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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Jan 20. 2024

난독증을 이해하고 비로소 시작된 독서

-매리언 울프 <책 읽는 뇌>


  


 100년 전에는 난독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거의 아무도 알지 못했다. 독서는 선천적인 기능이 아니며 인류가 필요에 의해서 배운 새로운 연결 방법, 지적 진화의 전개 방식인 것이다.

 뇌가 독서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은 기존 구조와 회로를 사용해 새로운 연결을 만드는 다재다능한 능력을 갖고 있음을 암시한다. 새로운 것을 배울 때마다 뇌 속에 있는 신경세포가 새로운 연결과 경로를 만들어 낸다. 스스로 형태를 바꾸거나 편성을 달리함으로써 다양한 명령을 수용하는 시스템을 '오픈 아키텍처(open architecture)'라고 한다. 뇌는 유전적 자원이 제한되어 있음에도 훌륭한 오픈 아키텍처의 예가 된다. 그러한 설계 덕분에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자연으로부터 받은 것을 변화시키고 뛰어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유전적으로 혁신에 적합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독서하는 뇌는 매우 성공적인 양방향 역학으로 구성된다. 독서는 뇌가 가소성 있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비로소 학습이 가능한 것이다. 독서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그 사람의 뇌 안에 이미 생리적, 인지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났다는 뜻이다.


 단어를 인식하는 능력에는 영장류의 진화 과정에서 예전에 개발되어 있던 , 물체 인지에 특화된 회로가 사용된다. 인류의 조상이 선천적인 약량에 의존해 시각적 특화를 했기 때문에 약탈자와 먹이를 한눈에 구분할 수 있었던 것처럼 문자와 단어의 인지 능력에는 '특화의 특화'를 가능케 하는 훨씬 더 내재적인 역량이 개입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독서하는 뇌는 시각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개념 및 언어 기능에 연결시키기 위해 기존에 설계되어 있던 뉴런의 경로를 활용한다. 시각을 개념 및 언어 기능에 연결시킨다는 것은 머릿속에서 어떤 단어를 찾아내는 것 따위의 연결 기능을 말한다.


 독서와 같이 새로운 능력을 창조해야 하는 뇌는 다음의 세 가지 조직 원리를 갖는데, 이 역량을 갖추느냐 갖추지 못하느냐에 따라 독서의 발달 또는 실패의 토대가 된다.

1. 기존에 만들어져 있던 구조들을 새로운 방법으로 연결하는 역량

2. 정보의 패턴을 인지하기 위해 세밀하고 정확하게 특화 영역들을 형성하는 역량

3. 이 영역들로부터 자동적으로 정보를 이끌어 내 연결시키는 능력


 뉴런 회로가 자동화된다는 것은 하루아침에 가능한 일이 아니며 이러한 회로와 경로들은 문자와 단어에 수백 번 노출된 다음에야 만들어진다. 난독증이 있는 경우, 수천 번 이상 노출되어야 형성되기도 한다.

 독서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법은 없다. 세상에 태어난 아이가 발달하는 뇌는 모든 부분을 총동원해 독서 능력을 학습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2,000일 동안 단어, 개념 또는 사회적 관례, 그 무엇 하나 쿠심코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은 처음부터 존재하거나 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향후 독서 발달과 삶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


아무도 삶을 공부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삶을 공부하듯 살라고 하지 않았다.
역사나 음악을 배우듯 처음에는 쉬운 것부터 시작해
천천히 어려운 것을 시도해 나가며, 연습해야 한다고,
힘과 정확도가 하나 되어 대담하게 도약해
초절기교(transcendence)에 이를 때까지...
-에이드리언 리치, <초절기교 연습곡>



 지금 반백살이 된 내가 삶에서 겪은 이해할 수 없었던 많은 어려움들의 원인에 난독증이 있었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하게 된 것은 마흔이 넘어서였다. 앞서 소개한 책, 매리언 울프의 <책 읽는 뇌>를 통해 그 사실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을 때, 큰 슬픔과 함께 큰 희망을 갖게 되었다. 난독증은 장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한한 가능성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결핍이나 장애가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점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는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싫어하거나 부끄러워하고 죄책감에 시달리고 어딘가로 숨고 도망가고 핑계를 대는, 그로 인해 불필요한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던 피곤한 삶을 종식시킬 수 있었다.

