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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영 Aug 30. 2021

스타트업의 빌런들

데스노트 공개

"A급 플레이어가 B급 플레이어를 채용하고, B급 플레이어는 C급 플레이어를 채용한다. Z급까지 가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회사는 그저 그런 사람들로 금방 채워진다." - Steve Jobs


스타트업은 달을 향해 쏘아진 로켓이다. 달에 안착할지 바닥으로 고꾸라질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모두가 힘을 합쳐 엔진을 돌리는데 반해 남몰래 나사 한 두 개씩을 빼는 자들이 있었으니, 바로 스타트업의 빌런들이다.


인간은 죽을 위기가 아닌 이상 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채용은 반드시 신중해야 한다. 이미 채용을 해버렸다면? 가까운 정거장에서 내리도록 안내하자. 자, 다음은 내리는 문 앞에 선 8인이다.





1. 대기업 출신 리더

스타트업은 대기업의 프로세스를 수혈받고 싶고, 대기업 출신자는 스타트업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동경한다. 고로  간의 요와 공급은 균형을 이루는 편이다.


문제는 이들이 스타트업 생태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스타트업은 속도전인데, 이들은 쓸데없는 체계와 정치질로 시간을 낭비한다. 시도 때도 없이 회의실로 사람들을 불러 모아 "라떼는~" 꼰대력을 뽐내고 심한 경우 반말, 욕설, 큰 소리를 내기도 한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스타트업을 우습게 생각한다. 작은 규모, 어린 직원, 사회경험 적은 대표. 대충 일하는 척 대표를 구워삶아 고액 연봉을 받아먹을 궁리만 한다.


[퇴치 방법]
정신 개조가 필요하다. 스타트업의 매콤한 맛을 보여주자. 하지만 99%는 실패로 끝날 것이다. 왜냐? 이들은 일 할 생각이 없거든. 엄청난 성과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면, 비용 절감 차원에서라도 이별을 준비하자.




2. 고인물

분명 처음엔 함께였다. 아이디어 단계에서부터 어머니의 마음으로 잉태하고, 출산하고, 젖 먹이고, 걸어서 뛰기까지 함께 일구었다. 사업은 점점 커지기 시작하여 투자도 받고, 큰 매출도 발생하고, 채용으로 규모도 늘려간다.


이때 아이러니하게도, 초기 멤버가 회사의 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이 된다. 스타트업은 빠르게 변화하는 조직이다. 회사 내부의 가파른 변화에 적응하고, 이견에 귀 기울이며, 때론 이전 방식을 전부 버리는 결단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들은 변화에 방어적이다. 새로운 사람을 경계하고, 이견을 사고의 확장이 아닌 "우리가 힘겹게 일군 회사를 망치려는 음모"로 받아들인다. 안타깝게도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꼰대로 전락한 것이다. 그렇게 조직은 다양성을 잃고 정체된다.


[퇴치 방법]
스타트업 조직 운영에 대한 수많은 아티클에서는 이들에게 합당한 보상을 주고 회사에서 내보낼 것을 권한다. 너무 극단적이라면, 권한을 대폭 축소시키자. 이들보다 훨씬 높은 연차의 선임을 채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3. 군주님

스타트업은 적진을 향해 달리는 작은 부대다. 목표를 위해 먹지도, 자지도 않고 달린다. 한 곳을 바라보아도 모자란 판국에 자신만의 성을 쌓아 숨는 자들이 있었으니, 스쿼드(Squad) 구조에서 자주 발생하는 사일로 현상(Silo Effect)이다.


스쿼드란 프로젝트에 필요한 기능으로 구성된 팀으로, 작은 회사로 불린다. 그만큼 체계적으로 구르자는 뜻이지 자회사를 만들자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뜻을 오해하고, 다른 스쿼드와 소통하지 않는 일이 발생한다. 각 스쿼드마다의 고유한 목표만 달성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성과 또는 자신의 입지를 위해 타 스쿼드와 교류하지 않는다. 결국 회사는 하나의 목표가 아닌 스쿼드 수만큼의 다른 목표를 갖고 뿔뿔이 흩어진다.


[퇴치 방법]
하나의 최종 목표에서 스쿼드 목표가 파생되도록 설계하자. 스쿼드 간의 경쟁을 부추기는 평가와 보상 제도가 있어선 안된다. 바깥에도 적이 많은데, 식구끼리 싸울 필요 없잖아?




4. 월급 루팡

잘 나가는 스타트업이라면 몸집을 폭발적으로 늘리는 순간이 온다. 이때 사각지대가 생기는데, 여기서 쌀만 축내는 월급 루팡이 탄생한다.


크게 두 종류다. 할 줄 아는데 안 하는 자, 할 줄 몰라서 못하는 자. 전자는 인성이, 후자는 실력이 문제인데 어느 쪽이든 유죄다. 루팡이면 루팡답게 조용히 숨어 지낼 것이지. 스타트업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방생되어 업무 시간에 딴짓하는 것을 쉽게 들킨다. (그런데 사람들이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눈치채지 못한다. 하긴. 그 정도 눈치가 있으면 월급 루팡이 아니지.)


