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아름다운 존재에 대한 이야기
엄마의 어린 시절 얘기를 가끔 들은 적이 있었다.
이북을 건너오신 할아버지와 제주도의 오조리 출신의 할머니 사이에서 외동딸로 태어나셔서 과수원집의 귀한 딸로 예쁨을 받고 지내셨다.
그때 엄마는 너무나 섬 아이 답지 않은 외모와
(할아버지 할머니가 인물이 워낙 좋으셨다고 생각한다.) 뭔지 모를 귀티(?)로 인해 누구나 좋아하는 아이라고 했었다.
가령, 엄마는 가만히 있는데도 주변 선생님과 친구들이 반장을 시킨다던지, 엄마를 유독 따르는 친구들이 많다던지, 지금도 엄마를 추억하는 동성과 이성들이 많다던지 그런 일이 다분하다는 얘기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엄마는 속으로 항상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나는 아는 것도 많지 않고, 내 의도랑은 상관없이 왜 이렇게 나를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것일까?'
엄마의 유년시절은 그렇게 기억되고 있었다.
다만 지금의 엄마에겐 그 이유에 대해서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들에 의함 보살핌이 있었다고 생각한다는 얘기들이 더 추가되었다는 점이다.
엄마에게는 제주도의 청아한 자연을 바라보면서
햇살과 구름과 태풍과 바람과 바다와 오름들에게서 벅찬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시선이 있었고, 그 벅찬 감동과 시선을 넘어선 경외와 신비스러움들에 마주칠 때면 자연 그 이상의 어떤 존재에 대해 감동을 느꼈다고 하신다.(이 생각은 엄마의 유년시절 태풍을 쫓던 일화 등 몇몇 엄마의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얘기하게 된 부분이 있다.)
자연의 이면에 감도는 여러 아름다움을 엄마는 엄마의 감성으로 더 많이 느끼고 체험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이다.
엄마 본인의 입장에서는 자연의 경험이 아닌 개인적인 영적 체험으로 느껴졌을 수도 있다는 부분도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무신론자인 나로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자의 내 생각에 무게를 두었다 봐야겠지만, 이제 엄마에 대한 이해가 좀 더 진해지면서는 엄마의 개인적인 영감 혹은 체험에 나의 견해를 녹이기보단 엄마의 말을 그대로 이해하고자 노력하다 보니, 엄마의 이야기가 이제는 한 사람의 영적 체험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무튼 어린 시절의 엄마는 남들이 보기엔 고상하고 귀티 나는 아이였지만, 그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서 제주도의 태풍을 쫓아다니는 천진난만한 소녀였다는 점이 나에게 기억된 어린 엄마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