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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Aug 24. 2024

12개의 창문 열기

-<사랑의 학교> 16화. <무지개 유치원>



어드벤트 캘린더 (Advent Calender) 


크리스마스 전, 4주간의 대림시기 동안 매일 창문을 하나씩 열어보며 기쁜 마음으로 성탄을 기다린다. 

현대로 오면서 초콜릿, 장난감, 화장품, 자동차 회사 등 기업에서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집이 아닌 다양한 형태의 디자인으로 분화되었지만, 전통적으로 어드벤트 캘린더는 집 모양에 창문을 여는 형식이다.






집 (House)과 몸(Body)


아이가 최초로 그린 집을 보면 시대와 국가에 상관없이 같은 형태라는 것이 관찰된다. 

네모난 1층 집에 박공 지붕, 십자 모양의 창살이 있는 창문, 굴뚝이 있는 동일한 모양이다. 

이는 각 나라에 해당하는 문화나 현 시대에 맞는 디자인이 반영된 모습이 아니다.

칼 융의 용어로 말하자면 개인 무의식의한 그림이 아닌, 집단 무의식에서 나온 원형적인 이미지를 그린 것이다.

010110101100101 과 같은 숫자를 그릴 때는 폐가 형성되는 경험을, 기차길 모양을 그릴 때는 갈비뼈가 자라는 경험을, 왕관을 그릴 때는 어금니가 자라는 경험을, 즉 드로잉은 신체의 발달의 표현이라고 보았다.

7세 이전 아이에게 드로잉은 의지적인 활동으로, 형태를 못 그린다고 걱정하거나 특히, 그림을 가르치는 것은 해서는 안되는 일로 생각했다. 7세 이전의 아이의 드로잉은 아이가 하고 싶다고 할 때, 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 그리고 신체의 발달을 관찰하고 돕는 것으로 연결되어져야 한다.



안과 밖 (In and Out)


몸을 집으로 비유했을 때, 문은 안과 밖을 연결하는 경계이자 감각기관을 상징하고 감각기관은 외부 세계를 경험하는 도구이다. 

불교에서는 안이비설신의,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을 통해 경험하고 느껴지는 색성향미촉법으로 인한 의식의 깨어남을 말하고, 피타고라스는 인간의 감각기관들이 우주의 질서를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면 감각기관을 통해 외부 세계를 경험하면서 자기 우주의 질서를 형성하게 된다는 말이다. 

외부 세계에 무언가를 향해 나아갈 때, 동시에 그 무엇도 나를 향해 다가온다.

내가 세상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갈 때, 세상도 나에게 한걸음 다가온다.

영혼의 귀를 열고 마음으로 들을 때, 모든 감각기관은 거룩한 스승이 된다.



12개의 창문


12개의 창문이란, 촉각, 생명감각, 고유감각, 운동감각, 후각, 미각, 시각, 열감각, 청각, 언어감각, 사고감각, 자아감각으로 발도르프 교육의 창시자 루돌프 슈타이너가 말한 12개의 감각을 뜻한다.

각각의 감각을 창문에 비유하여 창문을 깨끗이 잘 닦는 것으로 집 안에서 바깥의 풍경이 잘 보이고, 바깥의 공기가 집 안으로 잘 순환되듯이, 감각을 잘 계발하는 것으로 조화로운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12 감각론은 이 페이지에서 다루기에는 매우 심오하고 방대한 분야이므로 책소개만 한다.

<영혼을 깨우는 12감각> -알베르트 수스만 지음. 서영숙 옮김. 섬돌






창문 열기


유치원에서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커다란 종이에 아이들이 다 같이 드로잉과 페인팅을 해서 그림을 그리고, 그림 아래에 선생님들이 그린 그림을 덪붙여서 숨겨두는 형태로 어드벤트 캘린더를 만들었다. 

매일의 링타임(둥글게 앉아서 다같이 노래하는 시간) 때 창문열기를 하면서 크리스마스를 기다렸다. 

