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유치원> 15화.
발도르프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만날 때, 봄에는 부활을, 겨울에는 크리스마스를, 사계절마다 소풍을,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일을, 늘 축제를 준비하고 기다리며 환경을 꾸미고 선물을 만들었다.
크리스마스가 이제 서른 밤 남았어.
산타 할아버지가 오시려면 이제 스무밤 자야 해.
이제 열 밤만 자면 루돌프가 올 거야.
일곱밤 자면 선물을 받겠네.
하룻밤만 있으면 아기 예수님이 오시는 날이야.
아이들은 이야기를 듣고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면서 산타 할아버지와 루돌프와 선물과 아기 예수님을 기쁘게 기다렸다.
유치원에서 여러 해 동안 크리스마스를 보내면서 수많은 에피소드가 있지만, 잊을 수 없는 이야기 하나를 소개한다.
크리스마스 파티와 더불어 학기를 마치고 겨울 방학에 들어갔으므로 크리스마스 파티 전 날은 할 일이 매우 많았다. 한 학기 동안의 작업물과 여벌 옷 등 방학을 맞이해서 집에 보낼 아이들 물품들도 착오 없이 개인별로 챙겨둬야 했고, 부모님을 초대하는 자리이니만큼 노래나 율동, 인형극, 이야기 같은 공연 준비며, 케이크, 떡, 차 등의 다과 준비와 크리스마스트리 장식까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학기 말이 되면 방학이 없으면 도저히 못하겠다 싶을 만큼 몹시 힘이 들었다. 경험이 짧은 젊은 선생님들은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편두통, 위염, 디스크 등등의 통증을 호소하며 쉴 수도 없는 조건에서 약을 달고 살았다. 당시에는 일이 너무 많아서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소통에 실패한, 해소되지 못한 불만스러운 말, 부정적인 생각의 기운이 독성처럼 피부 깊숙이 스며들어 감정을 교란시키고 몸을 무겁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의 사건 당일, 야근 수당이 따로 없는 근무 조건에서 연일 야근을 하던 선생님들이 불만을 토로하며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고 있었다. 그때 선생님들 수고한다고 간식을 사서 교실로 들어오시던 학교 대표 교사 선생님이 입구에서 그 불만의 말들을 듣게 되었고, 선생님은 교실로 들어와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엄중하게 꾸짖었다.
이곳에 예수님이 오실까요?
그 상황이 너무나 드라마틱했으므로 이후의 삶에서 여러 번 생각이 났다.
이 대사는 이후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살아가면서 가끔씩 떠올라 나의 말과 행동을, 선택과 판단을 돌아보게 했다. 예상하지 못한 기습적인 상황에 놀란 것과 교사라는 신분으로 뒷말을 하면서 일을 하고 있었던 것에 대한 수치심으로 누구도 대꾸를 하지 못했고, 뒷말을 한 사람들이 잘못한 것처럼 끝난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들어도 못 들은 척하면서
선생님들 늦은 시간에 수고 많으십니다
하고 간식을 내려놓고 가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옳은 일이 아님을 알면서도 뒷말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도, 힘든 조건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한번 더 이해하고 품어주지 못한 사람도 모두 각자 힘들어서, 힘이 없어서였다는 생각을 해본다.
뭔가 습관적으로 일을 하다가 문득 생각하게 된다.
이곳에 예수님이 오실까?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다고 하실까?
천사의 말을 하는 사람도 사랑 없이는 소용이 없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12일의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