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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삭의 시간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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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오렌 Jul 28. 2024

튼튼한 발을 위한 기도

-<삭의 시간> 13화. feat. Singin' in the Rain

얼마 걷지도 않아서 발바닥이 찌르듯이 아파왔다. 발을 내려다보니 잔가시들이 수없이 박혀 있었다. 손으로 가시들을 뽑아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한 걸음도 못 가서 금방 더 많은 가시가 박혔다. 나는 한 걸음 내디딘 뒤 왼쪽 발의 가시를 뽑고, 또 한 걸음 내딛고 오른쪽 발의 가시를 뽑느라 거의 깡충거리다시피 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 내 모습이 부족 사람들 눈에는 우스꽝스럽게 보인 모양이었다. 모두가 나를 돌아보며 이까지 드러내고 웃었다. 마침내 보다 못한 오타가 걸음을 멈추고 내가 다가갈 때까지 기다렸다. 그는 아까보다 훨씬 동정 어린 얼굴로 말했다.

"아픔에 대해선 잊어버려요. 가시는 이따가 야영할 때 빼내시고요.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세요. 발은 나중에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지금은 그래 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

사실 나는 지난 15년 동안 수많은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에게 방금 오타가 한 것과 똑같은 말을 했었다.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세요

물론 그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모두가 철저한 침묵 속에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한 사람도 입을 열지 않았다. 나로선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모래는 그다지 뜨겁지 않았다. 그저 따뜻한 정도였다. 햇볕도 따갑긴 했지만 참을 수 없을 만큼은 아니었다. 세상이 내게 동정을 베풀기라도 하듯 가끔 시원한 산들바람이 불어오기까지 했다.

나만 제외하고 부족 전체가 방향을 감지하는 어떤 특별한 능력을 가진 듯했다. 그들이 전에도 여러 번 이 길을 지나간 적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어떤 정해진 길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 아닌 건 분명했다. 모래밭과 가시풀밭 사이로 사막을 이리저리 방랑하고 있을 뿐이었다.

내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침묵을 지키고 있으니까 생각이 한 주제에서 다른 주제로 건너뛰는 것을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늙은 여인 하나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아흔 살이 넘은 우리 할머니만큼 늙어 보였다. 머리는 흰 눈이 내린 것처럼 하얗고, 얼굴에는 주름살이 가득했다. 몸은 말랐어도 강인해 보이고 동작이 유연했다. 하지만 발바닥은 어찌나 딱딱하고 단단한지 마치 동물 발굽처럼 변해 있었다.

그녀가 내 발을 가리켰다. 나는 도움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내 앞에 앉더니 내 발을 자기 무릎에 올려놓고 부어오른 부위에 연고를 발랐다. 그리고는 나지막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엄마가 아기를 위해 불러 주는 자장가처럼 부드럽고 편안한 가락이었다.

나는 오타에게 그 뜻을 물었다. 오타가 설명했다.

"이 할머니는 지금 당신의 발한테 미안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두 발에게 얼마나 고마워하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함께 모인 우리들 모두가 당신의 발에 얼마나 감사해하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발에게 어서 빨리 나아서 튼튼해지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지금 당신의 발에 난 상처를 치료하는 특별한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또한 상처 속의 고름을 뽑아내는 소리도 내고 있습니다. 당신의 발이 아주 강하고 튼튼해지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상상하지도 않았던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화끈거리고 쑤시고 쓰라리던 상처들이 정말로 가라앉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차츰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노인의 무릎에 발을 올려놓고 앉아 있으니, 오늘 경험한 모든 일이 꿈같이 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