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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May 05. 2024

달도 잠을 잔다



삭의 시간

'삭'이라는 단어, '삭의 시간'이라는 말은 마음치유 상담가 신기율 작가님의 책 <은둔의 즐거움>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은둔의 즐거움>  |  신기율  |  웅진 지식하우스



'밤에 떠 있는 달은 날이 바뀔 때마다 늘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손톱만큼 가는 초승달이었다가 며칠이 지나면 보름달이 되고 그러다 어느새 다시 어두운 그믐달이 된다. 조금씩 변하는 달의 모습은 그믐달이 다시 초승달이 되기 전 며칠 동안 완전히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삭'에 이르러 절정에 달한다.


고대의 사람들은 이런 변화무쌍한 달을 관찰하며 달과 사람의 마음이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달이 변할 때마다 사람의 마음도 함께 변한다고 믿었다. 풍성한 보름달이 뜨면 우리의 마음도 풍성해지고, 이제 막 태어난 새싹 같은 초승달이 뜨면 우리의 마음도 그렇게 여리고 새침해진다고. 특히 삭이 되어 달이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가 되면 마음도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고대인들은 삭의 시간을 사라져 가는 달이 새로운 달로 환생하기 위한 '준비의 시간'으로 여겼다. 그래서 삭의 시간이 되면 우리 마음도 그동안 쌓여왔던 아픔과 슬픔을 어둠 속에 비워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태어날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33-34쪽)




필사노트

새 연재브런치북 <삭의 시간>은 침묵에 대한 글의 필사노트로 채워가려고 한다.

화려한 이미지를 가득 실은 매일의 연재브런치 글 발행과 이웃 탐방을 다니며 댓글, 대댓글, 이모티콘을 대거 투척하는 오렌인 줄 다 아는데, 웬 침묵의 글이냐고 하실 수도 있을 것이다.


얼마 전 한 작가님께서 내가 쓴 난독증에 대한 글에 대해 '이렇게 많이 읽고 빨리 쓰면서 난독증이라는 게 뭔가 안 맞는 것 같은데요?'라는 댓글을 쓰신 것처럼 말이다. 난독증에 대한 증상과 문제점을 의식하고 노력함으로써 가랑비에 옷 젖듯이 자연 치유되었듯이, 침묵의 글을 필사하는 동안 침묵과 언어의 의미를 통찰하고 내재화하면서, 보다 단단하고 유연한 말의 힘을 기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침묵에 대한 필사노트를 만들었다는 기획의도를 밝힌다.


필사할 텍스트는 오랫동안 가까이에 두고 있는 침묵에 관한 책으로 세 권을 엄선해 보았다.


1. < 침묵의 세계 >  |  막스 피카르트  |  최승자 옮김  |  까치

2. < 침묵의 언어 >  |  에드워드 홀  |  최효선 옮김  |  한길사

3. < 무탄트 메시지 >   |  말로 모건  |  류시화 옮김  |  정신세계사




침묵이란

그저 인간이 말하지 않음으로써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침묵은 단순한 말의 포기 그 이상의 것이며, 단순히 자기 마음에 들면 스스로 옮아갈 수 있는 어떤 상태 그 이상의 것이다.

말이 끝나는 곳에서 침묵은 시작된다. 그러나 말이 끝나기 때문에 침묵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그때 비로소 분명해진다는 것뿐이다.


침묵은 하나의 독자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침묵은 말의 중단과 동일한 것이 아니며, 그것은 결코 말로부터 분해되어 나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독립된 전체이며, 자기 자신으로 인하여 존립하는 어떤 것이다. 침묵은 말과 마찬가지로 생산적이며, 침묵은 말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형성한다. 다만 그 정도가 다를 뿐이다.

침묵은 인간의 근본 구조에 속한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독자가 어떤 "침묵의 세계관"으로 끌려간다거나 독자가 말을 경시하도록 미혹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을 진정한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침묵이 아니라 말이다. 말은 침묵에 대해서 우월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말은 침묵과의 관련을 잃으면 위축되고 만다. 따라서 오늘날 은폐되어 있는 침묵의 세계는 다시 분명하게 드러내어져야 한다. 침묵을 위해서가 아니라 말을 위해서.


사람들은 아마도 침묵에 대하여 무엇인가 말로써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랄지도 모른다. 그러나 놀라는 것은 다만 침묵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무로써 이해할 때뿐이다. 그러나 침묵은 "존재"이자 하나의 실체이며, 말이란 모든 실체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말과 침묵은 서로에게 속해 있다. 말을 침묵에 관하여 알고 있고, 마찬가지로 침묵은 말에 관하여 알고 있다.


-막스 피카르트 | <침묵의 세계> (17-18쪽)




댓글 미사용

침묵에 대한 내용이니만큼 이 연재브런치북에서는 댓글 기능을 사용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렇게 해보는 것으로 침묵과 말에 대한 실제적인 차이를 느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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