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보들보들 담요
아주 오래전 이야기 인것 같지만 아직 만 3년도 지나지 않은 2015년 딸이 세상에 태어났다.
갓 태어난 아기는 생각보다 묵직했지만 손가락 끝에서 팔꿈치까지도 오지않을 정도로 참 작았다. 산후조리원에서 무려 2주나 아이를 봐주긴했지만 때때로 아이를 데려오고 돌봐야하는 것이 참 버거웠다.
특히나 조리원 청소시간인 아침 6시부터 약 2시간정도? 각자의 방으로 데려와 아이를 보고있어야 했기에 혹시나 잠결에 아이를 떨어뜨리지나 않을까 미리 일어나서 정신을 차리고 덜덜덜 떨면서 아이를 안고 방으로 들어왔던 기억이 난다. 아이는 참 작았지만 3kg정도로 은근 묵직했고 내가 머물렀던 방은 아기를 돌보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았기에 다행히 떨어뜨렸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각설하고 여하턴, 참 작았던 아이덕에 이불도 일반이불이 아닌 아기 사이즈에 잘 맞는 이불을 사용했었다.
아이가 태어난 계절은 1월 겨울, 시어머니가 선물해주신 아이 이불은 뽀송뽀송 솜이 가득 들어간 두툼한 겨울 이불이었더랬다. 100일의 기적이 올 때까지 아기는 낮밤을 구별하지 않고 참 많이 잤다. 어머님이 사주신 이불은 밤에는 괜찮았지만 잠깐씩 자는 낮에는 조금 무거운 터라 아이 사이즈에 꼭 맞는 조금 가벼운 이불이 필요했었다.
맨 몸이라면 휙 사서 들어오면 끝이지만, 생판 처음 아이를 돌보는 초보엄마에게 아이는 그 전까지 절대 맛볼 수 없는 난이도의 훈련을 시켰었다. 2시간마다 이루어지는 수유, 시시때때로 우는 아이가 도대체 왜 그러는지 알수 없어 달래고, 얼르고 하느라 여유롭게 뭘 고를 시간따윈 허락되지 않았었다. 그래도 아이를 위해서 필요는 했으니, 마침 손에 잡혔던게 유니클로에서 겨울 이벤트로 받았던 베이지색의 보들보들한 무릎담요였다.
덮지 않은 듯 가볍고, 무릎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작은 사이즈라 아이의 이불로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때부터였나부다.
아이가 부드러운 담요를 좋아하게 된 것이...
다른 아이들은 애착인형을 안고 잠들고, 어디든 간다던데, 우리 아이는 '보들보들한 담요'만 있으면 된다. 애착인형을 고심해서 골라주었지만, 담요를 이길 수 없는 것이 현실-
아이의 담요사랑은 참으로 깊어서,
특히나 졸리거나, 조금 더 편해지고 싶은 어느 때든 '이불'을 찾고 (아이는 폭신폭신한 담요재질의 모든 것을 다 '이불'이라고 부른다)
그 이불은 만졌을때 부드럽다고 느껴질 정도의 담요 재질이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걸
지금껏 아이를 봐주신 할머니도, 아빠도, 우리집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아이는 아침을 먹다가도 "이불!" 이라고 외치면서 침대에서 전용 담요를 들고오고,
졸릴때에도, 아플 때에도 우선은 "이불!"을 외친다.
또한 잠이 올라치면, 담요 한 켠을 잡고,
담요 모서리 부드러운 부분을 코에, 볼에 살짝 살짝 비벼대면서 잘 준비를 시작한다.
가끔 자신에게 기분 좋은 것을 주위사람들에게 나누듯 엄마의 얼굴 혹은 아빠의 얼굴에 비벼주기도 한다.
담요를 한 켠에 두고 아기용 장난감 피아노를 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만화 스누피의 '라이너스'가 떠오르기도 한다. 라이너스처럼 피아노를 잘 치면 좋겠다~ 라는 쓸데없는 생각도 조금 한다.
어렸을 때의 지나친 집착이 어른이 될 때까지 이어져 나쁜 습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어떻게든 하지 못하게 해보려고 생각했었지만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이유없이 빼앗는건 너무 가혹하잖아요"라는 어린이집 선생님 말씀에
우선은 그냥 두기로 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집에서 잘 때 덮는 담요를 외출할 때 가지고 다닌다거나,
그 담요가 없으면 잠을 못잔다거나 하는 '하나의 물건에 대한 집착'은 아니라는 점이다.
담요, 바닥에 가는 카페트, 목도리, 겨울 외투의 모자털 등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털의 감촉'이라면 무엇이든 마음에 들어하기 때문에 그냥 '부드러운 것을 좋아하는' 아이의 특별한 취향 정도로 대수롭지 않은 척 생각하려 노력한다.
세상에 내 뜻대로 되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지만
그 중에서 가장 뜻대로 되지 않은 일은 육아 일지도 모르겠다.
계획을 세우고 제대로 실행되지 않으면 조바심을 내고 나를 채찍질하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 육아에서 만큼은 계획대로 되지 않음을 참으로 잘 알기에 조금 다른 내가 만들어져가고있다.
어느정도 가변적인 일어날 여지를 두고 큰 바운더리에서 놀라지 않게, 조급해하지 않게 긍정적으로 바라보려고 한다는 점이랄까-
나보다는 아이가 즐거워야 하고, 내 뜻보다는 아이의 뜻이 먼저야야 하니까.
부드러운 것을 좋아하니, 선하고 부드러운 남자를 만나지 않을까.. 하는 연관성이 참 없는 희망도 가져본다.
그때 , 첫 담요의 포근함을 전해주었던 유니클로의 감사제 사은품 '담요'는
지금도 아이 어린이집 낮잠 이불로 절찬리 애용중이다.
내 아이만을 위한 특별한 무언가로 장만된건 아니었지만, 자라나는 아이와 함께하는 소중한 '추억'의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