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라이너> 17화.
저 산맥은 말도 없이 오천 년을 살았네
모진 바람을 다 이기고 이 터를 지켜왔네
저 강물을 말도 없이 오천 년을 흘렀네
온갖 슬픔을 다 이기고 이 터를 지켜왔네
어젯밤 꿈에 이 노래가 들렸다.
삼엽충과 아르마딜로와 렙토세팔루스와 메타세콰이어와
음식을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몸이 닿기만 하면 도주하는 짚신벌레와
책을 좋아하며 나무 위에서 자칼의 질주를 바라보는 느긋한 나무늘보와
비대칭의 난쟁이와 이빨이 큰 시커먼 원숭이와 먹물을 좋아하는 황금 원숭이와
구두를 신은 깔깔 무당벌레와 몸통이 길쭉한 Go! Go! 호랑이와 철학자 강아지가 불렀다.
아침 무렵의 꿈, 반쯤 잠이 든 상태에서 꾼 꿈, 잊어버렸다가 생각이 난 꿈, 전율스러운 꿈, 초저녁의 꿈, 연결되는 꿈, 발작적인 꿈, 지워지지 않는 꿈, 난폭한 꿈, 흉흉한 꿈, 예술이 된 꿈, 행동하게 하는 꿈, 무시하고 싶은 꿈, 위대한 꿈, 희미한 꿈, 생생한 꿈, 분명 이 꿈, 오래전 꿈, 새벽 2시경의 꿈, 반쯤 잠이 든 상태에서 꾼 꿈, 몽롱한 꿈, 사랑스러운 꿈, 덧없는 꿈, 곧바로 힘이 되는 꿈, 떠오른 꿈, 언젠가의 꿈, 이루어질 꿈,
오렌의 방주를 타고 무의식의 바다를 건너온 내 우주의 수호자들이 다같이 불렀다. 이 장엄한 노래를.
모진 바람을 다 이기고 지켜온 것들,
온갖 슬픔을 다 이기고 지켜온 것들,
결코 빼앗기지 않고
지켜내야 할 것들을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