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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Feb 15. 2024

브런치 작가의 기쁨

-feat. 야곱의 축복


하루종일 고강도의 집중과 몰입을 하고, 새로 시작한 북스타그램 책리뷰 작업과 팔로우 활동도 인스타 측에서 정해논 제한에 걸릴 만큼 열심히 하다 보니, 연재 브런치 시작한 이후로 하마터면 처음으로 거를 뻔했다. 12시가 되기 40분 전에 사실을 알아차렸다. 연재 브런치는 독자와의 소중한 약속이 아니던가!


12시 종이 울리면 황금마차가 호박으로 변하고, 백마가 생쥐로 변하고, 드레스가 누더기로 변하는 신데렐라가 된 듯이 마음이 조급해졌다. 서둘러서 새하얀 브런치 창을 열고, 한 번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다. 뭐라도 써야지!


사실 지난 9월까지 하던 일을 그만두고 100일가량 그토록 원하던 백수가 되어, (사실은 작가 지망생이 되어) 브런치 밭 갈기에 매진해 온 결과, 새로운 인연을 만나 출간을 목적으로 집필에 착수했다. 조금씩 바빠지면서 100일 전과 비슷한 심박수로 궤도에 진입하고 있는 이 느낌이 좋다.



지난 9월까지 하던 일을 잠깐 말하자면, 그 회사에 합격했을 때, 비록 계약직이었지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50이 넘은 나이에 190만 유튜브 채널에 애니메이터 유망주로 채용이 된 것이었다.

그 회사는 한때 어린이들이 가장 들어가고 싶어 한다던 꿈의 직장으로 부상하기도 했었다.


나의 취업 소식을 들은 지인들은 자신의 자녀한테 말했더니 그 회사는 창의력이 좋은 사람만 들어가는 유명한 곳이라고 했다며, 회사의 주식에 대해서 알아보겠다는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으면서 개과천선이라도 한 듯이 앞날을 축복해 주었다. 특히 이전의 직장이었던 호텔 룸메이드를 비롯한 아르바이트 대장정 시절의 고단함을 아는 몇몇 친구들은 '고생 끝에 낙이 왔다',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 '꽃길만 걷자' 등의 클리셰를 연발하면서 눈물을 그렁이며 두 손을 꼭 잡아주었다.


영상을 업로드했다 하면 곧바로 영어와 일본어로 댓글이 다다닥! 붙기 시작했고, 단 며칠 만에 내가 만든 영상이 100만을 돌파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흥분의 도가니탕이었다.

"깨똑! 깨똑!"...

'작가님은 우리의 구원 투수'라며 꽃가루 이모티콘이 쇄도했고, '열정만큼은 픽사에 들어갈만하다'는 평가가 나왔으며, 그러자 픽사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올지도 모른다는 환상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그러나 글로벌 아티스트가 되기에는 영어를 못한다는 점이 걸렸다. 그런 흥분도 잠시, 100만이 넘는 영상이 많아지면서 그것도 시큰둥해졌다.



전혀 모르는 아랍어를 번역기에 넣고 돌려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당신의 금손이 부럽다.'

'더 많은 영상을 만들어 달라.'

'정말 재미있다!'

'커서 당신과 같은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

'메이킹 영상을 공개해 달라.'

'어떻게 하면 그렇게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나요?'

그렇게 쓰는 사람들은 대체로 어린이들이었다.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행복했다. 이점은 훗날 심판의 날이 도래했을 때, 나쁜 짓 한 것을 상쇄하는데 한 몫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선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 영상에 나오는 손이 남자 손 같아요. 이 채널에 남자도 있는 것 같네요.'

'네, 왼손 엄지 손가락에 점 있는 사람이 남자예요.'

꼬마 시청자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글을 주고받았다.

왼손 엄지 손가락에 점이 있는 사람은 바로 나다. 여잔데...

눈썰미 좋은 꼬마 시청자들 때문에, (덕분에) 네일숍에 다니며 관리도 꾸준히 받았다.


