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가 흔하게 마주치는 꽃인데도 그 이름을 알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모르고 살았던 꽃 이름 하나를 알게 되었다. 부겐빌레아. 이 꽃이 나의 관심을 끌었던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꽃잎이 종잇장처럼 얇다는 것, 두 번째는 핀 꽃 안에서 작고 더 꽃 같아 보이는 확실한 꽃이 또 피는 것이다.
부겐빌레아의 꽃말은 '정열, 조화'라고 한다. 한나 작가님의 글을 <작가님 글도 좋아요!>에 모시면서 준비한 꽃은 부겐빌레아다. 한나 작가님을 잘 모르긴 하지만 프로필 이미지에 보이는 모습은 나의 절반 밖에 안 되는 느낌으로 여리여리하시다. 브런치 페이지의 느낌도 각종 장르의 노래와 속도감 빠른 영상과 길고 긴 글과 쉼 없는 질주의 아우토반 같은 내 브런치와는 완전히 반대편에 있는 듯한 조용하고 차분한 오솔길 감성이다. 그런 작가님에게서 종잇장 같이 얇은 꽃에서 또 다른 꽃을 피워내는 부겐빌레아의 모습을 살짝 엿보았다. 이 페이지 맨 아래에 사용하려고 만들어둔 핫핑크의 bottom이미지조차 작가님의 색깔에 비해 너무 튀는 것 같아 그린으로 바꾸었다.
나눔, 욕망을 전환시키는 더 높은 차원의 행동
한나 작가님의 첫 책 준비 글이 나에게 큰 인상으로 다가온 두 번째 이유는 나도 지금 책을 준비 중이고, 아직 공개적으로 말한 적 없이 조심스럽게 준비하고 있었는데, 작가님이 용감하게 전 과정을 기록하며 모든 것을 나누고 있는 모습이 나에게는 작가님이 쓰신 "욕망을 전환시키는 더 높은 차원의 행동"으로 보였고, 나도 내 안에 매몰되어 있었던 1차 작업을 마친 시점에서 어떤 방식으로 다음 장을 만들어가야 할지에 대한 현실적이고 방법적인 고민을 하게 했다. 책에 나와있는 출간 준비나 출간 후 마케팅 방법, 이렇게 해야 성공한다! 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 보다 충만할 수 있는 나만의 나눔의 과정을 그려보게 했다.
아직 봄은 오지 않았다
어떤 중요한 일을 진행할 때나 예술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십여 년 전, 학교 준비 모임을 하면서 무척 힘든 상황에서 교사 회의를 하는 자리였다. 당시에 1학년 담임을 맡게 된 선생님은 연배가 위거나 아래거나 누구의 말이든 잘 들어주는 특유의 친밀감과 넉넉한 품이 매력적인 분이었고, 사람들은 그분을 든든하게 여기고는 저마다 그 선생님께 자신의 힘듦이나 공동체 구성원들 중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의 말 까지도 서슴없이 했던 것 같다. 나도 그랬다.
교사 회의나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다들 책에 나올법한 멋진 말을 인용하면서 혁명가처럼, 선구자처럼 그럴듯하게 말했지만, 뒤에서는 각자가 힘든 감정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서 말들이 난무했고, 그 말들이 서로에게 부메랑이 되어 상처를 입혔고, 아니라도 일이 많고 힘든데 감정까지 힘들어지니 일이 더 힘들게 여겨지던 차였다.
한 번은 늦은 밤, 장시간의 회의 끝에 마지막으로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하고 마치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늦게 마치고 내일 아침 일찍 또 이 자리에서 아침 열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불만이 가득 차 있었지만, 각자 또 준비된 멋진 말들을 하며 파이팅을 남발하고 있었다. 그때, 곰처럼 덩치가 크고 바위같이 꿈쩍도 안 하면서 모든 말을 다 흡수하듯이 들어주던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무겁게 입을 떼셨다.
"아직...... 봄은...... 오지 않았다."
짧고 명료한 그 문장은 감정을 억압하고 있었던 우리 모두에게 따끔한 죽비로 큰 울림을 주었다.
봄이 지나고 여름으로 향하지만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고 여겨질 때, 감정을 돌아본다. 감정이 꽃필 때 진짜 봄이 온다. 글을 쓰든 책을 쓰든 무엇을 하든, 얼어붙은 우리의 마음을 녹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