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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Aug 12. 2024

연습, 한번 더 믿어보는 마음

-<재생의 욕조> 9화.




내가 좋아하는 두 친구가 있다.

유리드미를 하면서 동고동락했던 친구들이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땀을 흘리면서 몸을 부대끼고, 때로 넘어지거나 부상을 입기까지하며 강도높은 트레이닝을 같이 했던 친구들이라 깊은 정이 들어서, 이제 같이 뭔가 하지 않고 지역적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지만, 일년에 한두 번은 만나면서 서로의 안위와 성장을 확인하고 지지하는 친구들이다.



한 명은 피아노를 꾸준히 해서 쇼팽을 치고 있고, 한 명은 바이올린을 꾸준히 해서 시에서 하는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유리드미를 할 때는 전혀 못했던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수준급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만날 때마다 놀라곤 한다.

불가능한 외부의 동경을 가능한 내 안의 기능으로 탑재하게 하는 꾸준한 연습의 힘.

스포츠도 그렇고, 예술도 그렇고, 우리가 함께했던 유리드미도 무엇보다 그것이 핵심이다.



반복. 연습. 훈련. 공부. 연마. 습득. 이해...

절대 안될 것 같고, 부족하고, 한계에 부딪힌 나를 인정하고 한번 더 해보려는 의지,

지난번 보다 더 나아지려는 희망,

되고자 하는 것이 되려는 열망,

목표에 도달하려는 결기,

극복하고자 하는 투지,

한번 더 나를 믿어보는 용기,

그럼으로써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

내가 아는 사랑의 모습이다.



연필로 스케치를 하면서 구체적인 설계를 하고 채색을 해서 완성을 하는 그림도 그리지만, 더 선호하는 그림은 붓 가는 대로 그리는 것이다.

파랑이든 노랑이든 빨강이든 마음 가는 대로 물감을 붓에 찍어서 화면 가운데든 귀퉁이든 떨어뜨리듯이 찍으면 그 점을 따라 붓이 움직이게 되어있다.

점은 점으로 남을 수도 있지만, 점이 움직이면 선이 되고 면이 되고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가능하면 만들어진 색보다 빨강, 파랑, 노랑만 사용한다. 색들이 서로 섞여서 만들어내는 색채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점을 가만히 두지 않고 움직임을 가하면 무언가가 되어간다.

움직인 점은, 색은 반드시 무언가가 되어 점으로, 한 가지 색으로 존재할 때는 느낄 없었던 감정과 기억과 이야기를 들려준다.



직업적으로든 취미로든 오랜 세월 그림을 그렸다.

가끔씩 폴더를 들여다보면서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처음 그린 그림인 줄 알았는데 수년 전, 수십 년 전에 그린 그림과 소재나 구도, 색상이 거의 동일한 그림들이 발견된다. 그림을 그리던 당시의 나는 의식적으로 인지하지 못했지만, 잊고 있었던 무의식의 바다 깊숙한 곳에 하나의 이미지로, 뇌의 어느 영역 주름 사이에 하나의 세포로 저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우울할 때, 쓸쓸할 때, 고독할 때, 외로울 때, 허전할 때, 막막할 때, 멍할 때, 바보 같을 때, 한심할 때, 추울 때, 더울 때, 비 올 때, 바람불 때,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을 때... 그림을 그린다.

의식적인 나는 상태가 안 좋을 때라도 무의식의 나는 틀림없이 어떤 가능성들을 연결해 낸다.



야, 너 옛날에 이런 거도 그렸잖아.
이런 거 좋아했잖아.
너 이거 잘하잖아.
한번 더 해 봐.
틀림없이 더 나아진다고.



그림을 그렇게 좋아하나? 잘 그리나? 하고 싶은가? 그림에 전망이 있나?

그런건 잘 모르겠다.

좋아하거나, 잘하거나, 하고 싶거나, 전망이 있어서가 아니라,

다른 걸 하고 싶었는데,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럴 때 마다 늘 내 옆에 있었던 게 그림이어서, 그림 밖에 할 수 있는게 없어서, 그래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그릴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오랜 친구, 그림에게는 미안하지만 솔직한 말이다.



내가 이렇게 이 말, 저 말, 아무 말... 떠들어 대도, 그림은 한번도 억울해하지 않고 그러려니 묵묵히 있다가, 자기의 시간이 오면 씩씩하게 나타나서 놀아준다.



무의식의 바다 깊은 곳에 보석들이 많이 있다.

그 보석들은 한번 더 시도하고, 또 해보고, 계속해보고, 한번 더 믿어보고, 더 굳게 믿을 때,

마침내 수면 위로 떠올라 빛을 발한다.

누가 가진 보석과도 같지 않은 나만의 것이다.

보석의 이름을 '나다움'이라고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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