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학교> 22화. <숏숏롱 댄스 교습실> 3화.
움직임이 가져다주는 가벼움과 밝음에의 변화에 이끌려서, 인지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신비와 호기심으로, 음악과 함께하는 마법적인 기쁨으로, 새롭게 알아가는 학인들과의 우정의 즐거움으로, 한 달에 한번 체험식으로 하던 유리드미 수업은 일주일에 한 번으로, 나중에는 취미반에서 집중반으로, 늪에 발을 딛인 것처럼 점차 빠져들었다.
큰 원을 그렸던 많은 사람들 중 육아와 직업 등 삶의 여러 요소들의 균형을 유지하고자 적정선에서 취미반을 선택한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과 비용과 에너지를 들여서 전체의 프로세스를 밟으며 졸업을 목표로 하는 집중반으로 나누어졌고, 각자 자신의 선택으로부터 얻고 잃는 것을 감안한 채 결단을 내려야 했다.
생활인으로서 쉬운 선택은 아니었지만 나는 결국 마음이 이끄는 대로 집중반을 선택했다. 집중반이란 풀타임 근무를 마치고 저녁을 먹고 나서 연습실로 가는 것, 주말에도 가족들과의 여가를 포기하고 연습실로 가는 것을 의미했다. 연습이 잘 되는 날은 기분이 좋았지만, 연습이 잘 안 되는 날은 마음이 몹시 힘들었다. 사실 연습에 있어서 가장 힘이 든 것은 연습 자체가 아니라 연습을 하러 가는 것, 가는 것을 결심하는 순간이었다.
연습이 제대로 안된 채로 레슨을 받으러 가게 되는 날은 내가 선택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연습을 안 하고도 레슨을 받으러 갈 수 있는 멘탈이 뻔뻔스럽게 여겨지면서, 이런 식으로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생각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괴로움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바위 같이 크고 단단해진 괴로움의 눈덩이는 속도를 내며 굴러내려 와서는 나를 압살 할 듯이 두렵게 했다.
두려움의 눈덩이는 거짓말처럼 녹아내려 맑고 화창해지는데, 그렇게 되는데 기여하는 유일한 방법은 '연습'뿐이었다.
레슨을 마치고 가끔씩 가진 질의응답 시간, 처음에는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질문이 많았다면 가면 갈수록 움직임 자체의 잘 안 되는 부분과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는지... 어떻게 보면 간절하고 어떻게 보면 바보 같은 질문들이 남았다. 결국 선생님들이 강조하시는 말씀은 역시 '연습'이었다. 반복적인 연습만이 모든 질문을 멈추게 했다. 좌절할 때마다 다시 일어서면서 반복적으로 붙잡은 단어는 '연습'이었다. 연습만이 길이 되고, 연습을 멈추면 길이 멈춘다는 사실만이 또렷해질 뿐이었다.
‘연습을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해 『자기 발견을 향한 피아노 연습』에서 세이모어 번스타인이 한 아름답고 힘 있는 조언을 요청하며 연습 예찬을 마친다.
‘가르침을 통해 한 인간이 갖고 있는 최고의 자질을 유인해 내는 것보다 더 뜻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각자의 재능이 곧 한 개인 고유의 개성과 주체성을 이루게 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재능은 우리의 참모습이 무엇인지 나타내 주는 것이며, 자신의 재능을 계발시키면 시킬수록 삶의 다른 모든 부분에서도 더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재능을 계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함으로써 자신과 재능이 서로서로 힘을 보태주도록 함이 바로 음악을 공부하는 진정한 목적이라고 생각된 것이다.
즉 음악을 연습하고 연주하는 것이 자기 수양, 더 나아가 자기완성의 길이 될 수 있다는 중요한 이치를 깨닫게 되었다.
음악과 나 자신의 관계를 깊이 생각할 때마다 나는 언제나 '우주의 질서’라는 동일한 대답을 얻게 된다. 하늘의 별들처럼 창조의 한 부분인 우리는 음악 안에서 우리 자신의 연장을 감지할 수 있으며, 이는 완벽함을 향한 우리 자신의 가능성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 우리는 음악의 언어를 통해 별들과 일체를 이룬다. 음악은 그 조화 속에 만물의 우주적 질서를 축약하고 있어서,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에 싸여 있는 우주의 질서를 직접적으로 터득할 수 있는 경험으로 바꾸게 하기 때문이다.
음악은 이 험한 세상을 향하여 조화를 알려주며, 외로움과 불만을 몰아내 준다.
그 소리는 우리 안에서 진리가 자리 잡고 있는 생각과 느낌의 심오한 곳을 발견하게 해 준다. 우리가 질서와 완벽함으로 충만되어 있는 음악처럼 되고자 한다면, 시간에 구애되지 말고, 음악의 요구에 부응되도록 자신을 높이기 위해서 지속적 노력을 해야 한다.
음악이 어떻게 한 인간의 삶의 방향을 현명하게 지배하며 음악의 타협을 허락하지 않는 철저한 기준이 어떻게 한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을 분별 있게 안내해 주는지, 이 두 가지는 삶의 원칙으로 항상 나와 함께 한다.
음악 안에 있는 ‘절대적인 아름다움’, ‘자신도 한 부분이 될 수 있는 그 아름다움으로부터 힘을 찾아서 모든 것이 파악되는 자신 속의 깊은 영역을 깨달을 때 우리는 이상적인 연주가 -예술적 가치뿐만 아니라 인간적 가치에도 공헌하는 진정한 예술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