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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Nov 16. 2019

출발. 만남. 시도. 도착

-스테이션에서

  

 정해진 시간 내에 그날 나에게 배정된 객실을 정비하는 것이 메이드 일의 주요 업무다. 단순한 구조의 청소를 반복하는 소위 노가다일 것 같지만 기본 틀은 같으나 매일매일 다이내믹한 상황들이 펼쳐져 감각을 살아있게 한다. 마치 여러 나라의 여행을 다닐 때 비슷한 기차를 타고 비슷한 숙소에서 잠을 자고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고 비슷한 도시와 자연을 구경하는 듯 하지만 가는 곳마다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것과도 같다.

 호텔 각 층에 스테이션이 있다. 스테이션의 원래 뜻은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호텔에서는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비품들을 보관하고 메이드들이 머무는 공간이 된다.

 동음이의어로 스테이션은 역이라는 뜻도 있다. 아침에 출근해서 스테이션에서 출발해서 일을 다 마치고 다시 스테이션으로 돌아온다. 어떤 날은 내 컨디션도 방들의 상태도 좋아서 가볍고 빠르게 기분 좋은 성취감으로 복귀하게 될 때도 있고, 어떤 날은 내 컨디션이나 방의 상태가 안 좋아서 엄청 고전하다가 힘겹게 복귀할 때도 있다.

 좋은 날은 좋은 날 대로 힘든 날은 힘든 날 대로 항상 돌아온다.

 지금 읽고 있는 책,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네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출발', '만남', '시도', '귀로'가 그것이다. 

 우리는 매일 출발한다. 두려움과 설렘의 양가감정을 안고서.

 매일 나 자신과 또 세상과 만난다.

 그 만남에서 무언가 시도한다.

그 시도에 따른 성취감이나 패배감을 안고 돌아온다.

누구에게나 두려움이 있고 희망이 있다.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에게도 약간의 두려움은 있기 마련이고, 두려움으로 가득 찬 사람에게도 일말의 희망이 있기에 출발을 선택한다.

 오늘도 이기는 하루가 되기를!        


 지금 출근 시간이 임박하다. 고구마와 달걀을 삶는 동안 몇 줄의 글을 쓰려고 한다.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지만 글을 쓰는 것이 나에게는 하루를 살아가는데 중요한 비타민처럼 기도처럼 작용할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메이드 일을 하면서 정말 신기한 경험을 많이 한다.

이 일에 있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은 정해진 시간 내에 주어진 일을 해내야 하는 것이다. 머리로 생각해 을 때 가능한 일이든 계산상으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일이든 말이다.

 매일매일이 비슷하지만 다른 패턴, 다른 혼돈이 기다리고 있으며 그 혼돈을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극에 달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반드시 어떤 도움의 상황이 생겨서 일을 마무리하게 되고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된다.

 반드시 생기는 어떤 도움의 상황이란, 누군가 예기치 못한 사람이 등장해서 도와준다든가 방이 깨끗하다든가, 스케줄이 변경된다든가 등등의 일인데 정말 신기할 정도다.

 마치 기승전결이 있는 옛이야기나 구조가 분명한 고전 음악과도 같은 리듬의 하루가 썩 마음에 든다.

 하나 중요한 사실은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일을 함에 있어서 누가 도와줄 것이라는 지점에 방점을 찍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어떤 도움도 없이 나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비장함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할 때 그런 신기한 상황이 마치 문이 열리듯이 열린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천사를 만날 수가 있다.     

 메이드들은 일을 할 때는 힘들어하지만 각자의 소임을 마치고 락카에서 옷을 갈아입으면서는 오늘 있었던 드라마틱한 상황을 얘기하며 웃고 떠들며 즐거운 분위기 속에 헤어지곤 한다.

 “오늘 죽는 줄 알았다.”

 “맨날 죽는다 하면서 안 죽고 다 내려왔네.”

 “방 하기 딱 좋은 나인데~”

 “호랑이가 쫓아와도 하던 그대로 쭉 밀고 나가야 돼.”

 “우리는 하루는 행복하고 하루는 불행해.”

  락카에서 하는 이야기들을 듣고 있으면 도인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 알람이 울린다. 일상의 도를 유지하는 최선을 지키기 위해 서둘러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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