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쟁이 짱쓸 Aug 18. 2016

#49. 한 남자와 10년동안 연애하기

'내 처'

연애 10년차라지만 나름 알콩달콩한 신혼을 누리기로 했던 우리는, 결국 얼마 안 가 바쁜 일상으로 흡수됐다.


그는 다시 열심히 본연의 업무에 충실했고, 나 역시도 다시 바쁜 기자의 삶을 시작했다. 짧은 연애 후 결혼이라는 새로운 시작에 설렘을 느끼는 연인들과는 달리, 오랜 연애가 남겨준 익숙함 덕에 우리는 더 빨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너무 오래 함께 해왔던 터라, 결혼 후 혼인신고라는 법적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었다.


"아, 혼인신고 해야지!"


종종 생각이 나긴 했지만 우리는 너무 바빴고, 오래 함께해 온 만큼 함께 사는 것에도 불편함이 없었던 우리는 그 따위(?) 것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 했다.


우리는 그저 계속 해왔던 연애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잠드는 순간에 그가 옆에 있고, 눈을 떴을 때에도 그가 옆에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공식이었다.


결혼 후 1년이 조금 지났을 때 쯤, 마침 구청이 업무 중인 오전 시간대에 그와 함께 있었다. 그래. 기회가 있을 때 얼른 하자. 오늘 놓치면 우린 계속 법적으로 남남이겠구나. 필요한 서류를 챙겨 함께 구청으로 향했다.


주변사람들이 이야기하듯, 혼인신고 절차는 너무너무 간단했다. 부부가 함께 갔을 경우 그 절차는 더욱 간단하단다.


서류를 모두 제출하고 나니, 주민등록등본에 그와 내 이름이 함께 올라와 있다. 그의 이름 아래에는 '처'라는 관계로 내 이름이 적혀있었다.


10년을 함께 했지만, 국가에서 나를 누군가의 처로 지정해주고 나니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그 역시 마찬가지. 책임감이 더 생긴다고 했던가.


그래도 그는 매우 기뻐했다. 우리의 함께한 긴 시간을 인정받는 느낌, 그런게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싱글벙글 웃으며 날 안아줬고, 그 이후로 그는 나를 '내 처'라고 불렀다.


그와 만나며 수많은 애칭이 탄생됐지만, 뭐랄까. 그 중에서도 가장 기분 좋고 가장 무거운 애칭이었다.


앞으로 그의 처로 살아가는 만큼, 더 사랑해줘야 하겠구나. 더 믿음을 줘야 겠구나. 라는 책임감도 생겨났다. 별것 아닐거라 생각한 서류절차에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세상에 하나뿐인 당신의 처, 내 남편이 되었으니, 우리는 조금 더 뜨겁고 아름답게 사랑하기로 했다. 결혼했다고 사랑이 식을 필요는 없으니까.


이 역시 시간이 좀 흐른 일이라 기억이 또렷하진 않지만, 당시 조금은 새로웠던 그 기분은, 지금 다시 되새겨도 좋다.


그가 믿고 사랑하는 단 하나뿐일 수밖에 없는 '처'라는 자부심을 갖고, 난 오늘 더 사랑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48. 한 남자와 10년동안 연애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