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사촌언니
조금 늦은 결혼, 다행히 그 이듬해에 순조롭게 진행된 임신과 출산-
아이는 양가 집안의 막내이자 외동딸로 귀여움을 독차지하면서 열심히 자라고 있다.
아빠의 얼굴에 엄마의 성격을 빼닮은 아이는 호기심만큼 겁이 많고 지나가는 할머니에게 인사를 할 정도로 사람을 좋아한다.
특히나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건 자기보다 서너살 위쯤 되는 나이의 언니들-
아마도 남동생네 사촌자매들과 자주 만나고 놀아왔기 때문에 그런것 같다.
보통 아이들이 본격적으로 친구들과 '함께' 놀기 시작하는 것은 36개월 이후라고 한다. 아직 아이는 만 3세가 되지 않은터라 이제 조금 '누군가 함께 논다'는 것에 대해 익혀나가는 중이긴 한데, 사촌언니들과는 정말 잘 논다. 3세,4세, 5세, 6세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아이들이지만 몸과 마음?의 성장정도가 다르고 그에따라 좋아하는 장난감, 캐릭터 애니메이션도 다 다르기 마련이라 가급적 비슷한 동년배 아이들끼리 노는것이 그나마 '세대차이'를 줄일 수 있는 길인데, 아직 아기들이다보니 누군가가 조금은 배려해서 '놀아줘야하는데' 3세보다 4세가 1살 더 많다고 해서 언니노릇을 할 수 있을리는 만무하니 또래끼리의 놀이는 성립이 되기 어렵다.
아이는 3세, 사촌언니들은 이제 6세와 8세, 비슷하지만 조금 터울이 있고 이미 자매끼리 놀아온 노하우가 있기에 아이가 잠깐 끼어들어도 자연스럽게 어울려 놀 수 있다.
큰 조카는 살아있는 인형?같은 아이가 마냥 귀엽고, 작은 조카는 막내에서 벗어나 자신을 '언니'대접해주는 아이가 마냥 귀엽다.
가만히 보면 조카들이 아이를 좋아하는 건 귀엽고 말을 잘 따르는 것도 있지만, 고모와 함께 시작되는 잠깐의 '이벤트'이면서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뒤에는 자신의 공간과 놀이를 온전히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촌언니들에게 아이는 '귀여운 강아지'혹은 '말하는 인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도 있을것이다. 그러면 좀 어떠랴, 낮잠도 잊을 만큼 하루 신나게 놀고 다음 만남을 기다리는 사이면 되는 것을-
아이는 자기가 오면 마음껏 이뻐해주는 사촌언니들을 좋아해서 요즘은 가끔 "언니 보고싶어!! 언니 보러 갈거야~" 라고 말하면서 떼를 쓴다. 하기사 나또한 남동생네 집에서는 아이를 조카들에게 양도하고 저 멀리서 쉴 수 있으니, 친정 다음으로 마음이 편한 곳이기도 하다.
언니들을 너무도 좋아하는 아이를 보면서 형제자매를 하나 만들어줘야되나... 하는 고민을 잠시 한다. 아이가 필요로하는건 언니겠지만, 현실적으로 언니는 불가능하니 동생이라도 하나 필요하지 않을까? 엄마도 아빠도 1남 1녀의 장남, 장녀라서 각각 남동생, 여동생을 가지고 있고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기대기도 하니까. 이 아이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고민- 다행히 시댁과 친정에서는 크게 강요하지는 않는 편이라 사회적인 압박은 조금 덜한 편이다. 늦은 결혼을 한 장남, 장녀조합이라 뭐... 말을 잘 듣지 않는것도 충분히 아시고...
지금이야 참 사이가 좋은 편이지만, 어렸을때에는 말썽꾸러기 남동생을 참 싫어했었다. '누나'니까 먼저 양보해야하고 맞벌이하는 부모님을 대신해서 돌봐야하는 것도 싫었다. '왜 나는 장녀라서 이렇게 많은 부담을 안아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줄곧 해왔었는데, 스무살때 남동생이 처음으로 '누나'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고 치뤄진? 남매대전에서 나만큼이나 남동생도 '막내라서 억울하고 서운하게 살았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 이후로는 연애상담도 하면서, 직장상사 욕도 하면서 친한오누이로 친구로 지내왔다. 그리고 10년 후, 그 말썽쟁이가 나보다 먼저 가정을 꾸리고 가장이 되면서 가끔은 오빠같이 굴기도 하고, 먼저 아이를 가진 '부모 선배'로써 말하지 않아도 이것저것 챙겨주고 있어 함께 있으면 참 든든하다. 유년시절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고, 기댈 수 있는 친구보다 더 가까운 '가족'이라는 존재를 주신 것에 대해 부모님께 감사했다.
언제부턴가 자녀수가 가정내 행복의 척도가 아닌 '부의 척도'라는 것을 실감한다. 자기 밥그릇은 자기가 가지고 태어난다고 하지만 개천에서 용나지 않는 시대에 가당키나 한 말일까?! 아이하나를 키우는데 최소 3억, 거기다 느즈막하게 가진 아이이니 그만큼 부담은 더 커진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이유로 엄마 아빠의 나이가 그렇게 어리지 않기에, 몇 살까지 아이의 뒤를 봐줄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기에 혹 아이가 나중에라도 서로 의지하고 기댈만한 사람이 하나쯤은 있어야 외롭지 않지 않을까, 고민을 한다. 아무리 사촌과 사이가 좋아도 형제자매와 사촌은 엄연히 다르니까. 또한 부모를 공유하고, 환경을 공유하고 함께 자라온 동반자인 형제자매만큼 '좋은 친구'는 없으니까.
아이는 아마, 어렸을 때의 나처럼 동생을 싫어할거다. 혼자 누리던 것들을 일부분 빼앗길테고, '동생'을 돌봐야하는 '누나'가 되어야 하니까- 그렇지만 함께 어른이 된 다음에 비로소 알 수 있을거다, 그 소중함을-
그러나 과연 진짜 동생을 만들어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판단이 서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