숨겨둔 선물 그림은 산타와 루돌프, 트리와 케이크 같이 크리스마스의 상징적인 이미지로 크기가 큰 그림도 있었고, 사과나 양말처럼 크기도 작고 단순한 그림도 있었다. 

처음 아이들과 창문열기를 할 때는 큰 창문을 열어서 크고 좋은 그림들이 나오면 좋아하고, 작은 창문을 열었을 때 작고 마음에 안 드는 그림이 나오면 실망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웬걸? 놀랍게도 아무리 작고 단순한 그림이 나와도 누구도 실망하지 않고, 모두 자신의 창문에서 나온 그림을 보고 얼굴이 환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에 십수년 만에 기절초풍할만한 반전 사건이 일어났다.) 



오르골의 비밀


지금 스물두 살인 딸이 당시 내가 교사로 일했던 유치원에 다녔는데, 최근에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딸은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그 당시에 해마다 크리스마스 선물이 오르골이라서 정말 싫었고, 나중에는 무섭기까지 했다는 것이었다!

크리스마스 행사 준비로 너무 바쁜 나머지 아이의 선물을 급하게 준비할 수 밖에 없었고, 마트에서 파는 플라스틱 인형이나 소꿉이 아닌, 기성품이지만 감성적인 놀잇감을 구한답시고 오르골을 산 것 같은데, 해마다 오르골을 샀다는 믿을 수 없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겨우 여섯, 일곱살 된 아이가 엄마가 실망할까봐 기뻐하는 척을 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듣고 뒷목잡고 쓰러질뻔 했다. 

더 심각한 것은, 나는 집에 오르골이 많은 것이 단지 내가 좋아해서 수집했다고 생각했지, 아이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줄기차게 오르골을 샀다는 것은 잊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딸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빙자해서 나의 결핍을 채우고 있었던 것일까? 딸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개봉하면서, '또 오르골이라서 정말 싫고 무섭기 까지 했다'는 농담 같은 표현은 농담이 아니었던 것이다!





진실의 방


말이 나온김에 딸은 친구들의 진실 까지 알려주었다. 

당시에 발도르프 인형을 닮았다고 모두 귀여워했던 한 남자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의 엄마가 바쁜 선생님들을 대신해서 수공예 쪽으로 부모교육도 하고 다방면으로 재능이 뛰어난 분이었는데, 손수 만든 토시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었고, 선물을 개봉한 아이가 대성통곡을 했다는 것이었다. 너무 싫어서! 

또 딸과 제일 친했던 여자 아이도 엄마가 만들어준 뜨게 필통이나 크레파스 대신 마트에서 파는 플라스틱 인형을 갖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했다.

그 사실을 몰랐던 우리는 역시 엄마가 손수 만든 감성적인 선물이 아이의 정서에 좋다고 졸린 눈을 비벼가며 바느질 삼매경이었는데... 무엇이 진실이란 말인가?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진실은, 손수 만든 선물이냐, 마트에서 산 플라스틱 장난감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문제라는 결론이다.

'진짜 감정'이 무엇인가? 말이다.



모든 문제는 우리의 의식과 육체가 온전한 일체감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

바쁘고 힘들어 죽겠다는 불만 가득한 상태에서 좋은거니까 한다는 마음도 분명 있었을거고, 이왕 시작한거 이만큼 투자했으니 중단할 수 없다는 아집도 있었을 것이다. 마음이 망가진 상태에서 급하게 산 오르골, 그 예쁘고 비싸고 아름다운 소리가 실망스럽고 괴기스러워진 것은... 



그래서 뭐? 발도르프 교육이 안 좋다는 결론인가? 그건 아니다.

발도르프 유치원에서 유년의 크리스마스를 보내며 실망스러운 오르골 중복 선물을 받고, 어른들의 기쁨을 위해 십 수년간 비밀에 붙인 딸, 그 모든 복잡다단한 구체성을 이토록 임팩트있고 재미나게 회고하며 "다~ 좋은 추억이었다!"고 이야기하는 속 깊은 아이로 자랐으니 말이다.













어드벤트 캘린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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