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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애 May 15. 2017

늙음에 대하여

  서른두 살에 태권도를 배울 때의 일이다. 어른반이 없어 초등학생들과 함께 배우는 수업에 처음 간 날, 아이들은 ‘누구지?’ 하는 얼굴로 나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나와 동갑인 우리 반 정 사범님은 어색해서인지 내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나를 ‘우리 흰 띠’라고 부르셨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 시작 전에 태권도장에 있는 탈의실에서 도복을 갈아입는 중이었다. 밖에서 어떤 아이가 문을 두드려서 나는 안에서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좀 있다 그 아이가 조급해하자, 우리 반 전 시간을 맡고 있는 강 사범님이 우렁차게 소리쳤다.

  “야! 나와!”

  당장이라도 탈의실 문을 부술 기세였다. 그때 우리 반 정 사범님이 강 사범님을 말리며 안에 내가 있다는 얘기를 한 것 같았다. 그러자 강 사범님은 내가 누구인지 알았다는 듯이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아~ 그 아줌마!”

  아이들이 깔깔대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아줌마 소리를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강 사범님은 오가며 나와 인사만 하는 사이였는데,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여자를 아줌마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흠, 문을 박차고 나가 뭐라고 해야 할까?

  “저 결혼 안 했습니다.”

  “○○ 씨라고 이름을 불러주십시오.”

  “사범님한테 아저씨라고 하면 기분 좋으시겠습니까?”

  모두 아니다. 결국 나는 조용히 문을 열고 나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수업에서 맹렬히 발차기 연습에 매진했다.

  다음 날, 나는 강 사범님의 탈의실 습격이 두려워 도복을 입고 도장으로 향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을 때, 어린 남자아이와 아이 엄마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아이가 내 도복에 쓰여 있는 ‘경희대 태권도’를 보더니 말했다.

  “어, 경희대다. 나도 경희댄데.”

  “응, 누나도 경희대야.”

  아이 엄마가 아이에게 말했다.

  나는 ‘누나’라는 말에 씩 웃고 말았다. 그리고 ‘누나’에 웃고 ‘아줌마’에 우는 나 자신이 재미있어서 또 한 번 슬쩍 웃었다. 그 누구도 나이 듦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늙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 태도는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우리 외할아버지는 올해 아흔한 살이시다. 오랜 교직 생활을 마치고 퇴임하신 할아버지는 팔십이 넘도록 정정하신 편이었다. 나는 재작년과 작년 그리고 올해, 일 년에 한 번씩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뵈러 갔다. 아흔이 넘으시면서 할아버지는 한 해가 갈수록 눈에 띄게 변해가셨다.

  재작년에 어머니와 동생과 같이 할아버지 댁에 갔을 때,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함께 우리가 오기 한참 전부터 집 앞에 나와 서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그리고 우리가 떠날 때도 할아버지는 집 밖까지 나오셔서 우리를 배웅하셨다. 우리가 할아버지를 안아드리자 할아버지는 허허 웃으셨다. 

  지난해에 할아버지를 뵈러 갔을 때, 할아버지는 거동이 불편해지셨고, 방바닥에 앉아 있다가 소파로 올라가시는 것도 힘들어하셨다. 집 밖에 나가는 것도 어려워져서, 우리가 갈 때도 할아버지는 인사만 하고 소파에 앉아 계셨다. 

  올해 우리가 도착했을 때 할아버지는 소파에 누워 계셨다. 거의 앉았다 누웠다만 하셨고, 누워 있을 때는 늘 누군가의 손을 잡고 계셨다. 아내든 딸이든 손녀든 가족의 손을 잡고 있어야 마음이 안정되시는 것 같았다. 몸과 마음이 약해지신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의지해 살아간다. 우리가 먹는 음식과 주위 사람들의 사랑을 비롯해 우리를 받치고 있는 모든 것이 없다면 우리는 무너질 것이다. 우리는 그 모든 것에 의존해 존재하는 현상이다. 바다의 파도처럼 잠시 솟아올라 보였다가, 우리를 떠받치는 조건들이 사라지면 다시 보이지 않게 되는 하나의 현상이다. 그리고 언제나 우리는 거대한 바다와 하나다. 

  나는 소파에 누워 계신 할아버지의 머리맡에서 할아버지의 손을 한동안 잡고 있었다. 두 사람 다 말은 없었다. 함께 있는 것으로 충분했다.

  내가 떠날 때, 누워 계신 할아버지를 안아드렸더니, 할아버지는 “복 많이 받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늙거나 병들어 누워 있는 모든 사람 곁에 따뜻하게 손 잡아주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생기발랄한 어린아이들도 언젠가는 노년을 맞는다. 이제는 지팡이를 짚고 느릿느릿 걷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한때는 푸릇푸릇한 젊은이였듯이.

  더 나이 들어 기력이 쇠하기 전에 ‘살아야겠다.’ 언젠가는 걷지 못하게 될 날이, 글 쓰지 못하게 될 날이 온다. 그 전에 내가 살 수 있는 최선의 삶을 살아야겠다. 주위의 모든 존재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년이 될 때까지 꽃씨를 가슴에만 품고 한번 피어나지도 못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지금의 겉모습 너머, 당장의 제약을 넘어 잠재력을 발휘했을 때 내 앞의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 사람이 될 수 있는 최고의 모습을 알아보고,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서로 격려하며 함께 나아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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