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의 시간> 11화.
이 우주 안의 모든 것은 저마다 존재 이유를 갖고 있다.
일시적인 변덕이나 부적합한 일, 우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인간의 머리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을 뿐이다.
"당신은 덤불 파리가 해롭고 나쁜 존재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 결과 당신한테는 그것들이 해롭고 나쁜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당신의 이해와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파리는 실제로는 꼭 필요하고 이로운 생물입니다. 파리는 우리의 귓속으로 기어들어가, 우리가 밤에 잠자는 동안 귓속에 들어간 모래와 귀지를 없애 줍니다. 우리 청각이 완벽한 걸 아시지요? 그래서 그렇습니다. 파리는 우리 코 속으로 들어가 콧구멍도 깨끗이 청소해 줍니다."
"당신은 우리처럼 커다란 들창코가 아니라, 아주 작은 콧구멍을 갖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날씨가 훨씬 무더울 텐데, 코 안이 청결하지 않으면 심한 고통을 받게 됩니다. 수분이 빠져 달아나고 몸속이 열기로 가득 차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중에서 콧구멍을 가장 깨끗하게 할 필요가 있는 사람은 바로 당신입니다. 파리들은 우리 몸에 달라붙어 구석구석을 기어 다니면서 우리 몸에서 나오는 노폐물을 없애줍니다."
"우리의 피부가 얼마나 부드럽고 매끄러운지 보십시오. 그리고 당신 피부를 한번 보세요. 우리는 단지 걸어 다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피부색이 변하는 사람을 당신 말고는 본 적이 없습니다. 당신은 처음 우리한테 왔을 때는 하얀색이었다가, 다음엔 새 빨게 졌고, 지금은 수분이 다 빠져서 쪼그라들고 있습니다. 당신은 날마다 점점 작아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뱀이 허물을 벗듯 모래 위에 피부를 남겨 놓는 사람을 여태껏 본 적이 없습니다. 당신이 피부를 깨끗이 하려면 파리가 필요합니다. 또한 우리는 어느 날은 파리가 알을 낳은 장소로 가서 한 끼 식사를 제공받게 될 것입니다."
"불유쾌하다는 이유만으로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모조리 없애버린다면, 인간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파리가 오면 우리는 몸을 내맡깁니다. 당신도 이제는 그렇게 할 준비가 되어 있겠지요?"
다음번에 멀리서 덤불 파리들이 날아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얼른 허리에서 머리띠를 풀어 준비 태세를 갖췄지만, 마침내 동료 여행자들이 가르쳐 준 대로 자신을 내맡길 수 있을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윽고 파리들이 몰려왔고, 나는 떠났다. 몸만 사막에 남겨 둔 채, 마음은 뉴욕으로 갔다. 나는 아주 고급스러운 미용실로 갔다. 그리고는 두 눈을 꼭 감고 누군가가 내 귀와 콧구멍을 청소해 주는 것을 느꼈다. 숙련된 미용사의 면허증이 벽에 걸려 있는 것까지 상상했다. 수백 개의 작은 면봉이 내 몸 구석구석을 청소해 주고 있었다. 마침내 파리들이 떠나고, 내 마음은 뉴욕에서 호주의 오지로 되돌아왔다. 그 말이 사실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는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해결책일 수가 있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는 어떤 것의 진정한 존재 이유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무조건 나쁘다거나 힘들다고 평가한 적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 것이 파리 말고 또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거울이 없는 것이 내 의식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마치 밖을 내다보는 두 눈만 생생하게 살아 있는 기분이었다. 언제나 밖을 내다보고, 다른 사람들은 바라보고, 그들이 내가 한 말과 행동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관찰했다.
생애 최초로 내 삶이 완벽하게 정직해진 것을 느꼈다. 무엇보다 나는 업계에서 나 같은 여자라면 당연히 입어야 할 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 화장도 하지 않았다. 콧등은 지금까지 열두 번도 더 껍질이 벗겨졌다. 남의 관심을 끌기 위해 위장하거나 가식을 부릴 필요도 없었고 또 그럴 만한 에고도 사라졌다. 이 부족 사람들 속에는 남에 대해 험담을 늘어놓거나 다른 누군가를 이기려고 애쓰는 사람도 없었다.
나를 깜짝 놀라 현실로 되돌아오게 만들 거울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나 자신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었다. 분명 아름답지 않을 텐데도 나는 자신을 아름답다고 느꼈다. 부족 사람들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었다. 그들 덕분에 나는 내가 그들과 하나이며, 동시에 이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이고 훌륭한 인간임을 느낄 수 있었다. 나 자신이 타인에게 아무 편견 없이 받아들여지는 기분이 어떤 것인가를 경험하고 있었다.
나는 모래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어린 시절에 읽은 <백설공주>의 한 구절이 머릿속에서 메아리쳤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지?
9. 몸 청소 (99-106쪽 요약)
<무탄트 메시지> -호주 원주민 '참사람 부족'이 문명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말로 모건 지음 | 류시화 옮김
정신세계사
연재브런치북 <삭의 시간>은 침묵에 대한 내용이니만큼 댓글 기능을 사용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렇게 해보는 것으로 침묵과 말에 대한 실제적인 차이를 느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낙산중창단 | 스핑크스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