가를 피해 사무실을 차린 이유는 단순했다. 공구상가만의 흑백으로 가득 찬 듯한 분위기가 그리고 예전 시화유통상가에서 아버지의 일을 대신했던 고독함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대기업이 들어오면서 해당 계열사들과 협력업체들이 지식산업단지를 형성하였고, 그에 맞춰 주위에 아파트 단지와 상권이 들어섰다. 8시 출근 시간이 되면 1호선 금정역의 출구에는 우르르 사람들이 나가고 점심시간이 되면 모든 식당에 회사원들이 바글바글했다. 공구상가의 후문에는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들리는 어린이집이 있었다. 내가 알던 삭막한 공구상가의 분위기는 없었다. 이윽고 나는 학원가의 사무실을 정리하고 바로 안양 공구상가에 입주하였다. 일하는 사람들의 생활력을 나도 같이 한번 느껴보고 싶은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런데 공구상가의 주위가 그렇게 밝아졌다면 내부에도 큰 변화가 있을까? 그건 또 아니다. 공구상가는 여전히 일반인들이 찾아오는 비율이 현저히 적다. 방문객 수가 매년 경신된다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기술자나 현장 작업자일 것이다. 이 문제는 전국 모든 공구상가들의 고민인 걸로 알고 있다. 일반 소비자들이 공구상가로의 접근성을 어떻게 높일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공구상가가 더 많은 사람에게 친숙한 장소로 기억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이다. 안양 공구상가 내에는 홈플러스가 있는데 아이러니하게 홈플러스에서 공구를 사는 사람을 꽤 많이 봤다.
처음 공구상가에 들어갔을 때의 복잡함은 나도 이미 겪어봐서 안다. 지나가다가 ‘이런 거 어디서 팔아요?’라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다. 자신있게 들어오지만 결국 발품을 팔아야 원하는 제품을 얻는 게 공구상가의 국룰이 아닌가? 알던 사람들만, 쓰는 사람들만 찾는 고인물 존(Zone) 이라는 별명이 마냥 반갑게 들리진 않는다. 주위에 대기업과 아파트 단지들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이 쉽게 방문할까? 매번 출근할 때마다 마치 내 일인 것 마냥 고민하곤 한다.
공구는 무한히 확장하고 있다. 공구는 이제 스패너, 드릴을 넘어 다양한 제품군까지 포괄하여 정의되고 사람들은 공구 지식을 빠르게 습득하며, 캠핑, DIY, 수납 등 공구를 쓰는 시장도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 이를 고려하여 보다 다양한 공구를 공구상가에서 만나볼 수 있게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취향에 맞게 공구를 구매하지 않을까 싶다. 가령, 토요일에 캠핑을 간다면 금요일 점심시간에 공구상가에 들려 캠핑 공구를 사는 건 어떨까?
사람들이 공구상가를 잘 오지 않는 이유는 ‘잘 몰라서’다. 정확하게는 공구상가의 생태계를 잘 모르는 게 맞다. 잘 모르면 타박하고 현금 장사만 할 것 같은 오해를 종종 듣곤 하다. 하지만 공구상가만큼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는, 그렇게 인심이 좋은 곳이 없다. 또, 젊은 청년들이나 여사장님들도 많다. 그래서 공구상가에도 공구에 관한 콘텐츠가 풍부해졌으면 좋겠다. 공구를 사용하는 DIY 클라스가 열린다거나, 공구 플리마켓을 연다던가, 공구업계 종사자 인터뷰를 하는 등의 공구상가가 살아 숨 쉰다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줬으면 좋겠다.
현재 안양 공구상가 옆에는 여전히 우당탕탕 철거하는 소리가 들린다. 지금도 많은데 앞으로 초고층 아파트가 더 생긴다고 한다. 극한의 용적율을 끌어올리며 하늘 끝까지 치솟는 건물들을 보면 공구상가는 옛날에 미리 생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의 넓은 부지에 2-3층에 21동, 22동 숫자를 붙여가는 성냥갑 같은 건물이 지금 생길 수 있을까?
각 기관에 혈액을 공급하는 심장처럼 산업단지 한가운데에 있어 제조업 현장에게 생산하기 위한 모든 공구를 조달 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제조업에서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의 일상을 책임져줬으면 좋겠다. 우리가 대형마트에 장 보러 가는 것처럼 공구상가에 드나들며 제품을 사 가는 그런 문화가 생겼으면 좋겠다.
처음 공구상가에 들어섰을 때가 기억난다. 아무것도 모르고 길 잃은 강아지마냥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헤맸다. 지금은? 제집 안방마냥 드나들고 있다. 아니 이제는 안방보다 더 오래 있는 곳이다. 이런 익숙한 감정과 이 과정을 많은 사람들이 체감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글을 썼다.
이 콘텐츠는 울산대표 건축자재백화점 '연암철물'과 제휴하여 제작하는 월간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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