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좋아하는 것 01

1. 삶은 옥수수

by Defie

엄마와 같은 띠, 서른 중반이 넘어서야 세상에 등장한 딸은 이제 33개월.

갓 태어나 자신의 팔다리가 움직인다는 것에도 놀라던 그냥 '애벌레' 같던 갓난 아이는, 어느덧 좋아하는 것을 "주세요" 라고 또박또박 이야기하고, 놀이터를 향해 전력으로 달려가는 '작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도 아직은 혼자서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지극히 드문 '작은 사람'이라 어린이집 시간을 제외하고는 엄마나 아빠, 할머니가 언제나 아이와 함께해야 한다. 아이는 그 시간동안 어른들의 말을, 취향을, 행동을 성격을 복사하듯이 따라해서 깜짝 놀라게하고, 가끔은 경이로운 기분까지 들게 만든다.


늦게 귀가하는 엄마를 대신해서,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던 외할머니-

외할머니와, 외할머니의 딸인 엄마와, 엄마딸인 아이는 취향이 그래서 참 많이 닮았다.


외할머니의 딸이 그리고 내 딸이 좋아하는 것, 그 첫번째는 삶은 옥수수


corn-on-the-cob-1712746_1280.jpg


작년까지만 해도 저게 먹는 것인지, 가지고 노는 것인지 헷갈려하던 아이가, 엄마가 옥수수를 잡고 먹는 모습을 보면서 따라하기 시작한게 불과 3개월도 채 되지 않은 것 같다.

깨물기는 하는데 도무지 옥수수 낱알은 떼어낼수 없어서 그냥 대충 이로 잘근잘근 자국을 내고 내던져 버리더니, 이젠 야무지게 옥수수 낱알을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떼서 먹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가만히 보면 삶은 옥수수는 아이에게 참 매력적인 음식이다.


한 손으로 거뜬히 잡히는 아이 손에 딱 맞는 사이즈,

생기가득 동그랗고 노란 알들이 촘촘히 박혀있는 귀여운 모양

하나씩 하나씩 열심히 떼어서 자기것이 되는 성취감

그리고 입 속에 넣었을 때 톡 터지는 고소함까지-


거기에 엄마에게는 좀 더 어필~하는 매력이 하나 더 있는데 그건 바로,

하나에 몰두하는 시간이 지극히 짧고, 넘치는 호기심에 사방을 뛰어다니는 아이와의 외출에 '도우미'가 되어준다는 점이다. 특히나 아이가 공공장소에서 앞 뒤 생각하지 않고 뛰어다닐라치면 별수 없이 주위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기 마련인데, 삶은 옥수수 하나만 쥐어주면 만사 오케이! 아이는 가던 길을 멈추면서 까지 옥수수 낱알 먹기에 몰입하기 시작하고, 그 시간동안은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게 공중도덕과 질서를 지키는 착한 아이로 변해주기 때문이다.


소란이 참 피우고 싶어지는 지하철, 혹은 버스 등의 차 안에서의 먹을거리 & 재밋거리를 동시에 선사해주는 소중한 장난감으로 더할나위 없이 감사한 '삶은 옥수수'


20170707_115316.jpg 제주 여행중. 예쁜 꽃 앞에서도 옥수수 사랑은 그대로~


제주도 여행 중 옥수수 한 개를 마스터한 아이는 이제 집에서도 종종 옥수수를 찾기 시작했다. 낮잠을 자다가 "옥수수 주세요!"를 외치면서 깨는 경우도 있으니 '너무너무 좋아한다'는 건 자명한 사실.


그동안은 외할머니가 쪄다주신 옥수수와 시장에서 삶아주는 옥수수에 신세를 졌더랬지만 큰맘 먹고 집에서 삶아주기로 했다. 친정엄마와 함께 이파리가 다 붙어있는 싱싱한 옥수수 작은 포대를 하나 사들고 와서 하나씩 껍질을 벗겨내던 중 약 30여년 전? 집에서 먹던 옥수수가 떠올랐다.


엄마인 나도 어렸을 적부터 좋아했던 옥수수- 친정엄마도 가끔 집에서 옥수수를 삶아주시긴 했지만 길에서 파는 '단맛 옥수수'와는 맛이 달라서 조금 달갑지 않았었다. 상인들은 옥수수를 삶을 때 단맛을 강하게 내는 '뉴슈가'를 넣는다는데,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그러하듯 '건강한 맛=달지 않은 맛'이라고 생각하던 친정엄마는 한사코 '뉴슈가'를 넣지않고 설탕으로만 간을 해주셨었다. 그렇지만 달달한 옥수수에 비해서 그 참으로 밍밍한 옥수수 본연의 맛이 아이의 입에 맞을 리가 없었더랬지...

그래서 그런지 옥수수를 제대로 맛있게 먹으려면 집에서 삶아먹기 보다는, 시장에서 '불량식품' 먹는 기분으로 사먹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었다.


그렇지만 내 딸에게 먹이는 옥수수는, 친정엄마가 내게 그러했듯이 '뉴슈가' 같은 걸 넣지 않고 최대한 옥수수 본연의 고소한 단맛을 이끌어내어 알려주고 싶어진다. 그냥 설탕을 넣는 것 만으로는 어렸을때의 나처럼 내 딸에게도 성에 차지 않을까 싶어, TV에서 알려준 '맛있게 옥수수 삶는 법'을 따라 옥수수 겉껍질을 하나 남기고, 옥수수 수염을 가운데 넣고, 옥수수를 세로로 길게 세워서 삶아본다.


맛은 역시나... 시장에서 맛볼 수 없는 ... 그냥 옥수수 맛이다-0-


어렸을 적 엄마가 해주던 옥수수와 지금 내가 딸에게 해주는 옥수수는 그 밍밍한 맛이 똑같지만,

이제 어른이 된 내 입속에는 아주 달달하지 않더라도 옥수수의 고소한 맛이 느껴지는 듯 하다. 이제 나도 엄마의 나이가 되어 조금 더 다양한 맛들을 알 수 있게 되었나보다.


갓 삶은 옥수수를 호호 불어서 젓가락을 하나 길게 꽂은 후 아이에게 하나 가져다준다. 아이는 "옥쮸쮸 마시쪄~"를 연발하면서 옥수수를 먹기 시작한다. 시장에서 파는 옥수수와는 다르지만, 단맛이 있던 없던 엄마가 주는 옥수수라면 잘 받아먹는 아이가 한층 사랑스러워 보인다. 하긴 내 새끼니 뭔들 사랑스럽지 않을 수 없겠냐만은...


친정엄마와 나, 그리고 딸이 나란히 앉아서 삶은 옥수수를 먹는다.

외할머니의 맛, 아이도 엄마도 좋아하는 엄마의 맛.