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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Nov 16. 2019

공간이 말을 한다

-프랑스 남자 D. 관찰기

 

 키 170cm, 몸무게 70kg 정도로 보이는 땅달막한 모습, 면도기로 민 짧은 스포츠머리, 굵고 짧은 목, 물이 다 빠진 하늘색 낡은 청바지, 1980년대 복고 스타일의 커다란 체크무늬 모직 셔츠와 회색 울 셔츠를 번갈아 입음. 12시 정각에 외출함. 책을 읽을 때 돋보기를 사용함. 물은 사흘에 500ml 생수 한 병을 마심. 한 달 동안 하루에 핸드타월 두 장만 사용하고 일체의 소모품은 사용하지 않음. 제공되는 비누는 사용하지 않고 자신이 가지고 온 비누를 사용함. 변기만 사용하고 샤워하지 않음. COREE라고 쓰인 한국어 교재와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어를 익히는 중. 아몬드가 든 초콜릿 볼과 딸기 요거트, 초콜릿이 코팅된 파이 종류를 상자 떼기로 사놓고 섭취하고 있음

 이러한 특징을 가진 사람은 209호에 투숙 중인 프랑스 손님 D.이다.    

 2109호 전에는 2104호, 그전에 2002호에서 각각 열흘씩을 묵고 계속 연장을 하고 있으니 한 달 넘게 체류 중인 장기 투숙객이다. 이 고객에 대해서 관찰 아닌 관찰, 말하자면 주시하게 된 경위는 독특한 체취에 있다. 


 호텔에서 일을 하다 보면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이 말한 '공간이 말을 한다'는 말에 대해 체감적으로 느끼는 장면들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공간도 적당히 깨끗하게, 적당히 지저분하게, 적당히 먹고, 자고, 적당히 씻고, 적당히 버리고... 적당하게 사용하고 간 객실은 별 무리가 없이 잘 회전이 되는데, 그 반대의 경우, 즉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놀랄 만큼 지저분하다거나, 소름 끼칠 정도로 깨끗하게 정돈을 해놓고 갔다거나 등등 보통의 경우에 비해 과도할 때는 객실의 부분 부분을 잘 점검해야 한다. 가령 기물이 파손되어 있다거나, 오염이 심한 부분이 발견된다든가, 분실물을 두고 갔다거나, 반대로 소모품이 아닌 객실 비품을 가져갔다거나 하는 등의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향수를 과도하게 많이 뿌려서 자신은 좋은 향이라고 느낄지 몰라도 타인에게는 머리가 아플 정도의 인공적인 향이 나는 방도 있고, 방 안에서 양념치킨 같은 음식을 먹어서 음식 냄새로 꽉 차 있는 방도 있고, 무슨 냄새인지 알 수 없는 독특한 체취로 가득한 방도 있는데, 시각적인 오염보다 후각적 오염이 발견이 되는 것이 정비에 더 어려움을 준다. 방에 베인 냄새가 빠져나가는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후각은 가장 예민함과 동시에 공간에 들어가면 몇 초 있지 않아서 금방 적응이 되는 둔감한 기관이기도 하다.


 프랑스 장기 투숙객 D. 는 이 업계에서 일하면서 경험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오고 간 고객 중 잊기 힘든 독특한 체취의 소유자로 처음에 이 객실에 드나들면서 정비를 할 때는 냄새가 너무 역해서 얼른 마치고 나올 생각만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의 체취에 대한 호기심으로 발전했다.

 보기에는 꽤 인텔리같이 보이고, 듣자 하니 작년에는 일본에서 한 달간 체류했다고도 하고, 한국에도 오랫동안 여행하고 하는 걸 보면 경제적인 여유도 있는 것 같고, 방도 깨끗하게 쓰고... 보기에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이는 멀쩡한 사람인데 아마 틀림없이 본인도 자신의 체취가 이토록 타인에게는 고통스러운 수준의 악취인 것을 모를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사람의 체취에 대한 의학적, 생리학적 관심이 증폭된다.    


 청소를 하면서… 호텔 공간은 내가 이생에서 가장 비중을 두고 있는 마음공부를 물리적인 형태로 재현하는 현장이라는 생각을 한다.

 하느님께 배정받은 나의 객실을 적당히 쓰고 적당히 사용하고, 뒷사람이 청소하면서 힘들지 않을 만큼 정리하면서 살고, 향기는 못 남길망정 악취는 풍기지 않고,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적당히 머무르다가 적당히 떠나는 지구별 여행자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에 자주 이르게 한다.

 세상을 잘 구경하고 주어진 것들을 잘 사용하고 가면서, 꽃 그림을 그린 땡큐레터 한 장과 한 푼의 팁을 남기고 싶다. 내 자리를 돌아보는 사람이 미소 지을 수 있는, 센스있는 여행자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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