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학교> 14화. <무지개 유치원> 아동 관찰
유치원에서 있었던 중요한 일들 중에 빼놓을 수 없는 '말 일기'가 생각났다.
과목 이름으로는 child study, child observation '아동관찰'이지만, 일상적으로는 '말 일기'라고 불렀다.
아이들이 하원을 한 후 청소를 하고, 다음 날 활동 준비를 해놓고, 마지막으로 '말 일기'를 썼다.
그날 아이가 한 말 중 기억해주고 싶은 인상적인 말을 기록하는 일지로, 기본적으로 아이의 말을 쓰고, 여백에 아이의 모습이나 연상되는 사물 등의 그림을 그려 넣기도 하고, 노랫말이나 시를 써넣기도 했고, 주기적으로 아이의 활동하는 사진이나 작품을 찍은 사진을 출력해서 붙였다.
한 해가 지나면 말이 쌓여서 두께를 이루어 한 권의 수제 그림책이 만들어졌고, 이 '말 일기'를 그 해의 마지막 날 선물로 주었다. 자신의 사진이 붙어있는 그림책이라고 아이들도 좋아했지만, 부모님들이 특히 좋아하셨고, 선생님들이 1년 동안 해온 작업물을 보시고는 다음 해부터 어머니도 자발적으로 아이의 '말 일기'를 쓰게 되는 선순환이 일어났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몹시 지친 상태에서 말 일기를 쓰는 일이 늘 즐겁지만은 않았고, 때로는 밀린 일기 쓰는 기분일 때도 있었지만, 1년 동안 부쩍 자란 아이의 모습을 보면 두껍게 쌓인 '말 일기'의 힘도 보태진 것 같아 뿌듯했기에, 해마다 더 충실해졌고, 뜻하지 않게 교사들의 글과 그림 실력이 늘어가는 유용함도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
'아동 관찰'의 교육적인 목적은 이러하다.
1년간 아이를 있는 그대로 관찰하면 그 아이를 위해서 무엇을 도울 수 있는지를 알게 된다.
발도르프 교육의 창시자 루돌프 슈타이너는 아이를 도우려면 아이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관찰할 것을 제안했고, 이에 앞서 식물 관찰을 먼저 하는 것을 권했다. 사람보다 식물 관찰이 비교적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식물 관찰 등 자연 관찰에 대해 괴테의 텍스트를 공부했다.
'아동 관찰'에 대해 들었던 인상적인 사례 하나를 소개하면 에리카 선생님이라고, 발도르프 유아교사 연수를 해주신 70대의 연로하신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분의 젊었을 때 겪은 일이다.
아주 어려운 아이가 있었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 언어나 신체 발달이 지연되는 아이였고, 특별한 병원 소견이나 원인을 찾지 못해 부모와 선생님들 모두 걱정을 많이 하고 있는 아이였다. 이 아이는 유치원에 오면 늘 문 손잡이에 천을 묶어달라고 해서 하루 종일 그 천을 잡고 흔들면서 놀았고, 선생님이 다른 활동을 유도해도 계속 천 흔들기만 고집했다.
에리카 선생님은 그 아이의 문제가 무엇인지 매우 집중적으로 관찰을 하기 시작했고, 어느 날 아주 우연한 기회로 놀라운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바로 아이가 선생님과 이야기하던 중에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히고 웃는 모습에서 입 천정에 구멍이 꿇린 것을 보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너무나 놀라 아이를 붙잡고 정확하게 다시 한번 확인을 했고, 다른 교사들과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이후에 아이는 수술을 받아 언어와 신체 등의 지체가 정상적으로 회복되었다는 사례였다.
이 이야기를 구두로 들었고, 세월이 지나 디테일을 놓친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사람과 사물, 특히 아이를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으로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알게하는 놀라운 이야기였다.
사랑하는 사람은 보게 된다
입천장에 뚫린 구멍을, 그냥 우연히 보게 되었을 수도 있지만, 에리카 선생님께서 그 아이에 대한 지극한 관심과 사랑으로 지켜보았기 때문에 '보여진'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