 

 난독증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은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다. "글을 잘 못 읽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적절한 교육이나 상담, 치료를 받으면 되지 않나요? 왜 그런 고통을 받으면서 해결하지 않았을까요?" 바로 이 지점이다. 앞서 말했듯이 인생의 많은 시간을 먹구름 속에서 보내면서도 그 원인이 난독증에 있다는 사실을 알기조차 어렵다는 것이 난독증의 비극이다. 난독증은 글을 읽지 못하거나 읽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명확한 증상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읽기와 쓰기를 익히는 데 열 살부터 약 3년이 적절한 기간이며, 누구도 그것을 좋아하거나 싫어한다고 해서 이 기간을 마음대로 연장하거나 축소할 수 없다. 당연히 읽기와 쓰기가 가능한 정도까지 문자에 대한 학습을 꾸준히 계속해야 한다. 하지만 정해진 기간 애에 자연스러운 발전의 속도가 느릴 경우, 빠르고 능란하게 수행하는 능력을 완성하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
-플라톤

 

 개인사에서 플라톤이 말한 열 살부터 약 3년간, 즉 초등학교 고학년 시기에 집에 큰 사고가 나는 등 학습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던 점을 난독증의 한 원인으로 추측도 해보았지만, 두 살 터울의 언니와 동생은 난독증이 아닌 걸로 봐서 환경이 일부 영향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난독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해결이 어려운 것은 난독증의 원인이나 증상 자체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독증은 그 자체로서의 문제보다 난독증으로 인한 자존감 하락, 관계 문제 등 다양한 문제로 확대될 수 있는 이중고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더 큰 비극이다.

  


 어린 시절, 황금시대의 다재다능했던 인생에 그림이 사라지면서 먹구름이 몰려왔다. 똑똑하고 재기 발랄하다고 많은 기대와 칭찬을 받아왔던 나는 중학교 1학년 시험에서 전교 10등 안에 들었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조금씩 성적이 떨어졌고, 어느 순간 급격하게 떨어졌고, 그럴 때마다 "똑똑한 애가 이러지?"라든가, "실망이다.", "너 옛날에 공부 잘했잖아.", "넌 다 좋은데 어딘가 2% 부족해.'와 같은 말을 듣게 되고 충격에 빠졌다. 노력을 많이 하고, 황금시대를 복원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그럴수록 스스로에 대한 의문과 자괴감, 무력감, 죄의식도 동시에 커지는 곤혹스러운 상태였다.


 엎친데 겹친 격으로 만성 편두통에 시달리게 되었다. 정말 꾀병처럼 머리가 너무 아팠고, 진통제를 달고 살았다. 그림을 그릴 때만 조금 나아졌고, 책을 보려고 하면 방바닥을 구를 정도로 머리가 아팠다. 큰 병원에 가서 뇌파 검사를 받아봤지만 별 다른 증상을 찾아내지 못했다.

 피난처로 그림을 선택했다. 나에게는 글이 차가운 소낙비를 품은 먹구름이었으니, 나에게 햇살이었던 그림에게만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림은 어떤 비교도, 평가도, 비난도 하지 않고 같이 놀아주었으니까. 그림을 그릴 때만 이해받을 수 있다.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성적이 떨어졌다."라고 가족도, 선생님도, 친구들도, 나 자신까지 감쪽같이 속일 수 있었다.


 읽기의 어려움은 있었지만 쓰는 것과는 또 달라서 쓰기는 좋아했고, 곧 잘했다. 난독증이 진행되는 가운데서도 꾸준히 글을 써서 글로 상도 많이 받았고, 글을 계속 쓰려면 국문학과나 문예창작과에 진학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난독증은 학습장애로 이어져 이미 수학, 과학은 포기 상태였고, 많은 것들이 국문과의 진학은 입 밖에 낼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결국 "내 꿈은 화가야!"라고 나 자신을 설득했고, 대학도 미술 쪽으로 가게 되었고, 직장도 웹디자인, 애니메이션 관련 일을 했다.


 난독증을 갖고 있으면서도 다른 재능으로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큰돈을 벌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많이 있다. 주 5일제가 시행되지 않았을 과거, 친구들은 주 5일 재택근무를 하는 나를 부러워하기도 했고, 가까운 지인들도 멋진 일을 한다고 했으며, 나 자신도 현실에 발을 붙이고 꿋꿋이 밀고 나갔지만, "그래서 행복한가?"라고 물을 때, 항상 걸리는 것은 글이었다. 잘하는 것을 특화시키기보다 저만치 멀어진 글과 함께 가고 싶었다.



 

 '학교에 진학할 때까지는 전혀 문제를 감지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전에는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나 어떤 징후도 보이지 않다가, 어른일 경우에는 불안감으로 나타나고 아동일 경우에는 욕구불만과 산만함으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의 능력에서 아무런 부족함이나 걱정할 만한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엘리사는 자신의 장애를 인정하지 않았고, 반 친구들에게 그것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았으며, 열등감에 아파하면서 다른 아이들과 동등해지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했습니다. 그 때문에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했습니다.'