그러나 이들보다 더 큰 죄인은 바로, 인사권자다. 인적 자산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그들의 업무다. 매니저(주로 팀장)는 스크럼을 통해 합당한 업무를 분배하고, 진척도를 확인할 것이다. 인사 프로세스를 통해 지지고 볶든, 삶아서 굽든 어떻게든 일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움직이지 않는다면, 서로를 위해 이별할 때다.


[퇴치 방법]
저성과자에 대한 깐깐한 평가/관리 체계가 필요하다. 계속해서 월급 루팡이 잔존한다면, 인사권자에게 강력한 페널티를 부여하자.




5. 마이크로 매니저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껍질 속 벌레의 발가락 때에 집중한다. 기획서를 예시로 들면, 방향성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띄어쓰기나 오탈자를 지적하는 식이다.


매니저 업무에 익숙하지 않거나, 팀원을 신뢰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실력에 오만하거나. 여러 사유가 있겠으나, 결론만 말하면 매니저로서 자격 박탈이다. 매니저는 관리를 하는 자리다. 팀의 비전을 설정하고, 마일스톤을 결정하며, 적절히 일을 분배하는 자리이지 뭐 하나 꼬투리 잡는 자리가 아니다.


이들로 인하여 팀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다. 팀원들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이들의 손발이 되어줄 뿐이다. 유리 천장에 부딪혀 어느 누구도 리더로 성장할 수 없다. 똑똑한 인재는 조직을 뛰쳐나가고 무기력한 사람들만 남아 월급 루팡으로 변질된다.


[퇴치 방법]
매니저의 역할이 무엇인지 주입시키자. 팀원에게 정확한 목표와 방향을 전달하고, 업무 분배 시 전적인 권한을 위임하도록 안내한다. 그럼에도 변화하지 않는다면 깜냥이 안 되는 자이므로 끌어내자.




6. 민주주의자

스타트업의 대표적인 장점은 수평적인 분위기다. 직급,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가 자유롭게 의견을 내고 반영될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는 반드시 결정을 해야 한다. 이때 지나치게 수평적인 리더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시간과 소통 비용을 증가시킨다.


이들이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는 까닭은, 모든 결정엔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이따금 책임을 분산시키기 위해 있지도 않은 보고 체계를 만들기도 한다. 결정권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불러 모아 같은 내용의 회의를 반복 또 반복한다.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


[퇴치 방법]
두리뭉실한 직감이 아니라, 정확한 근거를 통하여 정답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 결정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면 더욱 좋다.




7. 주니어 팀장

대체로 스타트업은 자본력이 약하므로 연차 높고 실력도 좋은 시니어를 모시기 어렵다. 따라서 연차가 낮은 주니어가 팀장을 맡은 경우가 허다하다.


장은 관리직이다. 매니저로서 업무를 할당하고, 일정을 관리하며, 제품의 품질이 떨어지지 않도록 컨펌한다. 즉, 실무를 뛰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주니어는 실무자다. 축구로 치면 동네 운동장에서 이제 막 볼 좀 차는 애기가 감독을 어떻게 보냐고.


회사는 당장 사람이 없으니, 역량 기반이라는 그럴듯한 말을 써서 주니어에게 감투를 씌운다. 그러나 주니어 팀장은 개인과 회사 모두에게 걸림돌이다. 엉성한 실력으로 팀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 혼란에 빠지게 하고, 대표의 말을 똑같이 반복하는 앵무새가 될 뿐이다.


[퇴치 방법]
삐약이는 잘못이 없다. 감투를 씌운 놈이 잘못이지. 하루빨리 제대로 된 시니어를 뽑아 제 위치에 돌려놓자.




8. 소크라테스

별안간 어디서 주워들은 말들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게 특징이다.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요, 어느 강연에서 봤는데요. 스타트업은 적게 말하고 많이 행동하는 조직이다. 불필요한 회의를 지양하고, 조직 체계를 없애고, 보여주기 식 업무를 하지 않는 것이 원칙.


그러나 이들은 정확히 반대로 행동한다. 듣기 번지르르한 입 기획의 달인이지만, 조금만 깊게 들어가도 뭐 하나 구체적인 것 없이 웅장한 비전만 존재한다. 한편, 기출 변형으로 사소한 부분까지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유형도 있다. 단어 하나하나의 어원까지 파고드는 유형이다.


스타트업에 필요한 건 지금 당장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스펙 문서이지 논문이 아니다. 철학적이거나 관념적인 이야기는 블로그에 쓰고 직장에선 현실만 다루자.


[퇴치 방법]
들어주면 더 말한다. 구체적인 문서가 없다면 말을 받아주지 말자. (4번 월급루팡과 마찬가지로) 저성과자에 대한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





[참고 문서]

- [권도균의 스타트업 멘토링]<64>채용의 기술

- Yammer’s Cindy Alvarez: Five Types of People I Should Have Fired Sooner

- 조직의 적폐 '사일로'를 청산하라

- 조직을 말려 죽이는 micromanager



fyi. 이번 글은 그림과 함께 구성해보았다. 나의 디자인 스튜디오 이름 "스탠딩미어캣"을 캐릭터화 한 것이다. 그림이 손에 익을 때까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지만, 최대한 자주 그릴 예정이다. 언젠가 웹툰으로 확장될 날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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