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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Jul 21. 2024

침묵의 잉태

-<삭의 시간> 12화. 



<삭의 시간> 오늘 글은 조금 다른 형태를 가지고 왔다.



김별 작가님 연재 브런치북 <마이 브런치 다이어리> 스물두 번째 글. 브런치 밑줄 그으며 읽기(4)에 내 글 몇 편을 소개해 주셨고, 오래전에 쓴 한 글을 읽어보면서 지금 연재하고 있는 내 연재 브런치북 <삭의 시간> 침묵에 대한 글의 시작이 그때에 원천을 두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되었던 삶의 어느 모퉁이에서, 인내하고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감정 노동의 치열한 현장에서, 수많은 오해와 갈등이 얽히고설켜 인생의 핵심적인 질문들이 잉태한 귀한 시. 공간으로 돌아가 볼 수 있었다.





다음 열 편의 글은 분식집에서 김밥 이모로 일할 때의 에피소드를 기록한 것이다. 

주 6일, 하루 열두 시간을 매대 앞에 서서 김밥을 싸고 순대를 썰고, 튀김 언니가 자리를 비울 땐 튀김이나 어묵, 떡볶이, 만두를 판매하는 일이었다. 때때로 고무장갑을 끼고 목소리 높여야 하는 일도 하루 일에서 빠지지 않는 장면이었다.



사람들은 이런 일을 단순 노동이라고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결코 단순하지 않다. 신속정확하게 몸을 움직이고 차질이 없이 주문을 처리하는 일련의 프로세스는 대단한 집중력과 탁월함을 요구한다. 



많은 손님들이 여러 가지 메뉴를 주문하는 복잡한 상황에서 당황하게 되면 몸과 마음이 분열되고 동시동작에 착오가 생겨서 버벅거리기 일쑤다. 반대로 반복을 통해 숙련된 몸과 마음이 정확하게 기능을 할 때 가속이 붙어서 점점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가 되면서 리듬감이 부여되어 음악적인 단계를 경험하게 된다.



특히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었던 대목은 협업인데, 내가 맡은 파트의 메뉴가 갑자기 주문이 대량으로 들어왔을 때 어떤 동료가 다가와서는 서로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동작으로만 재빨리 일을 처리할 때 느끼는 감정이었다. 말없이 자리를 바꾸기도 하고 가까운 거리에서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고 서로 최대한 배려하면서 신속정확하게 일을 해내는 성취감은 세포가 살아 움직이는 생동을 느끼게 했다.



동료에 대한 신뢰감, 함께하는 연대감, 척척 손발이 맞는 능숙함, 그 움직임을 경험하면서 움직임 속에는 말 이상의 더 고차적인 호흡의 가능성을 느끼게 했다. 'WE CAN BE ONE...'        



이곳에서 가장 큰 수확이라 생각되는 것은 사람 풍경을 관찰한 것이다.

음식과 돈을 매개로 모인 7명의 사람들 속에서 퇴행적 가족 구조의 병리적 심리를 때로는 심각하게, 때로는 분노하며, 때로는 재미있게 경험하고 관찰했다.



휘몰아치듯이 바쁠 때, 손님이 별로 없는 따분한 오후에, 다양한 사람들의 표정과 말과 행동을 관찰했다. 

특히 그 동네에 있는 정신지체 재활 시설 때문인지 손님들 중에 정신적. 육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많았는데 덕분에 그들을 주시하면서 사람에 대한 질문과 학문에 대한 갈망이 더 깊어진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나를 "김밥아!"라고 불러서 내 마음의 분노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보게 해 준 춘애 이모. 

프로이트의 '항문기적 성격 장애'에 대해 더 깊이 연구해보고 싶도록 만든, 항상 미루고 투덜거리던 만두 사장. 

모든 사람의 일에 개입해서 자기 일처럼 열심히인 까닭에 누구보다 빨리 지쳐버리던 애영 언니. 

그곳에서 '침묵의 언어'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사람들이 곤란을 겪는 이유는 그들이 또 다른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에 지배되기도 한다는 사실, 즉 시간은 언어처럼 기능할 뿐만 아니라 언어와 독립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는 점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의사전달이 비공식적인 어휘로도 표현된다는 사실은 쌍방이 실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게 만듦으로써 사태를 더욱 곤란하게 만든다.


그들은 당면한 사태에 관해 각자 생각하고 느끼는 바를 말할 수 있을 따름이다.
서로를 해치는 바는 사태 그 자체라기보다는 서로 간에 주고받는 생각인 것이다.


- 에드워드 홀, <침묵의 언어> 중에서




한때, 내 곁에 머물렀던 동료들은 내가 그동안 공부하고 경험했던 앎을 삶의 한가운데로 나아가도록 이끌어준 사람들이었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부처'라고 했던 말은 이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그 분식집 부처들과 뜨겁게 악수를 하고 돌아선 내 안의 부처에게 백만 불짜리 미소를 띄운다.





침묵의 잉태, 변형






댓글 미사용

연재브런치북 <삭의 시간>은 침묵에 대한 내용이니만큼 댓글 기능을 사용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렇게 해보는 것으로 침묵과 말에 대한 실제적인 차이를 느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낙산중창단 | 영산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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