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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Nov 16. 2019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들에게

-프롤로그

 

 이 글은 내 인생 어느 모퉁이, 가장 어두운 숲 속에 접어들었을 때의 기록이다.

 비바람 속에서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오토바이를 타고 새벽의 여명 속을 달려가서 했던 분식집 마감청소를 위밍업으로 시작해서 곧이어 풀타임 호텔 룸메이드 일로 육체노동의 진수를 맛보았던 시절이었다. ‘어둠이 가장 깊을 때 새벽이 밝아온다’고 했던가. 외로움 속에서 모은 이 조각 글들은 어둠 속에서 밝아온 새벽에 대한 증거이다. 

 매일 같은 시간대에 일어나서 땀을 흘리면서 몸을 움직이는 일이 몸과 마음을 일상적이고 항상적으로 유지시켜 주었고, 노동의 정직함이 몸 안에 하나의 길을 만든 것 같다.

 불안은 성실을 만들고 성실은 길을 만들고 그 길 위에서 진짜 나를 만난다.  

      

 출근 시간대에는 신문 배달하는 분과 마주치고 퇴근 시간대에는 미용실 수건 배달하는 분과 맥도널드 라이더와 자주 마주친다. 서로 스쳐 지나갈 뿐이지만 생계밀착형 라이더들인 우리는 마음으로 인사를 나눈다.

 "수고 많으십니다. 힘내세요." 뭐 이런 식으로.

 비바람이 불거나 추운 날씨에는 더 따뜻한 마음으로 인사를 한다.

 이 일을 시작할 때는 내 인생에서 제일 바닥을 친다고 생각하면서 아무도 깨어있지 않은 밤에 혼자 적막하고 냉기 가득한 어둠 속에 떨어져 있는 기분이었다.      

  

 이 바닥에서 이웃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넓어지고 깊어지고 따뜻해졌다. 옆 가게 편의점에 아르바이트하는 학생이 조는 모습에 마음이 측은해지고, 스산한 바람이 유리문 틈새로 스며들 텐데 좁은 경비실 작은 침대에서 주무시는 경비원 아저씨도 돌아봐지고, 인사는 안 하지만 서로 스쳐 지나가는 오토바이 배달부들이 며칠씩 안 보이면 어디 아픈가, 그만뒀나, 신경도 쓰인다. 내가 제일 바닥인 것 같았지만 비가 오거나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 영하의 겨울날에 바깥에서 일하시는 미화원이나 쓰레기 수거하시는 분들을 보면 따뜻한 실내에 있는 내가 미안해질 지경이다.        


 같은 시간대에 똑같은 일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의도하지 않은 수확들도 많이 있었다.

 혼자 일을 하면 표정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고,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음악을 듣고 싶을 땐 크게 틀어도 되고 안 듣고 싶으면 적막하게 고요를 즐긴다. 혼자 일해도 웃을 일도 있고 갑자기 예전의 억울한 일이 생각나서 욕을 하기도 하고 눈물이 흐르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동안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일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가짜 웃음을 웃고 불필요한 신경을 쓰면서 감정 노동을 했는지, 그런다고 새어나간 에너지가 얼마나 많았는지 절감했다. 이렇게 자가 치유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청소 일을 하며 오가는 동안 읽은 것, 들은 것, 떠오르는 것들을 수첩에 적었고, 휴일 날 읽어보면 내가 적은 것이 맞나 싶도록 고차원적인 가치들로 가득 차 있다.

 지난주 메모 중에는 지난주 내내 가방 속에 가지고 다니면서 읽은 토머스 머튼의 책에서 베껴 적어놓은 글들이 가장 많았다. 힘이 되었던 문장을 다시 옮겨 적는다.

 '하느님의 아름다움은, 자기들이 드리는 찬미가 하느님께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자기들의 한계에 이르러 그것을 깨닫는 사람들에 의해 최고의 찬미를 받는다.'        


그 새벽, 창문 앞에 뜨거운 커피를 놓고 간 맥도널드 라이더에게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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