그래도 그림은 일생 동안 가장 많이 한 작업이고, 주로 그 일로 밥벌이를 해서 가장 익숙해져 있는 일이라 능력적으로 딸리거나 욕먹는 일은 별로 없었다. 회사 사정이 안 좋아져서 갑자기 하차하게 되었는데, 더 젊었을 때의 나였다면 충격이 컸겠지만, 이만큼 살다 보니 나름 산전, 수전, 공중전에 이르기까지 별의별 일을 다 겪어봐서 그만한 일은 큰 충격도 아니었다. 사람이 하는 일이 그렇기도 하다는 걸 너무나 빨리 받아들였다.



한나절 기운이 좀 빠져있다가 재미있는 영화 한 편 보고, 맛있는 한 끼 사 먹고 나면 금방 "Let it go!"를 외치면서, 다음 목적지를 향해 고개를 쳐들고 행군했다. 모아둔 재물은 없지만, 하늘에 나는 새 한 마리도 먹여 살리시는 하느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를 살리실 것을 알기에 두려움이 없었다.

하늘의 새들을 보라 걱정 없이 날으지 않나

먹을 것도 입을 것까지 아무 걱정 말아라

이럴 때 내 등 뒤에 오토매틱컬리 깔리는, 효과 만점인 배경음악을 부르면서 걷는 것으로 다시 시작하면 되었다.


그러면 곧 내 영혼의 주크박스에서 다음 노래가 이어졌다.

금과 은 나 없어도 내게 있는 것 네게 주니

곧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그는 뛰었네 걸었네 찬양했네

그는 뛰었네 걸었네 찬양했네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영혼의 주크박스에서 들려오는 노래를 들으며 걷는 길의 마지막은 축복이었다.

너는 담장너머로 뻗은 나무 가지의 푸른 열매처럼

하나님의 귀한 축복이 삶에 가득히 넘쳐날 거야

너는 어떤 시련이 와도 능히 이겨낼 강한 팔이 있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너와 언제나 함께 하시니

너는 하나님의 사람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

나는 널 위해 기도하며 네 길을 축복할 거야

너는 하나님의 선물 사랑스런 하나님의 열매

주의 품에 꽃 피운 나무가 되어줘



삼십 대 정규직 팀원들은 나의 떠남을 아쉬워하면서 비슷한 일로 일감을 얻을 수 있는 플랫폼을 알려주기도 하고, 많은 정보를 공유해 주었다. 이 위기를 기회로 잘 포장해서 몸값을 키우는 비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마음은 눈물 나게 고마웠지만 나는 애니메이터의 일로 쌓인 화려한 포트폴리오를 뿌리기보다 무색, 무취, 무미의 새하얀 브런치를 선택했다. 그림보다 능숙하지 않고 잘하지 못하는 글로 밥벌이를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 채 일단 가슴이 뛰는 방향을 향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사실 애니메이터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전략이었다. 3년 전, 지원 당시, 나는 애니메이터가 아니었다. 그저 그림을 조금 잘 그릴뿐이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멈춰있는 그림, 안 움직이는 그림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였다. 연속된 그림에 속도를 줘서 그림이 움직이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공부하면 애니메이션이 된다는 기본에 충실한 아이디어만 가지고 무작정 뛰어든 것이었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는 열정은 두 컷만으로 뚝딱거리는 움직임을 만들어 놓고도 그게 얼마나 신기하고 재미있는지 무한 루프를 돌려놓고 흐뭇하게 감상하곤 했다.


그 즐거움이 쌓여 포트폴리오가 되었고, 취업도 했고, 190만 유튜브 크리에이터도 되어 보았다.

아! 이제 오늘이 6분밖에 남지 않았다. 곧 "땡- 땡- 땡- 땡-" 시계가 울릴 것이다.

황금마차가 호박으로, 백마가 생쥐로, 드레스가 누더기로 변할 시간이다.

맞춤법 검사를 하고 발행을 해야지.


지금 나는 더 이상 190만 크리에이터가 아니라,

그보다 더 소중한 231명의 구독자를 가진 브런치의 주인장이니까 말이다.

이 현실이 매우 매우 행복하다.

타자들이 만들어놓은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것보다,

마르지 않는 나의 샘물을 마시는 즐거움을 찾았기 때문이다.



+ 야곱의 축복

https://www.youtube.com/watch?v=HgPOrCC7-2Y




+ 일요일과 목요일 -<길모퉁이 글쓰기 카페>

+ 화요일과 토요일 -<읽기의 천사>

+ 월요일과 금요일 -<건강할 결심>

+ 수요일과 토요일 -<오랜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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