 '당사자인 아동은 당연히 가장 무방비한 상태에 노출되고 가장 이해받지 못하는 존재가 됩니다. 날마다 많은 시간 동안 힘든 갈바리오(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고통으로 상징되는 언덕)를 경험해야 하며, 몰이해와 아무런 도움 없이 전혀 엉뚱한 방식으로 반응합니다.'


 '몸이 아프다거나, 학교 갈 때가 되면 신체적인 장애를 호소하거나, 행동을 완강히 거부하거나, 하라고 시킨 것에 대해 도전적으로 반항하는 태도를 보이거나, 어떻게든 어려움을 최대한 은폐함으로써 또래 그룹 안에서 드러나지 않으려고 합니다.'


 '모자란 아이', '지진아', '게으른 아이',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로 낙인이 찍힙니다. 부모는 똘똘한 아이가 왜 이러나 당황하고, 화가 나며 야단칩니다. 선생님은 지능 수준을 의심하고 학습장애아 또는 문제아로 취급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아동 자신은 자신감을 잃어 가며 정서적으로 위축, 불안, 우울증에 빠지거나, 짜증, 분노, 친구문제, 공격적 행동을 보입니다. 이러한 정서와 행동문제는 난독증을 빨리 발견하지 못하고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하는 아동에게 흔히 발생하여 청소년 시절에 문제가 배가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기에 발견하여 이차적 학습, 정서, 행동문제가 생기기 전에 적절한 치료와 특수교육, 부모교육 등이 행해져야 합니다.'


 이탈리아 난독증 협회 설립자이자 심리학자 쟈코모 스텔라가 쓴 <난독증 이야기>에 난독증을 가진 많은 아이들의 사례가 나온다. 위에서 소개한 책 <책 읽는 뇌>를 읽으면서 처음으로 내가 난독증이라는 것을 인식했다면, <난독증 이야기>에 나오는 많은 난독증 사례와 증언을 읽으면서 그 고통이 너무나 생생하게 와닿았고, 그래도... 설마... 하던 생각이 확실해졌다.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려 예수님의 수난을 감내하며 견뎠던 순간들은 바로 난독증 때문이었구나!




 난독증을 처음 알았을 때, 원망스러웠다. 사람의 인생을 이토록 감쪽같이 속이는 질병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부모님과 선생님, 달나라에 가는 과학기술로도 해결하지 못한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언제나 따뜻한 햇살처럼 품어주었던 그림조차 미웠다. 나를 밀어내주지. "이제 다들 떠났어. 너도 이제 다른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돼! 아쉽지만 이제 오지 마.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될 거야." 매정하게 나의 성장을 위해 뿌리쳐주지 않고 말없이 품어주기만 했던 그림도 싫었다.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모든 화구를 다 버린 적도 있었다.


 지병을 가진 사람들이 처음에 발병을 알았을 때의 반응은 당혹감이다. "내가 왜?"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았을 뿐인데... 억울하고, 분하고, 원통하다. 분노가 치민다. 다음으로 슬픔이 찾아온다. 감정의 파도가 지나가고 나면  "내가 알아내고야 말겠어." 알아내려는 자의식이 나선다. 내가 왜 이런 결핍을 갖게 되었는지, 생후 초기 기억부터 유년기, 소년기, 청소년기, 청년기를 샅샅이 파악해서 발병 원인을 찾아내고 해결하려는 의지를 갖게 된다.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 지나가고 나면 큰 노력 없이 그냥 같이 잘 지내기를 선택하게 된다. 그때 비로소 친구가 된다. 친구가 된 병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귀여운 구석도, 웃기는 면도, 인간적인 면도, 좋은 많은 것들이 스며들듯이 가까이에 모여든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과거의 치욕스러웠던 순간들, 모르고 말했던 사람들, 수많은 실수와 좌충우돌과 우여곡절의 해프닝들이 다 나만의 이야기, 비밀, 글감이 된다.

 

 지금의 나는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린다. 햇살 가득한 날과 태풍이 치는 날, 그 어느 날씨도 나쁜 것이 아님을, 필요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잘 읽어지는 날은 잘 읽어져서 감사하고, 안 읽어지는 날은 안 읽어지는 대로 조금만, 천천히 읽고 쉬면 되니까 그것도 좋다. 그림을 그리면서 글이 떠오르고, 글을 쓰면서 그림이 그려지는 것도 기쁜 일이다.

 


 <읽기의 천사> 1화로 나의 난독증 인생을 고백했다. 너무 자기 이야기를 많이 쏟아내는 글을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쓰는 입장도 편치만은 않다. 하지만, 글도 다양한 종류가 있고, 자기 이야기를 써야만 시작되는 이야기도 있음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다만, 내 이야기가 나의 고통과 감정의 배설이 아니라, 진정 난독증으로 고통받는 많은 아이들을 돕는 어른들의 마음에 보태어지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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